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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9주]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 관리자
  • 2021-07-25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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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아홉 번째 주일/ 2021년 7월 25일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에베소서 3:14~21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주님의 전에서 함께 예배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각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을 붙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용기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아홉 번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 성서일과 서신서의 말씀은 에베소서 3장 14절에서 21절의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한 주간, 세계적인 코로나의 확산과 이 와중에도 개막한 도쿄올림픽, 폭염과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 이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들의 후진적인 정치행태, 한국 교회로부터 들려오는 부끄러운 뉴스 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많은 시간 시편의 말씀을 필사했고, 오늘 성서일과인 에베소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보냈습니다.  



에베소서 성서일과의 말씀을 여러 번역본으로 묵상하면서, 관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주어졌는데, 그 말씀을 누구나 똑같은 말씀으로 받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처한 상황과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말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씀의 참 뜻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해석하고 선포할 의무가 설교자들에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해야만 합니다. 이런 수고가 없으면, “믿습니까, 아멘!” 밖에 남지 않는 조잡한 설교가 될 수밖에 없고, 교인들은 당장에는 좋고 뜨거울지 모르겠지만, 정작 신앙적인 결단을 하고 행동해야 할  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목사님이 경험하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사님 친구 분 중에 시인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목사님은 주일 설교를 위해서 하루에 몇 시간이나 공부하십니까?”묻더랍니다. 묵상이 아니라 공부라고 하니 책을 읽는 시간을 생각해서 “하루에 세 시간 정도 공부합니다.”했더랍니다. 그랬더니, 시인이 “목사님은 사기꾼이구만, 시인 나부랭이도 시 한 편 쓰려고 하루 8시간 이상 공부하고 묵상하는데,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목사님이 고작 세 시간?”하더랍니다. 그래서 반성을 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설교자들만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야기일까요?
저는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시간만이라도 자기만의 골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삶의 지향점이 옳은지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세파에 휩쓸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이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죄(hamartia)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과녁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이번 주 성서일과 에베소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름을 붙여주신 아버지(15)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주신 분이십니다(엡 3:15).”

사도 바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대상이 있는데(14),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14,15)’이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곧 ‘이제 너와 나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 의미는 ‘장성한 어른이 되기까지 너를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9~20절에 하나님께서 아담이 창조하신 것에 무엇이라 이름을 붙여주는가 보십니다.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이름이 되었다(창 2:19b).’ 이렇게 아담에게 이름을 붙이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를 관리하고 지킬 청지기적인 사명을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즉, 창조의 동역자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이름을 붙여주셨을까요?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와 특별한 관계가 되셔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하시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이름값을 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가 욕되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삶을 살아야 이름값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령을 통하여(16)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을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16절과 17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확장하면, 성령을 힘입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즉 속사람에는 ‘그리스도’가 내재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없이 살아가던 이전의 삶이 얼마나 어둡고 절망적인 것이었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의 감격에 살아가는 이들은 교만할 수 없고, 늘 겸손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하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속사람은 그분의 영, 거룩한 영, 성령을 통해서 강하게 되고,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주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미 모든 준비를 다 하셨습니다. 남은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모셔 들여, 그분이 우리 안에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화가 윌리엄 헌트의 ‘세상의 빛’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에는 문고리가 없습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노크를 할 뿐이요, 그에 응답하여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하는 것은 인간의 결단이라는 의미를 담은 그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을 모시고, 성령을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두렵고 힘든 세상이지만, 성령을 힘입어 힘차게 살아가시는 여러분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측원합니다.
 

■ ‘안에서(in)’의 존재


 

19절의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라는 개역성서 번역에서 ‘것으로’는 ‘안에서(in)’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해석을 하면 새번역 성경의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라고 번역된 부분도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 안에서’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전치사 ‘in’을 강조하는 이유는, 21절의 축복기도 때문입니다. 21절에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도 전치사 ‘in’이 사용되었습니다.

‘in’이라는 단어는 아주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in’의 이미지는 ◘, 숨바꼭질을 하다가 박스 안에 숨어있는 아이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영역 안에서’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라는 박스 안에서, 예수님이라는 박스 안에서, 교회라는 박스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20절 말씀에 나옵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이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b)”. 이미지가 그려지십니까? 예수 안에, 교회 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 안에 거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지식의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지혜의 차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맘몬의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교회 안에, 예수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맘몬의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후패해가는 겉 사람이요, 지식이라면, 교회 안에,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 안에 살아가는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속사람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안에서(in)의 존재’입니다. 주님 안에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심 안에서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는 여러분이시길 축원합니다.
 

■ 거의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


영어 전치사 공부를 한 김에 조금만 더 영어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영어 부사에 이런 단어들이 있습니다.  about대략(more or less),  nearly거의(less than), almost거의 (부정, 할 뻔했는데 못했다). %로 환산하면 about는 55%, nearly는 85%, almost는 98%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55%, 85%, 98% 그리스도인이라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거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신앙의 3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는 정화의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가 사해진 단계입니다. 구원이 감격이 너무 커서, 그냥 눈물이 마구 흐르고, 뜨거워서 펄쩍펄쩍 뛸 수도 있습니다. 
2단계는 조명의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어두운 상태였는지 자각하는 단계입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갈 때는 알지 못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이 내 마음에 들어와 빛을 비추니 비로소 추악한 것을 보는 단계입니다.
3단계는 일치의 단계입니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삶으로 살아가는 단계, 즉 지행합일의 단계입니다. 이 3단계까지 가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 단계까지는 ‘almost christian(거의 그리스도인)’인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1단계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가야하는 시대에 우리는 2단계를 지나 3단계로 진입해야 합니다.



무더운 여름, 코로나와 폭염과 기후변화 등 우리를 힘들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들이 많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인’으로 삼아주셨으니, 넉넉히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인답게 살아가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은총 가운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며,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주님의 교회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거의’가 아니라, ‘온전한’ 것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넘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고,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게 하옵소서. 맘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고자 힘쓰는 모든 이들을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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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예배동영상은, 주일(25일) 7시부터 시청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fbg6xQ87z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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