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주현절2주] 주의 날개 그늘 아래(PPT영상설교포함)

  • 관리자
  • 2022-01-16 11:00:00
  • hit2980
  • 222.232.74.74

20220116(주현절2주)
시편 36:5~10
주의 날개 그늘 아래


늘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오늘 함께 예배하는 분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라는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 찬양이 고백하는 대로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그늘’이라는 상징


저희 교회에 와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 김응교 시인의 ‘문학과 숨은 신 그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들어가는 글’ 부분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빛의 세계도 어둠의 세계도 아닌 그늘, 깊숙한 숲을 뚫고 어둠을 분해하는 그늘은 시원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며 교체되는 공간, 그늘은 안 보이는 미물들의 움직이는 공간이다.’
 

■ 성서에서의 ‘그늘’


인생에 있어서 ‘고난의 시기’는 ‘그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연단을 통하여 성숙한 삶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늘’없는 삶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판소리꾼에게 가장 심한 욕이 있다고 합니다. 김지하 시인이 한 말입니다. “저 사람 소리엔 그늘이 없어”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목사에게도 가장 심한 욕이 있다면, “저 목사 설교에는 그늘이 없어”라는 말일 것입니다.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깨닫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누구 하나 쓴맛을 겪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셨던 사람들은 마태복음 4장 16절에 의하면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면 하나님은 ‘소나기를 피할 곳, 더위를 막는 그늘(사 25:4)’입니다. 그늘에서 빛은 더욱 부드럽고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의 날개 그늘 아래’라는 다윗의 고백은 부드럽고 아름답게 우리를 감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경쟁하고 비교하는 삶’을 살도록 내몰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과 품어주고 안아줄 날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오늘은 시편 말씀에 나오는 ‘그늘’과 ‘주님의 날개’의 상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힘겨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 인간의 현실(시편 36:1~4)


시편 36편은 다윗의 노래입니다. 
1~4절까지는 ‘인간의 사악함’이 주제입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읽은 5~10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11~12절은 간구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먼저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말씀을 살펴봅니다. 왜 어리석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관해 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을 워낙 좋아하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은밀한 나의 죄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하며 죄 속에 살아갑니다. 그 결과는 3절에 나옵니다. ‘그의 말에는 거짓과 속임수가 가득하고, 행실에는 지혜도 선함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지속하면서도 ‘羞惡之心’, 즉,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다윗 시대에만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군상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 하나님의 지혜(시편 36:5~10)


다윗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대비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진실하심(5)입니다.  둘째는,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생명을 살리시는 의로우심입니다(6). 셋째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품어주시는 인자하심입니다(7). 

‘진실하심과 의로우심과 인자하심’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 지혜로 인하여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9)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정직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고(8),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것(10)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12).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안에서, 복락의 강물을 마시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안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지헤롭고, 정직한 분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서에서 선과 악의 구분기준


구약성서 열왕기에는 신명기 역사가의 독특한 시선이 작용을 합니다. 열왕기서는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왕들의 치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왕에 대한 치적을 서술한 후에 반드시 왕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악한 왕이었더라, 선한 왕이었더라’하는 평가가 그것입니다. 평가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지 불순종했는지 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부족함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으면 ‘선한 왕’이요, 아무리 많은 치적을 쌓았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으면 ‘악한 왕’이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도 이런 구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요,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선하신 하나님, 그분의 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분의 빛 앞에서 자신의 빛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 쇠얀 키르케고르가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라고 한 문장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이들이 누리는 복을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복락의 강물을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려운 때에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한다는 것’입니다. 
 

■ 복락의 강물


‘물’은 곧 생명입니다. 그래서 인류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중국의 황하문명, 이집트의 나일 강과 삼각주, 인류 최초의 도시며,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를 남긴 우르남무 역시도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을 끼고 발달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치수’는 곧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에서 종교적 제의는 적절하게 내리는 비를 통한 풍요로움과 관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섬기던 대표적인 신은 남신 바알과 여신 아세라였습니다, 그들은 가뭄이 드는 이유를 남신과 여신이 사이가 좋지 않아 교접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전에서 사제성창을 두어 제단에서 교접하게 하고, 그것을 본 남신과 여신이 흥분해서 합방하면 비가 내릴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물’은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토착 신이었던 바알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1차전은 ‘바알뿐 아니라 하나님도 풍요의 신’이다. 2차전은 ‘하나님이 풍요의 신’이다. 3차전은 ‘하나님만이 풍요의 신’이다. 이렇게 결론이 납니다. 이런 결론이 난 것은 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를 이뤘던 다윗 왕이 주변 국가를 평정하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8절의 ‘복락의 강물’은 주님은 아는 지혜로운 자,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임하는 복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물질적인 풍요를 넘어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 지혜롭고 정직하게 살아가셔서 ‘복락의 강물’을 마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1)


다시 한 번 그늘에 관한 김응교 시인의 묵상을 보겠습니다.

‘빛의 세계도 어둠의 세계도 아닌 그늘, 깊숙한 숲을 뚫고 어둠을 분해하는 그늘은 시원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며 교체되는 공간, 그늘은 안 보이는 미물들의 움직이는 공간이다.’

저는 그늘에 관한 글을 묵상하면서 ‘그늘은 시원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라는 문장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 지금은 겨울이니까 ‘그늘’을 실감할 수 않지만, 한여름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사야서 25장 4절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이시며, 뙤약볕을 막는 그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원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되십니다. 그래서 그 그늘 아래로 피하는 이들에게 요새가 되어주시고,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환난의 때에 주님의 그늘로 피하십시오. 마음이 시원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께서 요새가 되어주시고, 피난처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피난처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정직하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십시오. 매사에 담대하게, 힘차게  살아가십시오.
 

◼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2)


‘그늘’도 중요한 상징이지만, ‘날개’ 역시도 중요한 상징입니다. 
저는 주님의 날개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병아리를 감싸는 어미닭’을 떠올립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며 한탄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경의 권위를 빌어 예언자들을 죽이고,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외향은 예루살렘 성전처럼 화려해졌지만, 예수님이 보시며 한탄하실 교회, 분노하실 신앙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시며 기쁜 웃음을 짓는 교회와 여러분 되시길 바라고, 기도하고, 힘쓰겠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갈 때에 주님의 품에 안겨 사는 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날개’로 표현한 성구 세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시편 17편 8절의 말씀입니다.
“주의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 주시고, 주의 날개 그늘에 나를 숨겨 주시고,”
시편 57편 1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주께로 피합니다. 이 재난이 지나가기까지, 내가 주의 날개 아래 그늘로 피합니다.”
이사야서 8장 8절의 말씀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날개를 펴셔서 이 땅을 보호하신다.”

한 주간 동안도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평안한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힘겨운 삶을 살아갈 때에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우리를 불러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 쉬는 복을 누리며, 복락의 강에서 강물을 마시려면  주님을 알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주님을 아는 지혜를 주시고, 깨달은 바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지만,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빛 안에서 빛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PT영상설교를 보실 분들은 여기를 누르시고 확인을 누르십시오.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