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3주/ 한가위주일/남신도주일(20210919)
복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시편 1:1~6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은 창조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를 늘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새롭게 재창조하여 주시길 바라며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거듭나는 일과 재창조되는 일은 하나님 혼자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응답과 결단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어떤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강압적으로 개입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가?(잠언 1:20~33)’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인디언의 잠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말에서 행동이 나오고,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이 되며, 성격은 그 사람의 운명을 이끈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근원의 되는 생각이 지혜로워야 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2).”하는 말씀대로 살아야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일 성서일과 중에서 시가서의 시편 1편의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의 삶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여러분들과 가정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가득하시길 바라며 ‘복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복 받는 삶’을 원하지만, 더 좋은 것은 ‘복 있는 삶’입니다.
지난 주간에 저는 ‘개역성경’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오경웅의 ‘시편사색’과 ‘영어성경’을 비교해 읽으면서 묵상했습니다. 천천히 읽기도 하고, 필사하기도 하고, 암송하기도 했습니다. 시편 1편의 말씀 속에 깊이 젖어들기를 원했고, 한 말씀, 한 단어 묵상을 할 때마다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신비하여 날마다 새롭다는 점입니다. 그저 이전에 읽고 깨우쳤던 진부한 내용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지침을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제목은 ‘복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입니다. ‘복 받는’이라는 표현이 아직은 이뤄지지 않는 미래형이라면, ‘있는’이란, 지금 소유하고 있는 현재형을 의미합니다. 이미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복 있는’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풍성하게 누리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국 기독교에서 복의 개념은 다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도 복입니다.
물신적인 복에 치중하면 ‘복의 개념’은 물질적인 것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복의 기준이 되면, 예수님 당시 사회적인 약자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 지병이 있는 이들을 죄인 취급하던 위선적인 종교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신앙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복을 비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물질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작용한다면, 그런 기도는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 1편 1~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이란, 첫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 둘째,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것, 셋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 넷째,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 있는’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물신에 기반한 기복신앙과 어떤 점이 다른지 감이 오시는지요? 기복신앙은 ‘받는 복’ 즉, 자기의 필요를 구하는 데에만 급급하지만, 복 있는 사람은 이미 주신 바 ‘복 있는 삶’을 살아감으로 자기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복 있는 사람이 피해야할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알 수도 있습니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가 그들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우리는 조심해야 하고, 동시에 우리가 이런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먼저, 악인입니다.
‘악인들의 꾀’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악인들은 늘 선한 것으로 가장하여 악을 행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양의 탈을 쓰고 이리 짓을 하는 것입니다. 오경웅의 시편사색에서는 이들에 대해 ‘無道한 자’라고 합니다. 도가 없는 사람, 마땅히 걸어야할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흔히, 흉악범죄를 저지른 이들이나 나쁜 일을 저지른 이들만 악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無道한 자’가 바로 악인입니다.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의인이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별명이 있었는데 그 별명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그 길을 걷는 복 있는 분들 되시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죄인입니다.
여기서 ‘죄인’은 인간의 율법에 따는 구분이 아닙니다. 이 역시도 ‘길’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의 길은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 따르면 ‘망할 길’이요, 오경웅의 시편사색에 의하면 ‘소인배’들이 서 있는 길입니다. 어떤 길을 서성이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 있고,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에 서 있는 이들이 복 있는 이들이요, 군자요, 의인입니다. 헛된 길, 사망의 길을 기웃거리지 마시고 늘 생명의 길에 서 있는 여러분이시길 바랍니다.

셋째, 오만한 자입니다.
‘오만한 자’는 ‘교만한 자’로 번역되었고, ‘가볍기 그지없는 자’로도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점은 이들이 많이 배웠다는 점입니다. 메시지에서는 오만한 자를 ‘배웠다고 입만 살았길 하나’로 번역했습니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 즉, 사기꾼들의 입입니다. 말로만 앞서는 사람들이 오만한 자들입니다. 신앙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지 않고, 머리와 입으로만 산다면 오만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해야할 세 가지 유형의 사람, 악인, 죄인, 오만한 자는 우리가 피해야할 타자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 그런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힘서야 하는 것입니다.
■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시편 1:2~3).”
먼저,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6절에서 말씀하듯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의인들의 길을 걷게 되고, 이 길을 걸음으로 모든 일이 형통하는 것입니다.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이 말씀을 잘 읽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읽듯이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힘쓰고 살아가라는 말씀이듯, ‘주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하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묵상, 기도, 성경읽기 등은 지나치지만 않으면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 말은 묵상과 기도와 성경읽기라도 ‘지나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 성경필사를 좋아하는데, 한 번 필사를 시작하면 세 시간 정도는 금방 갑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새워서 시간을 잘 조정해야 합니다. 좋다고 마냥 성경필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목사니까 이 정도는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만일 이렇게 성경필사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회라는 테두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신앙생활 열심히 하신다고 집안일이고 뭐고 다 접고 성경필사만 하고, 성경공부 모임, 기도원, 교회만 들락거리다 나중에 후회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그것은 그의 말씀에 젖어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사색에서는 ‘함저, 함영’으로 번역되었는데, 일상의 삶 속에서 거룩한 말씀을 발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것이 주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셔서 복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성서일과 서신서의 말씀은 야고보서 3장 13절에서 4장 3절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주제는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삶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되겠습니다.
1) 선한 일을 행함으로 지혜를 보이라(약 3:13).
2)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말라(약 3:14).
복이란,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으며, 복 있는 삶을 살아가면 부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힘써야하는 것입니다. 늘, 자신이 서 있는 길이 어딘지 살펴 선한 길,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일상에 녹아져야 합니다. 신앙과 삶이 하나로 젖어있지 못하고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으면,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될 수밖에 없어 복 있는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일상에 신앙이 녹아있는 삶이 선한 삶이요, 지혜로운 삶이요, 진리에 합하는 삶입니다. 이런 ‘복 있는 삶’을 살아가는 분들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창조의 계절이요, 걷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예수님의 길, 그 길을 걷는 복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하옵소서. 이렇게 살아가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이끌어주심을 믿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사는 삶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9월 19일 예배도 전염병 확산의 방지를 위해 비대면예배로 드립니다.
비대면예배 영상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고, 확인을 누루시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19일 오전 7시부터)
https://youtu.be/zPsG9NgKU0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