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성령강림후 2주]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 관리자
  • 2021-06-06 10:00:00
  • hit2612
  • 222.232.74.74

성령강림 후 둘째주일(20210606)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고린도후서 4:13~5:1

 

6월 첫 주일이며,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사랑이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지난 주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사건을 통해서 ‘성령의 사람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며, 성령의 사람은 자신의 실체를 알기에 죄의식에 빠져 살진 않지만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시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죄 사함을 받으며, 일상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삶은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힘쓰며 살아가도 평생 이루지 못하고 살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이미 신앙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삶을 살아가실 줄 압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하게,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잘 감당하시어 하나님께 칭찬받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
6월에 피어나는 꽃 중에 향기가 그윽한 꽃이 있습니다.
꽃은 하얗고 예쁘지만 열매가 쥐똥을 닮아서 ‘쥐똥나무’라 불리는 꽃이 주인공인데, 은은한 향기가 얼마나 깊은지 마스크를 뚫고 전해집니다. 은은한 꽃향기에 꿀벌들이 날아듭니다.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그 향기로 곤충을 모아들입니다. 쥐똥나무 아래에서 저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으라(고전 2:15)’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향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한남교회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교회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한남교회와 교우들, 제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길 기도하면서 6월을 맞이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꽃은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열매가 맺히겠지요. 떨어지는 꽃이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꽃이 떨어져야만 열매가 맺힌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끝도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 떨어지는 꽃과도 같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죽음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사람의 삶이 일회적이듯, 6월에 피어난 쥐똥나무의 꽃, 떨어진 꽃, 열매 맺는 꽃 역시도 단 한 번의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시간,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비한 시간이요, 예배인 것입니다.

 

 

*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의 시 ‘두 번은 없다’라는 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기적이요, 단 한 번밖에 없음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중략)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똑같은 밤도 없고,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동일한 눈빛도 없다’ 순간의 소중함을 깨우쳐 줍니다.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익히 아는 사실임에도 숙연해 집니다. 시인은 또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낙제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불안과 초초함으로 삶을 낭비하지 말고, 서로 다를지라도 미워하지 말고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일치점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든든해지려면, 곁에 있는 사람을 밀어내야할 사람이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어가야 할 벗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남교회의 지체로 부르신 이유는 두 번 없는 이 세상에서 어깨동무하고 서로 격려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삶이 달라도 일치점을 찾아가며 나아가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마게도니아에서 고린도교회와 아가야의 성도들에게 쓴 위로의 편지입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상황이 환난 중이었음을 알 수 있는 구절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온갖 환난 중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 같이,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후 1장)’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이 위로를 받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4장 18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4:18)".  ‘보이는 것’ 즉, 자신들이 처한 상황, 고난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 즉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고후 5:1)’을 바라봅니다.



사도 바울은 시련 속에서도 늘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미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불굴의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푯대’로 삼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가 그 사람의 삶이요, 삶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신문, 유트뷰, 광고, 카톡, 페북, 드라마, 연예인들의 가십, 스포츠 스타의 성적과 연봉, 주식 이런데 온통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바라보는 것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알게 모르게 보는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무엇을 바라보느냐?’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다 외면하고 살자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좋든 싫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완전히 시선을 외면하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할 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부름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세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세상을 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토대 위에 인생의 집을 짓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토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요. 우리에게 약속하신 나라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걸 봅니다. 지금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영을 느끼고, 세상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본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꽃향기 보이지 않지만, 은은하게 번져나가듯, 그리하여 곤충을 불러 모으듯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듣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향기요, 그것을 부정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의 냄새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실은 암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사도 바울처럼 불굴의 신앙을 가지고 감사하며 찬양하며 기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두 번 없는 삶이요, 시간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두 번은 없는 삶을 힘차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세월과 더불어 육체의 활력은 줄어들고, 육체의 활력이 줄어드는 만큼 삶에 대한, 신앙의 대한 열정도 이전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서 가는 유한한 생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그러나 겉사람인 육체가 늙어진다고 속사람인 영혼까지 낡아지면 안 됩니다. 외적으로는 쇠퇴해가지만, 우리의 내면은 성숙해져야 합니다. 루이즈 에런슨은 <나이듦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인용합니다.




‘사람의 몸은 단순히 나이 듦에 따라 세포와 장기 기능이 쇠퇴해 가는 몸뚱이에 불과하지 않다. 일생 동안 그 위에 문화적 의미가 새겨지고 끊임없이 덧입혀지기 때문이다.“- 마이크 페더스톤&앤드류 워닉



나이가 들면 냉소적이고 거칠고 이기적이고 차갑던 사람들이 옛 모습과 결별하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게 변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땡감처럼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단맛을 품지 못하고 오히려 젊을 때보다 더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이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릅니다. 아름답게 나이를 먹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혼의 소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고후5:1)‘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많이 어둡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그 길을 홀로 걸어가기가 버겁습니다. 한 번 가보고, 연습하고 실습한 후에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두 번은 없는 길이기에 힘을 합해 어깨동무하고 발을 맞춰가며 천천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남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