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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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8주]성도의 공동생활-예배를 회복하라!

  • 관리자
  • 2021-10-2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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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와 함께하는 종교개혁의 달(4)
성도의 공동생활 – 예배를 회복하라
요한복음 4:23~24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 4:23,24).”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복 주신 귀한 날 예배하시는 여러분들과 가정과 하시는 일에 큰 복을 주시길 바랍니다. 본회퍼와 함께 하는 종교개혁의 달 시월, 네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어느 새, 시월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올해도 곧 지나갈 것입니다. 


세월의 빠름 속에서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상’은 ‘한결같은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무상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 자신이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유한의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이 유일합니다. 유한성을 인식한 인간은 죽음과 죽은 이후의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생각 너머에 있는 절대자를 인식하고, 절대자에게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온 세상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무위자연’일뿐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겠다고 하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강물이 흘러가면서 가는 곳마다 생명을 피워내기도 하고, 때론 범람으로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강물의 속성을 따라 모이면 낮은 곳으로 흘러갈 뿐입니다. 다른 모든 자연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자에게 영광을 돌리고자하는 의도를 가지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자’라고 말했습니다.
 

■ ‘홀로’와 ‘함께’


본회퍼는 <성도의 공동생활>이라는 책을 통해서 신앙생활은 ‘홀로’와 ‘함께’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합니다. ‘홀로’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성례전을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규칙적인 기도와 성경읽기와 묵상과 성례전적인 사귐을 몸으로 체득할 때, 교회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도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지만, ‘교회’라는 명칭자체가 ‘함께’를 의미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온전한 예배는 함께 드리는 예배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함께 예배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함께 교제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through)우리에게 주어졌으므로 우리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in)만 서로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친교모임과 다른 점입니다. 세상의 친교모임들은 관심분야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직접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제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만’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도의 교제는 언제나 ‘함께’지만, 결국 신앙의 결단은 ‘홀로’이뤄집니다. 
 

■ 예배를 회복하라


코로나 19는 인간의 생활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19는 2천년 동안 지켜 오던 교회의 예배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다시 대면예배를 드리면서 기독교계에서는 ‘예배의 회복’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회복한다는 것이 이전에 드리던 예배를 회복하는 차원에 머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가대부터 새벽예배, 찬양예배, 수요성경공부, 기도회 등 모든 것이 정상화되어야겠지만, 이전에 드리던 구태의연한 예배를 다시 드리겠다고 하면 ‘예배의 회복’이 아니라 ‘회귀’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예배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냥 제가 생각해서가 정한 아니라, 예배학에서 나오는 내용들과 성경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하나는,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는 경건하게 드려져야 하고, 특히 설교자는 정제된 언어로 설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므로 가급적이면 원고설교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말씀중심의 개신교라지만, 기본적인 예전이 예배 안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외의 찬양예배, 기도회, 성경공부 등은 조금 자유롭게 형식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예배는 경건하게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 한남 교회의 예배는 한국의 ‘예배학’ 기초를 세우신 한신대학교 명예교수인 박근원 교수님조차도 ‘훌륭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늘 힘쓰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이후, 한남교회가 온전한 예배를 회복할 수 있길 기도해 주시고 함께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예배는 목사 혼자서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함께’할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리고, 그 은혜로 인하여 교회가 달라지고, 우리의 가정이 달라지고, 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 거룩한 현실


본회퍼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이상이 아니라 거룩한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조금 쉽게 풀면, “이런 교회가 됩시다!” 이상적인 교회에 관해 말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그런 교회가 되라는 이야깁니다. 그것을 ‘거룩한 현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거룩한 현실이야말로 ‘영적현실’이고, 교회가 거룩한 현실을 만들어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공동체’는 한 사람이 만들 수 없습니다. 예배 공동체는 ‘더불어함께’ 예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려면 집례자, 성가대원, 반주자, 대표기도하실 분, 대표로 봉헌하시는 분, 목사, 예배에 참석하시는 교인들, 그리고  예배드리기 전 예배당을 정리하는 일과 예배를 드리기 위한 모든 준비과정들, 온전한 예배의 끝을 친교의 식사를 나누는 것까지 포함시키면 식사준비를 하고 설거지까지 수많은 봉사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더불어함께’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이뤄질 때 우리는 ‘거룩한 현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회펴 목사님은 교회를 이상이 아니라 거룩한 현실로 만들어가려면 두 가지를 명심하라고 합니다. 하나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언사를 하지 말고, 둘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 되셔서 한남교회는 이상을 따라 사는 교회가 아니라 거룩한 현실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 영적인 사랑


본회퍼 목사님은 인간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타인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타인을 사랑합니다(성도의 교제 P.49)”

인간적인 사랑은 타인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자신에게 매인 자로서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타인을 소유하고 정복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랑은 타인을 압도하여 저항할 수 없게 만들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타인을 이용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온실에서 인위적으로 꽃을 피우는 것 같아서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어린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은 이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예수님을 매개로 하지 않는, 통하지 않는 직접적인 사랑은 아이를 온실에서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이들을 온실에서 키우지 말고 자연에서 키우십시오. ‘영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하늘 아래서 비바람을 맞고 햇빛을 받아 경실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전할 때 본문으로 삼았던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여기서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는 말씀은 그동안의 인간적인 사랑, 예수님을 통하지 않았던 직접적인 사랑을 미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들이 어찌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되려면, 예수님을 매개로 된 ‘영적인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성도의 교제


교회 안에서, 성도의 공동체에서의 교제의 목적은 서로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서로를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 대부분은 예수님을 매개로 하지 않은 직접적인 관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제를 하고 있다면 미움과 다툼이 아니라 사랑과 협력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도가 되면,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성도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聖徒’가 무엇입니까?
성도라는 헬라어는 ‘하기오스(ἅγιος)’입니다. 하기오스는 ‘거룩한, 구별된 일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거룩하신 자이신 하나님 성부의 뜻, 성자이신 예수님의 사역, 성령의 임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모여 이룬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한남교회가 예배를 회복하는 귀한 교회가 되어 거룩한 성도의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체 구성원인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은혜 안에 거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우리에게 주님의 몸 된 교회, 한남교회를 통하여 성도의 공동생활을 이어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교회가 주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예배하며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해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어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에 강렬한 예배의 회복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셔서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되는 귀한 교제를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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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 미리 듣고 예배에 참석하시면 설교를 좀더 깊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youtu.be/alGYiQCnw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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