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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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1주] 그리스도의 향기(영상설교포함)

  • 관리자
  • 2021-11-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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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대림절 첫째주일(능동교회)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14~16
 




이번 주부터 대림절, 메시아의 강림을 소망하는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오늘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모든 분께 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과 능동교회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 각처에 생명의 기운을 풍성하게 하는 여러분과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 삶의 변화 없는 “아멘!”하지 마십시오


어떤 목사님이 어느 교회 청빙을 받고 부임한 후에 첫 번째 주일 설교를 하셨답니다. 
첫 번째 주일 설교는 누가복음 10장 27절의 말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교인들은 새로 부임한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은혜롭고 좋다며 “아멘!”으로 화답하며 설교를 들었습니다. 두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첫 번째 주일과 같은 본문과 같은 제목으로 같은 설교를 하십니다. 교인들은 이상하긴 했지만, 목사님이 착각하셨나 보다 싶어 가만히 있었습니다. 셋째 주일이 되었는데 또 첫 주와 같은 본문에 같은 제목입니다.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장로님들이 당회에서 “목사님, 같은 설교를 3주째 하셨습니다.” 알려 주니 목사님은 “저도 압니다.” 하십니다. 장로님들은 “그런데 왜?”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설교할 때 “아멘!”은 차고 넘쳤는데, 다음 주에 보니 교인들의 삶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다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주에도 변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번 주에도 할 수 없이 또 같은 본문과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아멘!” 하면서도,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저는 여러분들이 변할 때까지 다른 설교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 예화로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참으로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아멘!”은 넘치지만 ‘삶’을 돌이킬 생각이 없는 신앙인의 허구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 은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지식인가, 지혜인가?


제가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신앙의 연수가 쌓이면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이것저것 주워들어 아는 것은 제법 많아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워듣다 보니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아도 아는 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삶으로 살아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데, 머리로 알면 다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은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차원이라면, 지혜는 그 이해한 것이 삶으로 살아가는 차원인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능동교회 교우들께서는 지혜로운 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데 그치지 않고,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 힘쓸 때, 여러분의 삶은 물론이요, 여러분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교회도 부흥을 이룰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보면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고, 어려운 일이요, 좁은 길이지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회개할 수 없는 죄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 중에서 어떤 죄가 더 나쁠까요? 많은 분들이 알고 짓는 죄가 더 나쁘다고 하시지만, 알지 못하고 짓는 죄가 더 나쁩니다. 왜냐하면, 죄인 줄 알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데, 죄인 줄도 모르면 회개할 기회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 중에는 자기의 의에 빠져서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면서도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한다고 하는데, 교회를 무너뜨리고, 교단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 교단을 무너뜨립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합리화하고 신앙으로 덧칠합니다. 그러면서 자신까지 속입니다. 이런 행동은 자신의 영을 죽이는 일이요, 타인의 영까지도 죽이려고 겁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아무리 입으로 하나님을 들먹이고 성경 말씀을 들먹인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와도 상관없는 사람들이요, 사망의 삯을 열매로 거두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끔찍한 죄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in)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말씀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향기인데, 왜 상반된 향기를 맡는 것일까요? 
먼저,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4절의 말씀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항상(always)은 ‘언제나, 범사에, 모든 일에’, 우리(we)를 ‘공동체성, 관계성’을 맺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in)’살아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제가 여기서 주목하는 단어는 ‘안에서(in)’이라는 전치사입니다. 이 단어를 이미지화하면 ⊔입니다. 주 안에서 거하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게 되고, 그 향기는 갇혀있지 않으므로 이웃에게로 전해집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저절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게 되고, 향기는 저절로 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오늘 예배 후,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공동의회에서 투표를 할 터인데 그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숙고하시고 기도하시면서 투표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 그리스도를 통하여(through)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한 이들의 모든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through)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통하지 않는 모든 직접성을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를 매개로 관계를 맺을  때에만 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through’라는 단어를 이미지화 시키면 이렇습니다.  ➝  ,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며, 전치사 in과 다르게 사방이 막힌 원으로 표현된 것은 신앙은 개인적인 결단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오직 예수’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신앙의 결단은 한 인간과 하나님의 일대일 관계며, 한 사람의 결단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자녀들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대신 신앙생활을 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담임목사님을 청빙하는 공동의회를 앞두고 찬반을 결정하시기 전에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결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만일 인간적인 생각만 가지고 결정하셨다면, 지금부터라도 기도하시고 결정하십시오. 나를 위해서 투표하지 마시고, 교회를 위해서 투표하십시오. 


✜ 그리스도의 향기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을 수밖에 없고, 향기를 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내고자 해서 내는 것이 아니요, 위에서 살펴본 대로 ‘항상 우리를 주안에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같은 향기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그 향기에서 사망의 냄새를 맡고, 어떤 사람은 생명의 향기를 맡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누구나 좋아하는 냄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한 길을 치닫거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차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채우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는 별로 달가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 예수님을 미워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을 박았던 이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는 생명의 향기가 아니라 사망의 냄새로 여겨졌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끝내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하여 생명의 향기를 맡는 분들 되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사망의 냄새로 여겨 거부하고, 반대하는 편에 서지 않는 지혜가 있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쇠얀 키르케고르는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빛 앞에 서면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속속들이 보이듯이,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의 죄가 모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감추고 싶은 죄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요, 내가 의롭다고 착각하던 것까지도 모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늘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옳으니 그르니 남을 정죄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로워야 얼마나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셔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오늘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공동의회를 마치고 나면, 어떤 결과이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시고 그동안 담임목사 청빙으로 인해 서원해졌던 교우들 간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여러분의 향기에서 사망의 냄새를 맡는다면 우리가 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겠지만, 하나님을 잘 믿고자하는 이들이 여러분에게서 생명의 향기를 맡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능동교회가 선한 목사님을  청빙하셔서 하나님을 잘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생명의 향기를 전하는 귀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사님을 청빙하시면, 설교만 좋다고 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셔서 신앙의 큰 변화를 이뤄가며 능동교회와 여러분이 신앙의 큰 부흥을 이루시길 축복합니다.




[거둠기도]
주님, 귀한 뜻이 있으셔서 능동교회를 세워주시고 지금까지 이끌어주셨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풍상의 세월을 겪지 않을 수 없듯이, 비바람이 부는 날도 있었지만, 주님 안에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공동의회를 합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은혜롭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회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PT 영상설교
https://youtu.be/EEGMjR039f4

*
11월 28일에는 제가 임시당회장으로 있는 능동교회 공동의회가 있어, 능동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한남교회는 이원표 목사님이 설교해 주십니다.

능동교회 설교(동영상)
https://youtu.be/D4SMBfJlF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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