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11주(20210808)
여호와께 간구하라!
시편 130:1~8

한여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코로나 19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지켜주셔서, 영원하신 그 이름 찬양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 저와 아내는 모더나백신 1차 접종을 마쳤습니다. 어떤 분들은 전염병도 기도하면 물리칠 수 있다고도 하지만, 의학적인 문제로 풀어야 할 것을 기도로 풀겠다고 하면, 그런 기도는 주술적인 기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도가 주술적인 기도나 기복적인 기도가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한 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고, 자신의 한계 너머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삶이 기도로 살아온 인생이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도에 관한 수많은 신학적인 정의와 서적들이 있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전염병으로 인해, 주님의 성전에서 마음껏 예배하고 기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염병과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의 생존이 위협을 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돌이키지 않고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이기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서 일과 시편 130편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혼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참회의 시’입니다. 이 참회의 시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성전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 시대에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깊은 어둠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성전에 올라가고 싶어도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침이 오기를 소망하며, 즉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기를,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편 130편은 개인적인 참회의 기도라기보다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범죄에 대한 ‘참회시’입니다.
신학자들은 이 시의 저작연대를 B.C.586-538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포로로 살던 시기였습니다. 나라가 완전히 멸망당할 때까지도 죄를 짓다가, 기어이 멸망당하고 나서야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며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자신들은 포로로 끌려와 이국땅에 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국땅에서 고향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고, 고향에 살고 있다고 한들, 성전이 무너져서 올라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돌아보면서 참회를 하는 시가 시편 130편입니다.

■ 내가 깊은 곳에서
‘깊은 곳’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오히려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은 잘나갈 때에는 자기가 잘 나서 잘되는 줄 알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힘든 일을 만나면 ‘잘 나갈 때에도 기도하지 않았는데, 염치없게 힘들다고 기도하나?’ 하는 생각으로 기도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힘들 때는 무조건 기도해야 합니다. 깊은 수렁에 빠져있는데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절망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항복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는 염치가 없어도 됩니다. 그동안 염치없는 삶을 살았다면, 기도하면서 염치를 찾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말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루를 열어가고, 기도한 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루를 마감하면서 다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우리 삶에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셔서,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고, 설령 빠진다고 할지라도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지켜보시는 하나님
시인은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누가 서리이까?(3)” 참회합니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해 보면, 우리 안에 깊은 어둠이 드러납니다. ‘죄 없는 자는 아무도 없다.’이걸 알아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죄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죄의 용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죄의 용서가 하나님께 속했으니, 우리는 그분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의로 설 수 없으니, 그분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그분의 인자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찬양으로 ‘은혜 아니면’이라는 찬양을 들었습니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나의 노력과 의지가 아닌 오직 주님의 그 뜻 안에서
의로운 자라 내게 말씀 하셨네 완전하신 그 은혜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어쩔 수 없는 죄를 보셨지만, 오직 그의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시편 130편 7~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런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정죄하고, 자기 의에 빠져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 신앙의 성숙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시인은 깊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도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여기서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는 말씀을 유의해서 묵상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오로지 자기의 뜻만 관철하려고만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자기 말만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이 말씀은 나의 바람만 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저는 ‘기도의 조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 음으로 삼고, 우리의 마음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기타나 피아노 음을 맞출 때 사용하는 튜너가 있습니다. 항상 기준은 ‘튜너’에 있지, 기타나 피아노 음에 있지 않습니다. 즉, 기도란, 나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을 조율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조율한 기도의 지향점이 올바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저도 기타를 조율할 때가 있습니다.
나름 튜너를 사용해서 조율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기타를 잘 치는 친구는 제가 조율한 기타를 다시 조율합니다. 살짝 기분 나쁘지만, 친구가 조율을 하면 한결 소리가 더 좋아집니다.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은데 전문가는 아주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교회 피아노도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조율을 하는데, 사실 저는 조율하기 전이나 후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피아노 반주자께서는 그 미세한 차이를 잘 아실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깊고 성숙한 신앙인이라야 제대로 조율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하모니를 이룰 때, 우리의 삶은 기쁜 충만한 삶이 될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분들은 깊고 성숙한 신앙으로 살아가셔서,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어두움 속에서도 당당하게 이겨내며 힘차게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주님, 깊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사오니,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달아 늘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삶을 조율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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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예배를 위한 동영상은 8월 8일(주일) 아침 7시부터 시청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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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7시부터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