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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3주]평강을 위한 감사(PPT영상설교포함)

  • 관리자
  • 2022-01-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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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3주(20220123)
평강을 위한 감사
골로새서 3:15~17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2)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아멘.
 

■ 기독교의 절기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주님이 나타난 날’) 셋째 주일입니다.
주현절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례를 받으신 후 복음을 전하신 시기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림절에 말구유로 오셨고, 십자가 고난과 부활 이후, 승천하시기까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현현하셨습니다. 그 모든 시간이 주현의 시간이지만, 탄생부터 세례 전까지는 강림절로 보내고, 고난이 시작되면서는, 고난주간 부활주일, 승천주일로 지킵니다.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과 함께하는 성령강림절, 성령과 동행하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창조절, 그리고 다시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강림절에 이어 주현절로 이어집니다.
 

■ 기독교 절기의 정신


모든 절기마다 스며있는 정신은 ‘감사’입니다.
창조절에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강림절에는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 아기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현절에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복음을 전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고난주간에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부활절에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새 소망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령강림절에는 부활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절로부터 성령강림절에 이르기까지 각 절기마다 ‘감사’가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 평강을 위하여


올해 제가 반복해서 여러분에게 당부하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어둡고 힘겨워도 담대하게 용기를 내어 평안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라는 신년설교에서 ‘어둠을 이기는 빛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주일에는 ‘너는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통해서 물 가운데를 지날 때에도, 불 가운데를 지낼 때에도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니 담대하라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에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라는 제목으로 ‘그의 그늘 날개 아래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차게 살아가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평강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갈 때 평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나누고자 합니다.
 

■ ‘지금 여기에서’


모든 종교는 내세관이 있습니다. 기독교 역시도 내세관이 있는데 ‘천국과 지옥’이 그것입니다. 사이비종교는 내세관을 이용해서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여 ‘지금 여기의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게 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종교는 내세를 부정하지 않지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기독교는 ‘지금 여기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천국에서 살아가듯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평강한 삶을 살아가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믿고, 죽음까지도 평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런 신앙을 가진 분이 영원한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하나님 나라는 ‘저 하늘 위에’ 혹은 ‘죽은 후에’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편만하게 이뤄진 곳’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중국어 성경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를 ‘천국’으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이라는 개념을 불교의 ‘극락’이라는 개념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단어가 ‘–하늘 천(天), 나라 국(國)-’이라는 한문의 조합이므로 땅과 대비되는 ‘하늘’, 땅이 상징하는 현세의 삶이 아닌 ‘내세의 삶’에 방점이 찍히게 된 것입니다. 복음서 중에서 ‘천국’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이 기록된 시기가 대략 70년경인데,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발 딛고 사는 현세의 모든 소망이 단절된 상황에서 저 하늘에 대한 소망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네 마음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현실이 완벽해도 마음이 지옥이면, 지옥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결핍에도 불구해도 마음이 천국이면,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지킴’이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 3:15)’는 골로새서 말씀은 ‘평강한 마음으로 살아가라, 천국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 골로새서 3:15~17


평강은 헬라어 ‘에이레네είρήνη’입니다. ‘평안, 평강, 평화, 화평’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히브리어에 ‘샬롬(שלום)’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샬롬(שלום)은 ‘완전, 건강함, 행복, 번영, 고요, 안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단어 모두 ‘결합하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이레네’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무엇과 ‘결합’된 상태에서 평안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니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결합된 평화’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저 혼자만 누리는 평화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누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문에서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하여 권면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15),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16),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

그러니 ‘평강을 위하여’, 평안한 삶을 살아가려면,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살아가려면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평강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감사’란 무엇인지를 니무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 감사는 점입니다


‘화룡점정(畫龍點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5호 16국 시대에 있던 일화입니다. 양(梁)나라의 화백 장승요(張僧繇)가 금릉(金陵=남경)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에 용 두 마리를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답니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느냐 하니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 말을 믿지 않자, 눈동자를 그렸더니, 점 하나를 찍었더니 벽화에 그렸던 용이 하늘로 날아가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용은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룡점정’은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하여 일을 완벽하게 끝낸다는 말입니다.
신앙의 화룡점정은 감사입니다.

점은 전체에 비하면 크지 않습니다만, 그 작은 점이 찍히지 않으면 여전히 미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미완의 신앙이 되지 않으려면 감사라는 점을 찍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감사는 시소입니다


어린이 놀이터에 있는 시소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도 시소가 있습니다. 한 쪽에 불만 혹은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 쌓여 있으면 시소가 기웁니다. 불평만 불만,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하여 기운 마음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균형을 잡으려면 반대쪽에 뭔가를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의 무게는 불평이나 불만, 부정적인 생각의 무게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아무리 기운 시소라도 ‘점 하나의 감사’만 올려두어도 점점 균형 잡힌 시소가 되어갑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려면, 마음의 균형을 잘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기울어진 시소를 바로 잡아주는 것, 그것이 감사합니다.

시소놀이를 해보셨을 겁니다. 시소가 기울면 어떻게 됩니까? 기운 쪽으로 모든 것이 내려갑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에 불평과 분만,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하면, 감사한 일도 그들 쪽으로 내려가 불평을 강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하지만, 감사의 무게가 더 무거우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 불평할만한 일들조차도 감사로 바뀌는 것입니다. 감사는 시소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면 감사가 늘어나게 되고 마음에 평강이 찾아올 것입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됩니다. 아주 작은 감사, 점 하나만큼의 감사면 충분합니다. 점 하나의 감사를 회복하려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 감사는 밥입니다


감사는 밥입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밥은 생명줄입니다. 하루 세끼를 먹고 힘차게 살아가듯, 감사를 밥 먹듯이 해야 합니다. 하루 세끼를 먹듯, 최소한 세 번의 감사를 하십시오. 마음의 평강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감사할 일이 없다고 하시기도 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줄 알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감사를 찾고자 하면, 셀 수 없이 많은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다. 

감사가 밥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밥’이 상에 오르고, 그 밥을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그림자노동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쌀알 하나를 만들려면 농부가 일급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밥이 되는 쌀알 한 알 한 알에 농부의 땀방울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 신고 다는 신발, 우리가 쓰는 물건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 혼자 솟아난 것도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노동의 결과를 내가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평화(에이레네)’를 설명할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모든 것이 결합되어 있음을 인식하는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별일이 있어서 감사한 아니라 ‘별일이 없어서 감사’한 것입니다. 별 일 없이 사는 것에 대한 감사를 깨닫게 되면, 감사를 밥 먹듯이 할 수 있습니다. 
 

■ 평강을 위하여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감사한 일도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기로 작정하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그로인해 우리는 ‘평강’이라는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화’입니다. 왜냐하면, 감사의 근원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평안한 삶, 행복한 삶, 평화로운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피스 메이커,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셔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천국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기도]
평화의 왕으로 오신 평강의 주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감사함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감사함으로 더 깊은 감사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옵소서. 감사하는 자가 되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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