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10주(20212년 8월 1일)
내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나이다
사무엘하 11:26~12:13a
8월 첫날입니다.
8월이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기독교 2천 년 역사이래, 처음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렸습니다.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유럽지역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에도, 온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던 1, 2차 세계 대전 때에도 주일이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해 시작된 비대면 예배는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는데, 점자로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전망이지만 코로나 19는 델타, 감마, 람다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인간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독감이나 감기처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저는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왜 인류는 이런 재앙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을까?”
“이런 재앙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늘의 성서 일과 속에서 찾습니다. 오늘의 성서 일과 사무엘하의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암몬과 온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던 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궁 옥상을 거닐다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봅니다. 그 여인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였는데, 우리야는 전쟁터에 나가 있는 이스라엘의 충직한 군인이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취했고, 후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전쟁터에 있던 우리야를 불러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계략을 짭니다. 그러나 실패하자, 자신에게 맹종하는 요압 장군에게 우리야 편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전투가 가장 치열한 곳으로 우리야를 보내서 죽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야는 전투 중 사망했고,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바세바를 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습니다. 성경은 이런 다윗의 행위에 대해서 이렇게 평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삼하 11:27).”
그냥 악한 것이 아니라, ‘아주 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셔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게 하십니다.
‘어떤 성읍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부자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딸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워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빼앗아가다,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였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는 ‘나그네 환대법’이 있었고,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나그네 되었던 경험을 가진 민족이므로 ‘나그네 환대법’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나그네 환대법’을 어기면 눈총이 따가울 것이므로, 법은 지켜야겠는데, 자기 것은 아까우니,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나그네를 대접했던 것입니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고 몹시 불쾌해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자 예언자 나단은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하면서, 저주의 예언을 합니다. 현대판 미투 사건입니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주어서, 그가 대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너는 몰래 그러한 일을 했지만, 나는 대낮에 그 일을 행하겠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자백하는 겁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성서일과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서 일과에서 이 부분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성서 일과가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가 흐려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고 봅니다. 아무튼, 그 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성서 일과를 통해서 우리가 묵상하면서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죄의 속성입니다.
죄는 죄를 더하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범죄가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세바를 범한 후, 임신하자 그것을 숨기려고 전쟁터에 있던 남편 우리야를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실패하자, 잔인하게도 우리야의 편으로 우리야를 죽이라는 편지를 보내어 그를 죽입니다. 죄가 죄를 낳는데, 죄를 낳을수록 점점 커집니다. 죄의 속성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거듭해서 강조했습니다만, 죄(hamartia)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과녁을 벗어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 약자들,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라고 하셨고, 그들에 대해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가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온갖 꼬리표를 붙여서 차별하고 혐오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이웃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교회가 옹졸해서 이웃을 사탄이다 뭐다 하면서 교회 밖에 적을 만듭니다. 이 모든 죄의 근원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죄에 대한 책임입니다.
다윗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언자 나단을 통해 책망하셨을 뿐 아니라, 죄로 인하여 어떤 일들을 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후에 베갯잇을 적시고, 이불을 적시고, 눈물로 기도했지만, 나단을 통해 주셨던 저주들은,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말년에 아들에게 쫓겨 도망하는 등 엄청난 심적인 고통을 당했는데, 그것이 모두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것에 기인합니다. 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코로나19라는 전염병뿐 아니라, 기후변화,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사막화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그동안 인간이 저질러온 죄의 결과물입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돌아볼 줄 모르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소박하고, 단아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덜 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잠시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지구에 기대어 살다가는 존재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지구가 주는 잉여로 살아야지, 지구를 파괴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에게는 영원히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셋째,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다윗의 위대함을 여기에서 봅니다. 다윗의 인간적인 매력도 여기에서 발견합니다. 부족해서 언제든지 죄에 빠질 수 있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지만,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변명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회개하는 용기가 희망의 근거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붙잡아 주신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한다면, “주께로 돌이키사, 진리와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라는 올해의 총회주제처럼, 우리의 삶을 주께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는데, 그 이름을 붙여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도 마다하지 않으셨는데,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삶, 그리고 인간이 다 그렇지 하면서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합리화시키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한 가정이, 교회가, 나라가 변하려면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하고 회개하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 사회가 교회가 ‘내가’가 아니라 ‘네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이라고 다 남의 탓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교회가 불행해지고, 이런 사람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불행해지고, 세계의 지도자가 되면 세계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교회도 나라도 세계도 희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세상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죄의식에 빠져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죄를 인식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은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힘든 시간도 보냈지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함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늘,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를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시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8월 첫날입니다.
인디언들은 ‘열매가 햇살을 저장하는 달’이라고 한답니다. 여러분 마음에 그리스도를 저장하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거둠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상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한없는 욕심이 전염병이 창궐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하오나, 아직도 주님께 돌이키지 않고,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 다윗처럼 죄를 깨우쳤을 때, 참회하는 용기를 갖게 하옵소서. 새로운 달 8월, 우리의 신앙도 더욱더 성숙해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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