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5주/ 20211003
본 회퍼와 함께하는 종교개혁의 달(1)
값비싼 은혜
고린도전서 6:19~20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시월입니다.
시월은 종교개혁의 달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던 2017년 그를 축하하는 기념식과 행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시점인 2021년 한국의 개신교는 과연 개혁하고 있는지, 개혁의 대상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이번 시월 달은 ‘본 회퍼와 함께하는 종교개혁의 달’로 삼고, 그의 저작들을 중심으로 건강한 교회와 신앙에 대해 5주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주제로 ‘값비싼 은혜’에 대해 다루고, 두 번째 주제는 ‘나를 따르라’, 세 번째 주제는 ‘옥중서신’, 네 번째 주제는 ‘성도의 공동생활’ 그리고 다섯 번째는 총정리를 하면서 ‘복종과 믿음’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1906년 2월 독일 블레슬라우에서 태어났습니다. 17세의 나이로 튀빙겐에서 신학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18세였던 1924년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합니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신도의 공동생활’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3세에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자격증을 취득합니다. 1931년부터 목사안수를 받고 24세부터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를 합니다. 이런 와중에 독일교회에 대한 나치의 간섭이 심해지자 이에 항거하는 교회저항운동에 가담했고,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이 발발하기 직전 잠시 미국에 갔을 때, 주변에서 망명하라는 강력한 권유가 있었지만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저는 독일의 기독교인들과 같이 독일의 어려운 시기동안 내내 함께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심했습니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저도 이 시대의 시련을 나누지 않는다면, 전쟁이후에 독일에서 기독교인으로의 사회적 삶의 재건에 참여할 권리가 저에게는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합니다.
“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폭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 폭주를 멈추게 하려면 부득불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미친 사람이 모는 차에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이 목사로써 나의 과제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미친 사람의 운전을 중단시키는 것도 바로 나의 과제입니다.”
1943년 1월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했으나 그해 4월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었고, 1945년 4월 9일 나치정권 붕괴 직전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존경받는 직업 1위가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지요?
1위가 소방관이고, 2위가 간호사, 3위가 환경미화원, 4위는 프로운동선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종교인은 정치인보다도 못하다고 하고, 종교인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 목사들은 존경은 고사하고 거의 꼴찌수준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편견과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결과라면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요즘 목사들과 교회의 행태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싶은 자괴감이 듭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1세기 남짓인데, 1세기 남짓인 한국기독교는 2천 년 역사를 가진 기독교 정신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법 그럴듯한 나무로 자라는 것 같았지만, 정작 열매를 맺으니 먹지도 못할 열매를 내어놓은 것입니다.
왜 이런 지경이 이르렀을까 생각해 보면 ‘값싼 은혜’가 넘쳐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은혜는 가장 귀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드림으로 주신 측량할 수 없는 ‘값비싼 은혜’인데, 거저 주셨다고, 값없이 주셨다고 많은 이들이 ‘값싼 은혜’로 바꿔버렸습니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원수입니다.
값싼 은혜란 헐값에 팔리는 용서, 헐값에 팔리는 위로, 헐값에 팔리는 성찬, 무한정 쏟아내는 은혜, 대가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은혜 등을 의미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 생각은 하지 않고, 받은바 은혜로만 만족하는 것이 값싼 은혜입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 죄의 고백이 없는 성찬, 참회가 없는 죄 사함, 실천 없는 아멘, 돌이킴 없는 회개, 고난 없는 순례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값싼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진리를 부정합니다. 값싼 은혜는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의롭다고 인정하므로 껍데기 그리스도인, 무늬만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냅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 칭의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행위는 쓸 데 없고, 어차피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죄인이니, 받은바 은혜로 만족하라!”고 현혹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기독교의 은혜도 공공자산이 되었으며, 이제는 헐값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형기를 마친 사기꾼, 조폭두목이라도 기도원에서 눈물콧물 흘리며 기도하면, 삶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도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는 곳, 그래서 목사가 되어 사기치고, 조폭두목 행세를 해도 여전히 목사일 수 있는 곳, 성추행을 저지르고 교인들의 헌금을 빼돌리고, 자식들에게 세습을 해도 ‘우리 목사님’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한국교회가 가능한 이유는 값싼 은혜에 중독된 교인들이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르기는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거나,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에 관심조차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만이요, 거짓입니다.
값싼 은혜를 거부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달 시월에, 우리 안에 있는 값싼 은혜를 벗어버리고 값비싼 은혜를 회복하는 한남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 정말 비싼 것은 공짜다

박노해 시인의 ‘다른 길’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다 공짜다.
나무 열매도 산나물도 아침의 신선한 공기도, 눈부신 태양도 샘물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도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은 공짜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짜라고 값싼 것이 아니다. 거저 주었다고 값싼 것이 아니다.
값없는 은혜란, 가장 소중한 것으로 주어진 것이다.
값없는 은혜란, 값싼 것이 아니라 감히 인간이 값으로 살 수 없어서 거저 주어진 것이다.
기독교의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값비싼 은혜는 우리가 되풀이해서 찾아야할 복음이요, 우리가 구해야할 은사요, 우리가 두드려야할 문입니다. 왜 은혜가 값비싼 것이냐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은혜인 것은 목숨까지도 바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이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이유는 죄는 비난하지만, 죄인은 의롭다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던 아들의 목숨을 대가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멍에를 씌우기 때문이고, 그것이 은혜인 이유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기(마 11:30)”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에서 보물이 묻혀있는 밭이나 최상의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모든 것을 다 팔아’ 샀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값비싼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 회퍼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깨달음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죄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터가 선물로 받은 것은 값비싼 은혜였다. 그 이유는 죄의 행위를 면제해 준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끝없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인간이 아무리 경건한 길을 걷고 아무리 경건한 일을 해도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에 항상 자신을 추구하는 이기심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 끝에 행위가 아닌 ‘칭의’라는 은혜로 인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루터가 ‘칭의 교리’를 말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예수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은혜가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순간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예수 따르기를 면제받으려고 한다면 자기를 기만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값싼 은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파멸시켰습니다. 값비싼 은혜를 회복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6장 2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누리는 은혜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제물을 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값싼 것이 아니라 값비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로인해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또한 값비싼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값비싼 존재인 우리의 몸과 영으로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값비싼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에 복종하는 것이 값비싼 은혜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값싼 은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넘쳐나지만, 밖에 버려져 짓밟히는 쓸모없는 소금이 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께서 값 주고 사신 귀한 존재임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우리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아 우리의 전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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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주일예배는 비대면 예배로 드립니다.
비대면 예배를 위한 영상은 토요일 아래에 링크를 걸겠습니다.
https://youtu.be/yL-hHCGMpY4
10월 3일 오전 7시부터 시청가능합니다.
설교영상/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설교영상만 별도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GCBycmqV7X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