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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4주]호시우보(虎視牛步)의 신앙(ppt영상설교포함)

  • 관리자
  • 2022-01-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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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4주/설날주일(20220130)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신앙(누가복음 8:4~10) 


辛丑年, ‘하얀 소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가 시작됩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시는 모든 분들의 삶을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虎視牛步의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호시우보란, 말 그대로 ‘호랑이의 눈으로 보고 황소걸음으로 걷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칡흙같은 어둠을 꿰뚫어보는 호랑이의 눈과, 수레를 끌고 뚜벅뚜벅 걸어 천릿길을 가는 황소의 걸음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  비유의 의미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은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앗의 비유’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립니다. 씨앗은 길가, 바위 위, 가시 떨기 속,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그리고 각각의 마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먼저, 결실을 맺지 못하는 세 가지 마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씨앗이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지만 뿌리를 내릴 틈도 없이 마귀가 그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는 것을 의미하는 바입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는 좋지만 삶으로 살아갈 마음이 없어 작은 시련이 와도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가시 떨기에 있다는 것은, 뿌리를 내리긴 하지만 세상 염려에 붙들려 살아감으로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 결실을 맺지 못한 이유


비유의 말씀을 드릴 때마다 제가 드린 말씀은 ‘비유’는 ‘하나님 나라’이야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하나님 나라를 비유를 말씀하실까요? 사람의 말로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름이 없는 이유도 같은 까닭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규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은 규정될 수 없는 메타(인간의 의식을 넘어 존재하시는 절대자)에 존재하는 절대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이 말씀과 오늘 비유의 말씀을 연결해 보면, 결국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천국과 지옥, 결실의 유무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길가와 바위와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이 결실을 맺지 못한 이유는 모두 ‘마음지킴’을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 좋은 땅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왜 좋은 땅입니까? 본문 1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씨앗으로 상징되는 말씀을 듣되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마음이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말씀이 은혜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선입견을 가지고 말씀을 들으면 은혜의 말씀으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여기서부터 씨앗이 싹을 틔우는 기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잘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들었으면 지켜야 합니다.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실천(實踐)이란?


실천, praxis의 의미를 한문을 통해서 알아보고자합니다.
실천은 ‘열매 實’과 ‘밟을 踐’의 조합입니다. 實이라는 글자는 집 면(宀), ‘갓 머리, 하늘’ + 어미모(母), 어머니, 조개패(貝), 보물이 합해진 글자입니다. 즉, 하늘 어머니가 주신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踐이라는 글자는 발족(足), ‘발’, 창과(戈), 창날이 두 개입니다. 그러니 맨발로 예리한 창날을 지나가듯 조심스럽게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실천’이란, ‘예리한 창날을 맨발로 걷는 조심스레 하늘의 뜻을 행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보배로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씨앗이 바로 보배로운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실천을 했더니 10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씨는 언제라도 열매보다 적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매는 언제나 씨앗보다 크기 마련이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가 자라 공중에 새가 깃드는 나무가 되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실천을 가지고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반복이요, 끊임없는 소망입니다. 왜, 끊임없이 소망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보배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상인이 모든 재산을 팔아 보물이 묻힌 밭을 사듯이, 전 재산을 다 팔아 진주를 사듯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보배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내세에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풍성하게 누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 ‘너희’와 ‘그들’


그런데 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는 ‘너희’와 ‘그들’이 등장합니다. 이 말씀이 ‘너희’에게는 복된 말씀이지만, ‘그들’에게는 저주의 말씀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너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왜 ‘그들’은 같은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마음에 ‘자기 의’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사사건건 반대하고 결국은 산헤드린에 넘긴 이들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동에 휘둘려 바라바를 외치며, 예수를 처형하라고 외쳤던 군중은 집단적인 광기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명목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온갖 세상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받는다고 생각했고, 군중은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려면 예수님보다는 바라바와 같은 혁명가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 虎視牛步의 신앙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문자로 읽는다고 읽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에 근거한 근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인류 역사에 수많은 범죄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이들이 있고, ‘창조과학회’ 같은 사이비들이 성경말씀을 통하여 과학을 증명하려고 시도합니다. 이단들은 지나치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성경말씀의 진의를 왜곡합니다. 그들에게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대에 ‘호시우보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시대가 어둡기 때문입니다. 
맘몬의 사회는 경쟁과 비교, 승자독식, 약육강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을 성공이라고 부추깁니다. 이런 어두운 시대 속에서 진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호랑이의 눈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경쟁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경쟁의 시대는 ‘빨리빨리’의 시대입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쉼’조차도 사치로 만들어 버립니다. 빨리빨리 성과를 이루려고 하다 보니 조급합니다. 금방 지칩니다. 그래서 소의 걸음의 필요합니다. 황소걸음은 빠르지 않지만, 수레를 끌고 천릿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진득함이 필요한 시대이기에 호시우보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셋째, 가벼운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레가 가벼우면 소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요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수레가 채워져 있으면 묵직하니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야 수레를 끌고 가는 소도 편안합니다. 지나치게 가벼운 시대, 심지어는 인간의 생명까지도 너무나 가볍게 취급하는 시대에서 신앙인들은 균형추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것은, 인내하며 걸어가되 방향이 올곧아야 합니다. 무작정 걸어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런 지혜를 갖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辛丑年, 하얀 소의 해가 지나고 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가 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힘들어도 ‘호시우보’의 신앙으로 인내하며, 뚜벅뚜벅 걸어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100배의 결실을 맺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기도]
지난 모든 시간 동안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 한 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선물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시는 복을 주셔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생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스스로 묵은 땅을 갈아엎어 옥토를 만들어 가게 하옵소서. 옥토에 뿌려진 씨앗을 보듬게 하시고, 조심스레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인내함으로 새해에는 결실의 열매로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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