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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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2주] 정련의 시간(ppt설교영상포함)

  • 관리자
  • 2021-12-0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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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둘째주일(20211205)
정련의 시간
말라기 3:1~5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모든 분들에게 오셔서, 마음마다 평화의 씨앗을 풍성하게 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마음에 뿌려진 평화의 씨앗을 잘 가꾸셔서 풍성한 평화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 대림절둘째주일


오늘은 대림절 둘째주일입니다.
어느덧 달력도 한 장 남았고,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체감되는 것은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적인 삶이 달라지면서는 더더욱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손주를 얻어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마냥 젊을 줄만 알았던 나도 할아버지가 될 나이가 넘었구나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하고, 이 나이가 되기까지 이렇게 살아 왔구나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 나이듦의 품격


서너 해 전부터 ‘노년의 삶’에 관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인생을 3막으로 볼 때, 3막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노년을 잘 마무리해야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은 프랭크 커닝햄의 <나이듦의 품격>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책의 첫 번째 장은 ‘기억’이라는 주제인데, 쇠얀 키르케고르의 문장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인생은 앞을 내다보며 살아야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면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살아온 기억들을 되돌아보고, 그것의 의미를 찾는 일이요, 그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에 예를 갖추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이듦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영성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이야기 곳곳에는 하나님의 존재가 박혀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돌아보니, 이전에는 몰랐는데 지나간 모든 일상들이 하나님과 함께 했던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과거를 넘어 지금 살고 있는 현재로 오고,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에 함께하고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내 모든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성공과 실패를 끌어안는 것이며,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 순간을 경축하는 것입니다.”
 

■ 12월에는


한 해의 끝자락 12월을 묵상하는 중에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라는 책에서 이런 사진과 문장을 읽었습니다.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내 그립고 눈물 나는 것들은 다
등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니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에
고요히 등 뒤를 돌아보자
(박노해 – 걷는 독서)

이 역시도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은 시인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여러분, 앞만 보고 달려오셨다면, 12월에는 고요하게 등 뒤로 돌아보며, 실패의 순간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발견하시고, 그 하나님이 지금 나를 어떤 길로 인도해 주시는지 발견하시는 귀한 달이 되길 바랍니다.
 

■ 말라기의 상황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구약의 마지막 책입니다. 말라기는 “여호와의 사자(전령)”라는 뜻으로 메시야가 오시기 전 마지막으로 대언한 예언자입니다.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100년 즈음 되던 시기의 예언서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하는 일은 없었지만,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위선에 빠져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한다는 생각 없이 무관심 속에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시기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않은 일들을 사사로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라기 예언자가 메시아는 반드시 오실 것이며, 오셔서 위선자와 죄인들을 확실하게 심판하실 것이니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 신구약 중간사

말라기 예언자 이후 세례 요한이 등장하기까지 400년이라는 기간의 공백이 있습니다. 
이를 ‘신구약 중간사’라 하여 신학계에서는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400년이라는 기간, 아무런 역사가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극심한 혼란기였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전쟁이 없는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팔레스틴의 패권을 다투는 시기에 약소국가였던 유대인들은 어느 쪽이 이기든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학살이 이어졌고, 이집트로 유배당하고, 노예로 팔려가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대왕은 예루살렘을 습격하여 사흘 만에 사만 명을 학살하고 많은 이들을 노예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카비를 중심으로 잠시 유대가 회복되었지만, 로마가 서방 세계의 지배세력으로 떠오른 뒤 로마의 한 지방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혼합종교화되고 다른 종교와 타협하면서 정통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때, 비타협적인 율법주의를 추구하는 바리새인, 타협적 현실주의자 사두개인 등이 등장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살인과 폭동 등이 쉬지 않고 일어났던 어두운 시대였으며, 마카비 혁명을 통해서 보았던 소망의 불씨가 꺼짐으로 메시아를 더욱더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다 백성들은 고대하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왕으로 오셨지만, 400년 만에 말라기 예언자의 예언이 실현되었지만, 영적으로 눈이 멀고, 타락하여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영적으로 눈이 멀고, 타락하여 장님이 되는’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갖길 원합니다.


■ 기억의 영성훈련


앞에서 제가 ‘나이듦의 품격’과 ‘한 해를 돌아보는’ 시를 나누면서 드렸던 이야기는 ‘기억’에 관한 말씀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Edward Hallett Carr는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습니다. 유대민족이 극심한 혼란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애굽에서 430년 동안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보호해 주셨는지를 잊고 살았습니다. 결국, 남북이 분열되고 앗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합니다. 겨우, 페르시아 고레스 칙령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지만,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제사장들은 형식적인 제사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백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않은 일들을 사사로이 합니다. 

이 일들은 단지 2500년 전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우리의 삶도 돌아보고, 한국교회, 한남교회의 역사도 돌아보면서 곳곳에 박혀 있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해야 합니다.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아 우리의 기억에 대한 예를 갖추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적으로 ‘기억하는 일’은 ‘영성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때, 안다고 하면서도 죄에 빠져 살았던 때, 혹은 정말 아름답게 살았던 시간, 신앙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시간, 모두를 받아들이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에서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으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자세인 것입니다.


■ 정련의 시간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우리의 의지와 생각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훈련이요, 정련의 시간입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불’로 정련되고  ‘잿물’로 하얗게 ‘표백’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불과 잿물이 의미하는 바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쇠얀 키르케고르는 <고난의 기쁨>이라는 책에서 ‘불순물이 제거된 온전한 기쁨’을 누리려면, 반드시 ‘고난의 시간, 정련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정련의 시간은 성화의 시간이요, 이 성화는 ‘순종’으로 표현되고, 순종하므로 우리는 모든 시간의 기억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정련의 시간과 순종


히브리서 5장 8~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정련의 시간’은 단지 고난의 시간이 아니라 ‘순종을 배우는 시간’이요, 우리가 ‘정련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순종할 때에 우리의 모든 시간들을 성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3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자들을 금은같이 연단하여 공의로운 제물을 바치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제물이 여호와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최근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인류가 공포에 빠져있는 시간은 고난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맡기신 창조세계에 인간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고 돌아보는 시간이요, 돌이키며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정련의 시간입니다. 고난의 때를 살아가신다면,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림절 둘째주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여전히 세상의 것들만 가득 채우고, 기다리고 있다면, 조금 마음을 비우고 여백을 만드십시오.
아기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여백, 하나님의 숨결이 머물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여러분을 정련시켜 주실 것입니다. 남은 한 해, 그런 복된 시간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우리는 세상사에 시달려 살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했을 때의 기쁨,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맡겨주신 사명에 대한 기억들이 희미해져서 그냥저냥 기쁨이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빠져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살아가다보니 내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님을 기다리는 이 절기에 ‘정련의 시간’을 갖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하여 삶의 큰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영상 / 설교영상은 음성과 ppt로 제작되었습니다.
https://youtu.be/XNnh3ujj9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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