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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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7주]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

  • 관리자
  • 2021-05-16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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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7주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7:6~19
 


광야와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끝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에도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넷째주일에 시편 23편의 말씀을 통해서 ‘임마누엘! 선하신 목자’ 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가장 좋은 것은 임마누엘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실 뿐 아니라,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광야와도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근거는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하는데 삶은 꼬여만 가는 것 같고, 희망보다는 어둠이 더 깊어지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시는 것만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깊은 어둠과 같은 삶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 수 있는 것은 빛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지난 주 수요일 아침에 비밀의 정원을 둘러보는데 바람개비를 닮은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마삭줄이라는 식물에 피어난 꽃인데, 남도지방에는 한 겨울에도 푸르고, 이맘때면 바람개비를 닮은 꽃이 다닥다닥 엄청나게 피어납니다. 제 조카가 10년 전에 마삭줄 화분을 하나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둘 곳이 마땅치 않아 한 겨울에 실외에 두었는데 이듬해 새순이 올라오고, 제법 덩굴식물이 나무줄기처럼 단단해 졌습니다. 그래서 한남교회 청빙을 받고 이사할 때에도 마삭줄 화분을 놓고 올 수 없어서 가져왔습니다. 그냥 푸른 잎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올해는 꽃몽우리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지난 수요일 첫 꽃을 활짝 피워냈던 것입니다.




그 곁에는 붉은 제라늄이 피어났는데, 본래 홑꽃이던 것이 이른 봄부터 바깥에서 추위를 겪으며 천천히 자란 탓인지 붉은 겹꽃을 예쁘게 피웠습니다.

꽃들이 저마다 고난을 극복하며,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은 ‘고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요, 사인인 듯 했습니다. 언젠가는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하듯 꽃을 피워내는 마삭줄과 제라늄을 보면서,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기대하시는 삶을 피워내야 한다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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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서일과를 읽은 요한복음 17장 6절~19절의 말씀은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일부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이 제자들을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고 계십니다(11, 15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리신 하나 됨을 제자들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하십니다(11절). 이 예수님의 기도는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일회성으로 끝난 기도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기도입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택하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이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읽어보면 어떻습니까?



“나는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구별하여) 택하셔서 내게 주신 (거룩한)사람들에게 (거룩한)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의 간구,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는 구별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대충, 어중이떠중이로 살아가지 말아야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구별된 사람은 구별된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 예수님께서 중보기도하시는 일이 삶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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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19절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거룩’이라는 단어입니다.
먼저 ‘거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18절의 말씀을 바탕에 깔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거룩한 삶’의 터전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도쉬(kadosh)’로 ‘구별, 다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선자라고 지속적으로 공격했던 ‘바리새인’도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고자하는 분파로서 ‘바리새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변질되어 ‘분파’가 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하면서 ‘거룩한 것’을 의미하는 ‘구별’은 ‘유별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도 초창기에는 ‘거룩함’을 오해해서 ‘유별난 행동’을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유별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거룩한 삶은 항상 ‘세상 속에서’ 살아져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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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1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제자들을 악한 세상에서 지켜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으로 거룩해지길 기도(14~17)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것처럼,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18).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거룩한 삶이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살아야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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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십계명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해방된 이스라엘이 지켜야할 세세한 법규를 주시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꼭 지켜야할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4계명인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뭔가 강조해야할 중요한 것은 서두에 놓거나, 마지막에 놓습니다. 십계명은 철저하게 그런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말씀은 계명에 속해있지 않지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법은 마지막에 나오는 4계명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입니다. 그렇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무엇일까요?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유일하게 약속이 있는 계명이요, 그래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된 것입니다.



결국, 거룩한 삶이란, 경쟁 일변도 세상에서, 소비지향적인 세상에서,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깊이 성찰하며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어찌하든지 나는 그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상을 숭배하며 살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다. 세상은 안식일을 우습게 알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나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살겠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 이것이 거룩한 삶, 구별된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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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삶,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습니까?
이게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거룩한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만’ 그렇게 살지 못해서 마음 아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안다고 하면서도 그냥저냥 세상에 휩쓸리며 살아가기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누군가의 중보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하는 중보기도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시는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빕니다(9)”.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 조금 늦어질 수 있지만, 주님의 기도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나를 향한 주님의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져 내 삶의 꽃이 피어날 것임을 믿고 힘차게 살아가십시오. 남보다 더 예쁘고 화사한 꽃이거나 다른 이들이 이미 피운 꽃이 아니라, 나만의 색깔과 향기를 가진 구별된, 거룩한 꽃을 피운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뜨이지도 않는 마삭줄 한 송이, 제라늄 한 송이의 꽃과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꽃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행복해 하듯이 주님은 여러분이 피워낸 꽃을 보고 “거룩하다, 거룩하다!”기뻐하시길 원하십니다. 

광야와도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근거는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계십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모든 분들을 행한 예수님의 기도가 온전히 여러분 삶에서 이뤄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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