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회퍼와 함께하는 종교개혁의 달(2)
나를 따르라
누가복음 14:25~27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본 회퍼와 함께하는 종교개혁의 달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에는 ‘값비싼 은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였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변질시킨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밖에 버려져 밟힐 뿐입니다. 값싼 은혜에는 교회와 신앙의 원수입니다.

이번 주일 주제는 “나를 따르라”하시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복종한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심 복종한 사람만이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했다는 것이요, 그 말씀을 지속적으로 따름으로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제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에 “나를 따르라!”하셨고, 제자들은 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복종하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따르라”말씀하시는 것이므로 ‘부르심의 전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되려면 부르심에 복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복종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즉, 지금까지의 생활과 결별하고, 옛것을 뒤로 하고 “걸어 나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복종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복종함으로써만 예수님과 친교를 맺을 수 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에 그를 따라 나서는 ‘첫걸음’,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이 첫걸음은 나중에 이어지는 걸음과는 질적으로 다른 걸음입니다. 여러 갈림길 중에서 어떤 한 길을 걸어갈 때 내딛는 첫 걸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복종하고 따르는 첫 걸음은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시작이요, 그 첫 걸음을 뗌으로서 제자가 된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 신앙고백을 하게 될 것이고, 십자가의 고난 이후에도 믿음으로 ‘예수님의 길’을 지속적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이 부르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이웃을 통해서,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듣습니다. 예를 들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실 때, 우리는 그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실 때, 복종하는 것이 그분을 따르는 것이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실 때에, 고난 중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심으로 제자도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의 길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 사이에 끼어드시는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부르실 때에 복종한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원했지만, “나를 따르려면”하신 전제조건을 포기하지 못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마 19:16~22, 막 10:17~31, 눅 18:18~30)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그는 버릴 것이 너무 많아 근심하고 돌아갑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오늘 본문말씀은 해석하기 난해한 본문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려면,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한다고 하십니다. 게다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따라야만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가지는 첫 번째 의미는 ”나를 따르라!“고 부르심을 받는 사람은 홀로 결단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단독자로, 개인적인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의 의지와 별개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대신 신앙생활을 잘해서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살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그 사이에 예수님이 끼어들겠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는 제자가 되기로 결단하는 그 사람의 목숨에 까지도 예수님께 서 중간에 끼어들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면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존재하시는 예수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시는 예수님, 사람과 현실(일상/ 삶) 사이에 존재하시는 예수님은 중보자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던 부모와 처자와 형제, 자매의 관계를 단절하고, 그 사이에 예수님을 놓고 새로운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 이래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예수님은 중간자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오직 예수, 예수님 없이는‘ 하나님께도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중간자이신 예수님을 경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말씀을 경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어 전치사 중에서 ’through’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관통해서, 통과해서’라고 해석되는 단어인데, 이미지로 나타내면, 원에 들어갔다가(into) 통과하는 것입니다. 즉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중보자이자 중간자가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이요, 복종하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관계 맺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부모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라는 말씀은 그들과의 관계를 맺을 때에 예수님을 매개로,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로 하여 관계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 대해서 자식이나 형제자매에 대해서, 한 사람의 목숨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사랑하라 하시고,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따르기 전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로스의 사랑에서 아가페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로하지 않는 부모사랑, 자식사랑, 형제자매 혹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사랑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직접적인 사랑에 누구도 끼어들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예수님조차도 끼어드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니 사랑한다고 했는데,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마마보이를 만들고, 자기의 삶 하나 책임질 수 없는 나이만 든 나약한 어른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을 우리의 중간자, 중보자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보고, 세상을 봐야 합니다. 그런 지혜로운 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지고 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이와 같은 말씀이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도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누구에게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즉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순간 자신이 직접 지고 가던 세상의 무거운 짐과 수고를 내려놓고, 그분이 지어주시는 짐과 멍에를 매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따른 후의 멍에는 그분이 함께 지심으로, 그분을 통하여 지게 됨으로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그분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이 우리 삶에 끼어들 때, 중간자가 될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직접성), 세상을 이기며(간접성)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어떠한 직접성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경우하고, 그의 말씀을 경유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경유(through)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값싼 은혜에 취해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제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그 이름표만 달고 살면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만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성령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시며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 명령에는 복종 아니면 불복종이 있을 뿐이요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부르심에 복종하신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삶에서 ‘예수 그리스와 하나님의 말씀’이 중간자가 되게 하십시오. 범사에 그리스도를 경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유하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거둠기도]
”나를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신 주님, 그 명령에 복종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하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하오나 주님,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제자답지 못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바꿔버릴 때가 많습니다. 다시금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그 길을 걸어가고자 하오니 우리를 붙잡아주옵소서. 항상 주님을 경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유하여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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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주일은 전염병확산의 방지를 위해 비대면 예배로 드립니다.
예배영상은 주일 오전 7시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xmPxhlbxo2E
only 설교영상
10월 10일 정오부터 시청 가능합니다.
https://youtu.be/DCqFd4TA8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