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13주(20210822)
하나님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신다.
(시편 145:17)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전 3:1)”는 전도서의 말씀을 따라,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Carpe Diem!) 거리두기의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거리두기의 확산과 다시 시작된 비대면 예배와 폭염으로 열대야가 지속되니 독서를 해도 진도가 늦고, 정리도 잘 안 돼서 애를 먹었습니다. 이럴 때는 머리를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싶어, 하루를 마감하고 시작하는 시간에 성경말씀을 필사하며 묵상했습니다. 한 달여 동안 시편과 전도서 필사를 마치고, 잠언필사에 들어갔는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묵상하는 데는 참 좋습니다. 성경필사를 통해서 많은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하지만, 시편 145편 17절의 말씀은 아주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개역성경으로 읽을 때에는 그냥 지나쳤던 말씀인데, 새번역성경으로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그 모든 일은 의롭다. 주님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신다(새번역).”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개역).”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의로우시며, 하나님은 모든 일은 사랑과 은혜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 그러니 지금 인류가 겪는 전염병의 확산과 기후변화 등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섭리 가운데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늘 ‘오냐, 오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회초리를 들어 자식을 훈계할 때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전염병과 기후위기와 전쟁의 소식 등을 통해서 인류가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위기는 우리를 사랑과 은혜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교단의 올해 표어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주께로 돌이키사, 진리와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하나님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신다.’는 말씀이 계속 제 마음에 울림으로 남아있었기에 ‘사랑’에 관한 묵상을 했습니다. 묵상을 하며 새겼던 감동들을 이번 주와 다음 주 나눠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사랑’에 관해 첫 번째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황금률(黃金律)’은 수많은 종교와 도덕, 철학에서 볼 수 있는 원칙의 하나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행동을 하라’는 원칙입니다.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원칙, 기준이 되는 원칙이라는 점에서 ‘황금률’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말은, 기독교의 모든 근본은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의 심층으로 깊이 들어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있고, 기독교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사랑이 없는 믿음, 사랑이 없는 소망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사랑하기는커녕 혐오하고,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소망만을 구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시듯, 그리스도인의 모든 신앙적인 행동의 기초도 사랑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고백과 행동이 울리는 꽹과리가 되지 않도록 늘 살피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살피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했던 일들을 우리가 되풀이 할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기초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신앙은 울리는 꽹과리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사랑’에 기초를 두고 하시고, 그 일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편도나무 같은 하나님 사랑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렘 1:11).”
개역성경 예레미야서(1:11)에서 ‘살구나무’로 번역된 것은 ‘편도나무’입니다. 편도나무는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일할 때에 줄무늬가 있거나 얼룩무늬가 있는 양을 얻기 위해 교미하는 양들에게 보여줄 때에 사용되었던 ‘감복숭아나무’(창 30:7)요, 민수기 17장 8절에 등장하는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감복숭아 열매가 맺었던 그 나무 역시도 편도나무입니다. 다양한 이름으로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샤카드’, 여기에서 파생된 ‘샤케드’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므로 살구나무, 감복숭아나무는 모두 편도나무입니다.

그렇다면, 왜 ‘편도나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일까요?
편도나무를 히브리어도 ‘샤카드’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샤카드’는 ‘깨어있다, 지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샤카드라고 불리는 편도나무는 이스라엘에서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나무요, 봄을 마중하는 나무인 셈입니다. 그러니 ‘편도나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의미하는 바는 ‘깨어서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먼저’기다리고 계십니다. 봄이 되면 먼저 피어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기다리는 편도나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으려 할 때에, 그분이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편도나무 같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고, 손을 내밀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늘 힘차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떼제공동체 찬양 중에서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나눔’입니다. 형제자매의 필요를 채워주는 나눔과 동시에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나눔의 실천은,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넘친다는 것을 깨달을 때 행해지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 사랑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요, 그분을 따라 걸어가며 갇혀 있는 내 삶의 테두리를 넘어 밖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개역).”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새번역).”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강권하시고, 휘어잡아 사랑의 나눔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도록 다그치신다는 뜻입니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돌봐야할 대상이 있는 곳이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가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늘 교회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딘지, 영적이든 물질적이든, 교회가 사랑을 나눠야할 곳이 어딘지 유심히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사랑의 나눔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은 그 교회에 계시고, 그 교회에서 예배하는 이들의 예배를 기뻐하시고, 그 교회에서 예배하는 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남교회가 풍성한 ‘나눔의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 일을 위해서 힘쓸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께로 돌이키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리와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적인 행위는 모두 사랑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사랑 없는 신앙적인 행위는 울리는 꽹과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편도나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깨어서 지켜주시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먼저’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의 신앙적인 사랑의 행위가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귀한 삶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 우리보다 먼저 기다리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편도나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적인 행위가 울리는 꽹과리가 되지 아니하도록, 주님 우리를 붙잡아 주옵소서. 우리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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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예배를 위한 영상은 주일 오전 7시 보실 수 있도록 링크를 걸겠습니다.
https://youtu.be/innXW8Xvm6M
클릭하신 후, 확인을 누르시면 됩니다. 주일 오전 7시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