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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7주] 맘몬으로부터 당당하게

  • 관리자
  • 2021-07-11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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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7주(20210711)
맘몬으로부터 당당하게
아모스 7:7~15(삼하 6:1~5, 시 24, 엡 1:3~14, 막 6:14~29)
 


평화의 주님께서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 분주한 세상일로 빼앗겼던 마음에 고요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 것 같더니만, 백신이 접종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4단계 최고 단계가 되면 다시 비대면 예배로 전해야하는 상황이라서 코로나사태가 더는 확산되지 않고 진정되기를 그 여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와 함께 ‘CHURCH WITH COVID-19’


코로나이후의 교회에 대한 논의들이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지난 2년 간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대안을 내놓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코로나이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는 변이의 변이를 거듭하면서, 독감이 우리 주변에 늘 있었듯, 코로나도 그렇게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코로나이후의 교회가 아니라 ‘CHURCH WITH COVID-19’를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각종 예배의 형식의 변화뿐 아니라 대형교회를 추구하던 선교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물량적이고도 세속적으로 성장한 대형교회들이 가진 물적인 토대가 이미 가상의 공간까지도 점령해 버렸기 때문에 교회의 개혁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전에는 교인들이 담임목사 설교만 들을 수 있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른 목사들의 설교도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교인들에게는 자기 교회 목사의 설교에만 매몰되지 않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964년 창립된 이후,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 그러니 1964년 이후, 개발도상국가에서 졸업하여 선진국이 된 최초의 국가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으니, 이미 선진국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 무엇이 ‘선진’인지는 모르겠지만, 평가 기준은 경제지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소비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이것이 판단 기준이 된 것이겠지요. 우리는 소비할 수 있는 힘이 큰 이들을 ‘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필요 이상의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부자’는 선망의 대상이요, 그러다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천박한 생각들이 자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선진국 대열에 오른 것을 축하하면서도, 그 외의 다른 것들, 예를 들면 정치나 언론이나 교육이나 복지, 사회적인 약자를 위한 배려 같은 것들도 선진국다운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진적인 의식의 변화 없이 물질적인 풍요만 더해진다면 인간은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명기 32장 15절의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부자가 되더니, 반역자가 되었다. 먹을거리가 넉넉해지고, 실컷 먹고 나더니, 자기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들의 반석이신 구원자를 업신여겼다.”


■ 성서일과


이번 주 성서일과는 다 읽지는 않았지만, 사무엘하 6:1~5, 아모스 7:7~15, 시편 24편, 에베소서 1:3~14, 마가복음 6:14~29절의 말씀입니다. 성서일과의 맥락은 이렇습니다. 사무엘하는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기는 내용이고, 아모스의 내용은 거룩한 성전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경고요, 시편 24편의 말씀은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밝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는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시편 24편과 연결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으로, 기원전 8세기 아모스 예언자 시대에 정치권력과 야합한 아마사 대제사장이 아모스를 대적하고 비웃었듯이, 800년이 지난 세례 요한 시대에도 불의한 정치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연결점이 있습니다.
 

■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여호와의 산은 곧 성전이요, 성전은 법궤가 있는 곳입니다. 시편 24편에서는,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라고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산으로, 성전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에베소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고,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그 뜻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기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아마샤와는 대조되는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이들이 대제사장이 되어 성전을 들락거리고, 교권을 잡아 오히려 하나님의 예언자를 조롱하고, 기어이 800년 뒤에는 세례 요한도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죽이는 것입니다.



정치권력과 야합한 대제사장 아마샤의 모습을 떠올리면, 유신독재와 군부독재시절 조찬기도회를 열어 그들의 안녕을 빌어준 목사들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현실정치와 교단 정치권력에 목을 매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런 목사를 교인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고, 그런 목사들이 목회하는 교회들은 큰 성장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큰 대형교회를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서로의 욕심을 채워주는 관계로 이뤄진 것이기에 별로 부럽지 않습니다. 작아도,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입니다. 우리 한남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 아모스의 시대상황


아모스는 ‘짐진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의 ‘들어 올리다, 나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이름입니다. ‘야훼께서 나르신다’는 아마시야의 축약형입니다. 아모스와 대척점에 있었던 아마샤는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이름이지만,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마시야와 아마샤가 이름이 비슷해서 축약형 ’아모스‘로 사용을 한 것 같습니다. 아모스는 남유다 베들레헴의 고원 드고아에서 목축을 하며, 뽕나무(돌무화과 나무)를 재배하던 은둔자였습니다. 그때가 유다 웃시야,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였으니 대략 기원전 760~753년경에 예언자로 활동 했습니다. 아모스가 본 이스라엘의 죄는 이러했습니다.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그들은 전당으로 잡은 옷을 모든 제단 옆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눕고,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암 2:6~8).”

“사마리아 언덕에 사는 너희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어라.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는 자들아, 저희 남편들에게 마실 술을 가져 오라고 조르는 자들아(암 4:1).”

“너희는 망한다! 상아 침상에 누우며 안락의자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골라 잡은 어린 양 요리를 먹고, 우리에서 송아지를 골라 잡아먹는 자들, /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서 헛된 노래를 흥얼대며, 다윗이나 된 것처럼 악기들을 만들어 내는 자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며, 가장 좋은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의 집이 망하는 것은 걱정도 하지 않는 자들(암 6:4~6).“



이렇게 된 이유는, 여로보암 2세 시기에 찾아온 일시적인 번영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앗시리아라는 신흥강대국이 등장하면서,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시리아의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잠시 힘의 공백이 생긴 사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며 요단 강 동편 지역을 확보했습니다. 다윗 시대에 버금가는 영토 확장과 전쟁 특수로 말미암은 경제적인 풍요의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맘몬의 풍요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들의 업적을 평가한 열왕기하에서 여로보암은 영토 확장과 물질적 번영을 이뤘지만, ’죄악을 저지른 왕‘으로 평가되었습니다.
 

■ 맘몬 앞에서 당당하게


이스라엘은 삶이 평안해졌을 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을 때, 예언자들은 덩달아 타락했고, 정결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을 타락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경제적인 풍요는 소유욕을 일으켜 사람들 마음에 탐심을 불러 일으켰고, 탐심에 이끌려 자기보다 힘이 없거나 기댈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수단화했습니다. 종교도 번성했습니다. 사람들은 베델로 길갈로 달려가 온갖 종교적인 제의를 열심히 했지만, 삶은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했습니다.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종교,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는 종교는 하나님께 역겨운 것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십시오. 오로지 ’경제, 돈‘에 미쳐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거주할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위해 ’영끌‘한다고 합니다. 돈만 벌면 된다고 합니다. 수단이었던 돈이 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답게 살려면, ’맘몬 앞에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이든 아니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공중을 나는 새도 들에 핀 꽃도 먹이시고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를 찾으십니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를 찾으십니다. 맘몬 앞에서 당당하게 마음 지켜 가시는 분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맘몬을 섬기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맘몬을 구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런 시대지만, 지혜와 용기를 주셔서 맘몬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먹이시고 입혀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손을 깨끗하게, 마음을 청경하게, 뜻을 오직 하나님 나라에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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