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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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5주]하나님을 만난 사람들(ppt영상설교포함)

  • 관리자
  • 2022-02-0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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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다섯 번째 주일(20220206)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고전 15:1-11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설 연휴 고향 잘 다녀오셨는지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과 사랑하시는 분들을 영육간의 강건함으로 세워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금요일 제법 동장군이 기세를 부렸지만, ‘입춘(立春)’이었습니다.



입춘은 ‘봄이 선다’는 뜻이고, ‘봄’은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그러니까 입춘은 얼었던 동토에 꽃도 피고, 새순이 돋아 볼 것이 많은 절기가 되겠습니다. 이미 남도에는 동백과 수선화를 위시한 봄꽃들이 한창입니다. 강원도 동해시에 찬물내기 공원에도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결기북부의 화야산에서는 노루귀가 피었다 하고, 안양 수리산에는 변산바람꽃이 피었답니다. 영어로 ‘봄’이 spring’인데, 여기저기 언 땅을 녹이고 피어나는 꽃을 보면 정말 스프링이 튀어 올라오는 듯합니다. 이렇게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왔지만, 아직 동장군이 기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봄은 이미 왔지만,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봄을 간절하게 보고 싶은 이들에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무딘 사람들이라도 “봄이 왔구나!”느낄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 미리 봄


우리말에 ‘미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미리’는 ‘아직 어떤 일이 생기기 전에’라는 뜻이 있고, 여기에 ‘내’가 붙어 ‘미리내’가 되면 ‘은하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리 봄’이라는 것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들이 다 볼 수 있기 전에 보는 봄은 은하수처럼 아름답다.’ 이것은 단순히 계절로서의 ‘봄’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목사이다 보니 성경을 묵상하다가 ‘깨달음이 오는 순간’의 감격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누구도 깨닫지 못한 것을 ‘미리’ 혹은 ‘먼저’ 깨닫는 기쁨은 때론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 성서일과 이사야서 6:1~8


진리를 미리 본다는 것, 그것은 마냥 기쁜 일이 아닙니다.  
오늘 성서일과 구약본문은 이사야서 6장 1~8절의 말씀으로 이사야 예언자가 소명을 받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사 6:5)” 하나님을 만난 기쁨도 잠시, 그는 자신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내 하나님께 응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우리는 꽃의 아름다움과 나비의 우아함에 감탄하면서도 그들이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겪는 변화의 과정은 외면합니다.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자각, 두려움 끝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성서일과 누가복음 5:1~11


복음서는 누가복음 5장 1~11절의 말씀으로 게네사렛 시몬의 배에서 제자를 부르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는 어부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수였던 예수님께서 밤 밤새도록 수고하였건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하십니다. 맥 빠지는 말씀이었지만,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전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았던지라,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힙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합니다. 이때 예수님을 만났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 성서일과 고린도전서 15:1~11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의 말씀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열거됩니다. 시몬 베드로,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바울(고전 15:8)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익숙한 개역성경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성서일과 시편 138편


시가서 시편 138편의 말씀은 ‘다윗의 찬양시’입니다.
3절과 7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주현절 5주의 성서일과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예수님을 대면한 사람들은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둘째, 변화는 만난 이들의 결단과 순종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셋째, 결단하고 순종한 이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경외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시가서의 노래는 이런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하나님과의 만남- 결단과 순종-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 – 찬양’의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 나는 누구인가?


삶의 변화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에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삶을 변화시키길 원한다면, 그래서 내 삶의 주인으로 서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그리스어: 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노티 세아우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처음 한 말이 아닙니다.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 쓰여진 신탁으로 당시 지혜를 추구하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경구였습니다.
삶의 변화를 위해서 먼저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보시면 사도 바울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8절 - ‘만삭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각(바울), 입술이 부정한 자라는 자각(이사야), 죄인이라는 자각(베드로)
9절 – 가장 작은 자요, 박해하던 자라는 자각(바울)
10절 – 자기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자각

이렇게 바울이나 이사야, 시몬 베드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했고, 여기서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 자각과 순종


자각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각한 후에는 겸손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자각한 이사야는 숯불로 지짐을 받은 후에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결단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복음을 겸손하게 전했습니다. 11절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자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알았습니다. 그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전한 바대로 믿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이들이 갖게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 믿음이란?


믿음이란, belief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be’는 강조하기 위한 접두어입니다. ‘존재한다’는 뜻도 있지요. ‘lief’는 독일어 ‘Liebe- 사랑하다’에서 왔는데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뜻은, ‘삶의 우선순위에서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것’이요, ‘삶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앞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저 특정교리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내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기에 삶에 있어 초고우선순위를 두는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을 정의하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선명해 집니다.

여러분, 마음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삶의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예수님이 아니면,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일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너무 쉽게 “믿습니다!”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망하진 마십시오. 겸손하게 순종하고, 따르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은혜를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알고, 그것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지키려는 삶의 태도를 갖고 사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요, ‘be(존재)+live(살다)’, 존재답게 사는 것것입니다. belief를 belive하시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 은혜란?


은혜(恩惠, Grace 창 6:8)의 원어 '헨'은 '하난'(불쌍히 여기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시 4:3)와 고생하는 자(시 6:2)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 은총, 긍휼 등을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은혜’(창 30:27,출 33:12)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먼저 은혜를 받는 자가 경건하며 의로운 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없다면 구원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분명(롬 3:10-12)합니다. 하지만, 그 같은 은혜는 인간의 적극적인 반응과 노력이 함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지만, 여는 행위는 우리가 해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감옥에 갇히고 매 맞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 중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순종하고 헌신하고자 할 때에 기뻐하시며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아직 엄동설한이지만,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 곧 올 것입니다. 곳곳에 새싹과 꽃들이 당당하게 설 것입니다. 입춘지절에, 여러분의 신앙도 우뚝 서서 뿌리를 깊이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시길 축복합니다.


[거둠기도]

창조주 하나님,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언 땅을 녹이고 피어나 봄을 이뤄가는 꽃들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작은 등불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답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시고,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바로보아 정진하게 하옵소서. 주님 안에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든든히 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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