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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15주/창조절1주] 은혜를 아는 삶

  • 관리자
  • 2021-09-0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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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1주/성령강림후 15주/창조절(20210905) 
은혜를 아는 삶
야고보서 2:1~10




창조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창조’라는 단어는 ‘새롭게 시작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조의 계절에 비대면 예배를 종식하고, 대면예배를 드리며 다시금 교회공동체의 예배를 새롭게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새롭게 회복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재창조요, 구태를 벗어버리고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새롭게 창조되려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 은혜를 알면 변한다.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은혜’를 알면 변한다고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제대로 안다면, 곁길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곁길로 빠졌다가도 은혜를 알면 다시 돌아올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바람과 햇살과 비가 악인이나 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주어졌듯이, 십자가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십자가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는 자만이 예수님을 통해 얻는 구원의 은혜를 알고,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이요, 자발적인 결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가 십자가 은혜는 열려있지만, 안타깝게도 누구나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오늘날, 십자가는 모두에게 열려있으며,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와 교회에서 여전히 육의 양식을 얻는 데 안주하거나, 자기의 안위와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교회와 십자가를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한남교회가 표면에 드러난 표층의 신앙이 아니라, 저 깊은 심연의 깊이를 가진 심층신앙을 갖길 기도하고 힘쓰고 있습니다. 심층의 신앙으로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고, 그 깨달은 바를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신앙의 성숙을 이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작전명 ‘미라클’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탈레반이 점령한 후, 지난 8월 26일과 27일 인천공항에는 ‘미라클(기적)’이라는 작전명으로,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인과 가족 390명이 무사히 입국했습니다. 작전명대로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세계가 극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참여했던 시기에 주아프가니스탄 대한민국대사관, 바그람 병원, 직업훈련원 등에서 한국을 도와 수년간 협력을 제공해왔던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이라고 합니다. 탈레반이 그들과 가족을 부역자라고 처형하거나 박해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극비리에 데려온 것입니다. 이들이 먼 이국땅, 대한민국에서 차별받지 않고 잘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협력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힘써야할 것입니다.
 

■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점령한 후, 난민이 급증하면서 이에 대한 각 국가의 대처방안들이 속속 발표되었습니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그로인해 파생되는 문제가 또한 많으니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sns에서 어느 목사님이 ‘아프가니스탄 난민은 대한민국에 오지 마십시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아무리 종교가 달라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반대하는 댓글이라도 달려고 내용을 읽었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대한민국처럼 차별이 심한 나라에 오면 후회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현재 이주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와 보수 기독교의 이슬람에 대한 혐오 등을 예로 들면서, 대한민국에 오면 큰 고생을 할 터이니, 대한민국에는 오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현재, 이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 노동자, 조선족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보수개신교의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금 당장에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였지만, 앞으로 그들이 겪어야할 일들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파한 목사님께 감사했습니다.
 

■ 성서일과의 주제


오늘 성서일과의 공통주제는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육체가 약해서 병에 걸렸다고 해서, 종교적인 법규를 지키지 않았다고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야고보서는 구체적으로 회당, 법정에서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성경에 기록된 바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신 최고의 법, 황금률을 지키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든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구원과는 상관없이 살아간다고 차별 당하던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편파적인 사랑을 하셨으니,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 성서일과 야고보서의 중요 내용


야고보서는 ‘차별’은 ‘악한 생각’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4절에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율법적으로도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9절에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고 하십니다. 악한 생각에서 차별하는 행동이 나왔고, 그래서 차별하는 행동은 죄요, 죄를 범했으니 범법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의 말씀을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여기서 ‘그 하나를 범하면’은 ‘차별하지 말라는 법’을 말합니다. ‘온 율법’ 즉, 모든 율법을 다 지켰어도, 단 하나 ‘차별하지 말라’는 율법만 어겨도 모두 어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서일과 연관본문인 마가복음(7:1~8)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는’ 장로들을 예수님께서 비판하십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에서는 차별은 하나님의 계명은 고사하고 장로들의 전통조차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별은, 하나님의 계명은 물론이고, 장로들의 전통으로 불리는 율법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저급한 행동입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온갖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으며, 차별하고 혐오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 가장 복된 은혜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로 유명한 권정생 선생의 글 중에 ‘가장 복된 은혜’라는 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경북 의성 시골교회 집사님과 버스에서 나눈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는데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시대적인 배경은 1960년대 초반으로, 한국전쟁 이후 보릿고개가 일상이었던 시절, 거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의성 시골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분이 직접 겪을 일입니다.
하루는 집사님이 집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중에 거지가 와서 구걸을 합니다. 너무 바쁘고 귀찮아서 문전박대를 했는데, ‘아차!’ 싶어 돌아보니 쓸쓸하게 걸어가는 거지의 뒷모습이 영락없이 예수님이더랍니다. 얼른 뛰어가 보니 거지는 찾을 수 없고, 동네를 다 돌아다녀보아도 거지를 찾을 수 없었었답니다. 집사님은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답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문전박대를 하고 그냥 돌려보냈으니 얼마나 마음의 상심이 컸겠습니까? 이때부터 집사님은 낯선 사람이나 거지가 자기 집을 찾아오면 모두 예수님으로 보였답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 거지를 극진히 대접하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10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집사님은 “세상 사람이 다 예수님으로 보이니 참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어예.”하더랍니다.

이런 삶이 은혜를 아는 삶이요, 모든 이들을 예수님 대하듯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성숙한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은 세상의 온갖 ‘차별과 혐오’에 빠져들지 않음으로 가장 복된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은혜를 아는 삶


 

우리는 이방인이었으며, 구원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이방인이 우리들에게까지 미쳤고,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에게 미쳤지만,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건너지 못할 강이 우리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셔서 홍해를 가르듯 건저지 못할 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매일매일 새로운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시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입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알고 사는 사람이 있고,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살아가시는 분들이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창조하신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차별하지 않음으로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삶이 은혜 충만한 삶이요, 이런 은혜로 충만하면 새롭게 거듭나게 됩니다. 한 주간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여러분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아무 공로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의 하나님, 매일매일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은혜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온갖 차별과 혐오가 횡행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세상풍조를 따라 살지 말게 하시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가는 이들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창조절 첫째주일(9월 5일)예배도 비대면 예배로 드립니다.
비대면예배를 위한 동영상은 주일 오전 7시부터 시청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예배영상https://youtu.be/7nuLxMCAQ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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