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7주(20211017)
본 회퍼와 함께하는 종교개혁의 달(3)
옥중서신 –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14~16

참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오늘 이곳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자 힘쓰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고난 중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신앙을 지킨 본회퍼 목사님의 옥중서신을 살펴보며 우리의 신앙을 다잡아보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코로나19로 인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 초부터 비대면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어느새 여름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이 시작되어서야 조심스럽게 대면예배를 시작합니다. 종교개혁의 달 시월을 ‘본회퍼와 함께하는 종교개혁의 달’로 삼고 매주일 본회퍼의 대표적인 저작과 신앙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을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첫 주에는 ‘값비싼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가장 귀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드림으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주일엔 ‘나를 따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명령에 복종한 이들의 모든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through)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통하지 않는 모든 직접성을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를 매개로 관계를 맺을 때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주일입니다. 본회퍼 목사의 ‘옥중서신’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 디트리히 본 회퍼의 ‘옥중서신’

먼저 ‘옥중서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옥중서신’은 본회퍼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1943년 4월 5일부터 1945년 4월 9일 나치정권 붕괴 직전, 교수형에 처해 지기 전까지 2년간 부모님과 베트게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본회퍼가 교수형을 당한 뒤 십 년이 지난 후에 출간되었습니다. 1943년 1월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했지만, 약혼한 지 3개월 만에 히틀러의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본회퍼는 류마티즘으로 고생했지만, 끊임없이 독서하고 사색하고 편지 쓰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편지에는 신학, 설교, 시 등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송구영신 예배 때 부르던 노래, 시월부터 결단찬송으로 부르는 ‘주님의 선하신 능력으로’라는 찬송은 본회퍼의 마지막 편지에 담긴 마지막 시로 만든 찬양입니다.
개인적으로 신학생이었던 1980년대 초반에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세세한 내용보다는 불의에 항거하다 옥에 갇히고, 교수형에 처한 삶의 행적을 통해서 감동받았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80년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은 군부정권이 지배하던 시기였고, 80년대 중반부터 숨죽였던 민주화운동이 다시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는 책 제목 자체가 불온도서 취급을 당하던 시대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은 후, 신앙의 양심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본회퍼처럼 신앙의 양심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청년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37년 만에 다시 ‘옥중서신’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청년 신학도일 때 읽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 시대적인 상황이 바뀐 까닭도 있겠지만 연배의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에는 39살에 삶을 마감한 본회퍼가 엄청난 인생의 선배였지만, 37년이 지난 지금은 한참 젊은 후배 목사그룹에 속합니다. 대한민국에서 39살의 목사는 애송이 취급을 당합니다. 물론 23세에 대학교수가 된 천재성을 가진 본회퍼라고는 하지만, 그가 살았던 삶보다 20년을 더 넘게 살았고, 목사로서만 26년을 살아온 나는 과연 그보다 더 깊은 사유를 하고 있는지 반성하면서 ‘옥중서신’을 읽었습니다.
이번 주 성서본문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본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in)’라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그리스도를 통하여(through)’와 관련해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한(into)’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다면 아직도 ‘예수님을 통하여’살지 않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향기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그 향기에서 사망의 냄새를 맡고, 어떤 사람은 생명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입니다.

본회퍼목사가 설교를 통해 공개적으로 나치를 비판하고,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한 단체에 가입하자 나치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를 스파이, 적그리스도, 살인자로 매도합니다. 신앙의 양심에 따른 행동이었지만, 나치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불순분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치의 만행을 아는 이들과 그들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이들에게 본회퍼는 그 시대의 진정한 목사로 보였을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 한 사람의 행동을 보고, 어떤 이들은 사망의 냄새를 어떤 이들은 생명의 냄새를 맡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누구나 좋아하는 냄새가 아닙니다. 오히려 악한 길을 치닫거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차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채우는 이들에게는 사망의 냄새이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사망의 냄새라고 배척을 받겠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기인한 ‘그리스도의 향기’이므로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본회퍼가 나치에 의해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라 하여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결국 그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품은 참 목사요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옥중서신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삶은 어떤 것인지 두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사람은 첫째, 사소한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의 첫 번째 옥중서신은 1943년 4월 14일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로 시작됩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개똥지빠귀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봄이 오는 듯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도 감사한답니다. 그러는 것도 이로운 것 같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나니 평상시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개똥지빠귀의 노랫소리’조차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수감생활을 하는 내내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석방될 것이라는 기대도 물론 있었지만, 혹시라도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을 것을 알았기에 의도적으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작은 것에도 늘 감사를 표현합니다. 어떤 편지에서는 부모님이 보내주신 무와 감자, 간수가 듣는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온 노래, 차입된 책, 심지어는 강요된 침묵에 관해서도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려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고 사소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소하게 여겨지던 것들에서 소중함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되면 범사에 감사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1943년 11월 9일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 “이 건물에서 들리는 것과는 다른 소리를 한 번 듣고 싶군요.”라고 씁니다. 테겔 교도소에서 1년 뒤에 쓴 수감보고서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밖에서 감방으로 가장 먼저 파고든 소리는 간수가 미결수에게 던지는 거친 욕설들이었다.” 이런 상황들은 너무 사소해서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개똥지빠귀’의 노랫소리조차도 소중하게 여겨지고 감사하게 한 것입니다. 무언가를 상실한 후에 소중함을 아는 것보다, 소유하고 있을 때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사람은 둘째로, 하나님의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1944년 7월 18일 친구에게 쓴 편지 일부입니다.
“세상살이에서 하나님의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어찌 성공했다고 우쭐하겠으며, 실패했다고 낙담하겠는가?....나는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네. 나는 내가 걸어온 길에서만 그것을 알 수 있었네. 나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만족스러울 뿐이네.”

하나님의 고난을 함께 나누는 것은 ‘현세’ 즉 살아있는 동안,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에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본회퍼는 ‘현세에서 충만한 삶을 살 때에만 비로소 믿는 법을 배울 수 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이란, 지금 여기에서 “고난을 받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에 눈길을 주시고 계십니까? 누구의 기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까? 고난 받는 이들, 사회적인 약자들과 함게 하나님이 계시고, 그들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시고, 그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이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사람들이 하나님 계시는 그곳을 외면한다면 생명의 냄새가 아니라 사망의 냄새가 될 것입니다. 한남교회와 여러분은 생명의 향기를 품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야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감사하고 만족스러운 삶,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 도 감사하시고, 하나님의 고난을 함께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선하신 주님, 주님의 선하신 힘에 감싸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게 하시며, 언제어디서든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시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며, 하나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족하는 삶이 주는 유익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게 하시고, 그로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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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설교영상은 17일 정오부터 유트뷰영상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mJ2Z77KaK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