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성령강림후16주/창조절2주]지혜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 관리자
  • 2021-09-12 11:00:00
  • hit2222
  • 222.232.74.74

성령강림후 16주/ 창조절2주(20210912)
지혜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잠언 1:20~33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세상은 어수선하지만, 가을은 무심하게 깊어가고 있습니다. ‘無爲自然’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저 역시도 빌딩 숲에 갇혀 살다보니 가을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근교로 나가 논두렁을 따라 걸으며 익어가는 벼를 바라보니 가을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 가을에 피어나는 꽃들


 

제가 지난주에 눈 맞춤한 꽃들은 논에 피어나는 보풀, 습지가 많은 곳에서 피어나는 물봉선, 신비한 파란 색깔의 꽃을 피우는 달개비, 하얀 참취, 이파리와 꽃이 어우러져 나비처럼 보이는 나비꽃, 며느리의 한을 품고 피어난 며느리밥풀꽃과 며느리밑씻개와 며느리배꼽, 물을 깨끗하게 정화해주는 고마리, 쥐꼬리를 닮은 쥐꼬리망초, 설사 났을 때 다려먹는 이질꽃, 나팔꽃을 닮은 유홍초, 노랗게 피어나는 금마타리, 보랏빛 개미취, 코스모스, 삼겹국화, 세잎돌쩌귀, 금강초롱, 진범, 곰취, 강아지풀 등등이었습니다. 제가 꽃 이름을 이야기할 때, 여러분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른 꽃이 몇 개인지요? 꼭 이름을 알아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관심이 있고 사랑한다면 이름을 모를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궁금해지기 마련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가족관계는 어떤지....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이름’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유명한 시 <꽃>에서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면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설파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름’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중요한 일을 맡기실 때에는 개명을 해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냥 ‘이름 없는 꽃’이라고 하지 마시고, 잡초라고 하지 마시고 이번 가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들풀의 이름 하나쯤은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 모든 피조물은 다 소중하다.


저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돌멩이 하나 들풀 하나 허투루 지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직소퍼즐 같아서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고, 하나라도 손상되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세계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이렇게 귀하니, 가장 심혈을 기울여 창조하신 인간은 더더욱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인간의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은 물론이요, 같은 종인 사람들끼리도 인종과 생각과 종교와 빈부의 격차가 다르다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교회조차도 개신교, 가톨릭, 보수, 진보로 나뉘어있고, 교파와 무슨 회로 나뉘어져서 더불어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뜻과는 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의 신념, 이것은 참 무서운 전염병이요 질병입니다.

창조의 계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회복해야할 것은 ‘더불어 살아감’,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연이요,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일상 역시도 우리가 자연스럽게 접하는 자연입니다. 일상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쓰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지혜로운 삶인 것입니다. 
 

■ 성서일과(창조절 2주, 성령강림후 16주)


저는 창조절 두 번째 주일 성서일과의 주제단어를 ‘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일과 잠언의 말씀은 제목 자체가 ‘지혜가 부른다’입니다. 이사야서(50:4~9)의 말씀은,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 담아 듣고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음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시편(시19, 116)의 말씀은, 창조세계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주시는지 그 은혜를 앎으로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약 3:1~12)의 말씀은 ‘언어생활’에 관한 것으로, 혀를 제어하여 말에 실수가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힘쓰라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서 마가복음(8:27~38)은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가 들어있는 본문입니다. 대답은 이렇게 하면서도 여전히 예수님이 가시고자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제자들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막8:38)에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의 신비를 보는 눈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니, 창조세계는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런 생각조차 없으니 말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회복하여, 지혜로운 자로 살고자 한다면, 창조세계와 일상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 인디언의 격언


인디언의 격언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너의 생각을 조심하라. 생각이 곧 말이 되기 때문이다.
너의 말을 조심하라. 말이 곧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너의 행동을 조심하라. 행동이 곧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너의 습관을 조심하라. 습관이 곧 너의 성격이 되기 때문이다.
너의 성격을 조심하라. 성격이 곧 너의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생각으로부터 말이 나오기 때문에 ‘말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고, 말이 곧 사람이기에 한 사람의 삶은 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하고, 말한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말은 말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과 소망이 울리는 꽹과리이듯이, 진정성이 없는 말, 생각 없는 말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의 삶에 폭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디언의 격언처럼 말이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 가장 먼 여행길


 

여행길 중에서 가장 긴 여행길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 어떤 길인지 아시는지요?
예, 그 길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이라고 합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느껴지기까지는 참으로 멀고 먼 여정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지 않습니까? 머리로는 알 것 같은데, 가슴으로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맨숭맨숭 한 것 아닙니까? 저는 여기에 두 번째로 먼 여행길 하나를 추가합니다. 그것은 바로 가슴에서 손과 발에 이르는 여행길입니다. 가슴 떨림과 울림과 감격, 이것이 구체적인 삶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면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계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없습니다.

창조세계와 모든 일상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생각의 차원), 이웃에게 선한 말을 하고(말의 차원), 말한 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행동의 차원), 끊임없이 실천하면(습관의 차원) 삶의 스타일(성격의 차원)이 만들어집니다. 삶의 스타일을 잘 형성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삶의 영역으로(운명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 지혜가 부른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지혜가 부른다.’는 제목의 잠언서의 말씀을 보면, 지혜가 우리를 부르는데 길거리, 광장, 시끄러운 골목,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소리를 높이고 지르며 발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어느 누구도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지혜가 부른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불러도 어리석은 자들, 듣기 싫어하는 자는 듣지 않고, 오히려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말만 보고 듣습니다. 다른 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편향확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지속적으로 보고 듣다가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가짜 뉴스’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서 확산되고 한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막8:38)’에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려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잠언 1장 31절 ‘그러므로 자기의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에도 지혜는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외쳐지고 있습니다. 저 들판의 꽃 한 송이를 통해서도, 작은 곤충을 통해서도, 자연 현상을 통해서도, 우리 사회 현상은 물론이요,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지혜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외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을 그냥 허투루 여기지 마십시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난 것들, 사건들, 독서하며 읽은 한 문장, 성경 한 구절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런 깊은 묵상들은 우리의 말로 표현될 것입니다. 아무 말이나 막 던지지 마시고, 깊은 묵상을 통해서 정제된 말을 하십시오. 선한 말과 이웃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는 말을 하십시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한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자기 꾀에 넘어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말한 대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삶으로 살아본 사람만이 진심어린 말을 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살아감으로 본이 되는 것입니다. 말보다는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 지혜로운 사람이 누리는 복


잠언 1장 3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내 말’은 곧 ‘지혜의 말씀’입니다. 이런 험한 시대에 평안하게 살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재앙의 두려움’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입니까? 지혜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이런 삶을 소망하는 것은 기복신앙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평안히 살고, 재앙의 두려움이 없는 삶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이런 삶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누리는 복이라는 것을.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가을입니다.
가을은 거둬들이는 계절입니다. 이 가을에 바깥으로만 떠돌던 우리의 마음을 거둬들이고, 세상일에만 관심을 두던 시선을 우리의 마음으로 돌리셔서 자신을 돌아보아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하나님, 들판에 피어나는 꽃들과 공중의 새와 바람과 햇살, 주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주님, 깊이 생각하게 하시고, 선한 말을 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게 하옵소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오니, 주님,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창조절 2주 예배도 전염병 확산 방지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비대면예배로 드립니다.
비대면예배를 위한 영상(주일 오전 7시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zzZAR9Kzhg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