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6주/ 어버이주일
향기 있는 삶을 사십시오
고린도후서 2ㅣ12~17, 레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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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친구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김 목사, 우리가 봄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글세, 분명한 것은 맞이한 봄보다 맞이할 봄이 짧다는 사실이겠지.”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내린 결론은 ‘살아 있는 시간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 삶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맞이했던 시간들보다 맞이할 시간이 적어집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인생무상이나 삶의 회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진지하게 만듭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만들고, 지금 발 딛고 사는 세상 너머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유한성을 깨달은 인간만이 존재너머의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 이 없었다면, 우리는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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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의 달력이 있습니다.
저는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10월 정도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시월은 인디언의 달력으로 ‘가난해 지기 시작하는 달’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요, 12월은 ‘무소유의 달’입니다. 어린이들은 5월 정도를 살아가니 ‘씨앗을 심는 달’을 살아가고 있고, 청년은 6월과 7월 정도를 살아간다 할 수 있으니 ‘잎사귀가 다 자란 달’이거나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노년이 오기전인 8월과 9월은 중년의 달로 ‘모두 다 익어가는 달’이거나 ‘아주 기분 좋은 달’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어떤 달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중요한 것은, 어떤 달이든 의미 없는 달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12월 ‘무소유의 달’의 다가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ㄹ첨에도 불구하고, 12월 ‘무소유의 달’은 열두 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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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과 낡은 것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세월의 향기가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오래되고 낡으면 무조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세월의 향기’가 배어있어야 향수를 자극할 수 있고, 그래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깊이 생각해야할 것은 이 부분인 듯합니다. 옛것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세월의 향기’를 품고 있기 때문인 것처럼, 어버이로서 존경을 받고 존중 받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세월의 향기’를 품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의 향기를 품지 못하고 나이만으로 어른 대접을 받는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어버이주일에 ‘향기로운 삶을 사십시오.’라는 덕담을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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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장 12~17절에서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득 품은 사람은 레위기 19장 32절의 말씀처럼 공경을 받을 것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서고, 나이 든 어른을 보면 그를 공경하여라. 너희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나는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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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어버이들께서는 이렇게 공경 받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면서 여러분에게 드릴 선물은 이렇게 공경 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세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잘 기억하시고 실천하셔서 공경 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여러분들을 공경하게 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그것이 자녀가 잘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 부모 공경하는 이들이 받는 복에 대해서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자녀 된 여러분, [주 안에서]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하신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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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자녀들이 잘되길 진심으로 원하신다면, 공경 받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공경 받는 부모로 살아가려면, 첫째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식과 지혜는 조금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마땅히 공경을 받아야하는 것은 지식 때문이 아니라 지혜 때문입니다. 지식이야 젊은이들이 더 많습니다. 지식을 책상머리에서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삶으로 배우는 것이요, 어떤 지혜는 그 나이가 되어야지만 비로소 깨닫는 지혜도 있습니다. 노년의 삶이 축복인 이유는 더는 지식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었다면, 노년이 되면 그 지식이 녹아 지혜가 됩니다. 그래서 똑같은 책을 읽어도 젊은이들은 지식을 얻고, 노인들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가 ‘그리스도를 하는 지혜의 향기’로 바뀌는 시기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신앙이 지식에 의한 것이었다면, 노년의 신앙은 지혜에 의한 것입니다. ‘살아보니 깨닫게 된 것’ 그래서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을 얻으려면 공부를 해야 하듯,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품으려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깊은 뜻을 묵상하는 중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이런 지혜를 얻게 되면 통전적인 깨달음이 옵니다. 시간을 아끼십시오. 온갖 부정적인 소식의 온상인 텔레비전을 멀리하시고, 하루 몇 페이지라도 책 읽는 시간을 가지시고, 성경 읽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동안 삶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지혜가 깊어질 것입니다. 이래야 멋지게 나이 들고, 자녀들로부터 공경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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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공경 받는 부모로 살아가려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야 합니다. 1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이들에게뿐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향기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참 좋다!”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백 마디 외침보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림자 노동’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채무자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친절과 선행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에 대해 선행을 베푼다면 우리는 그림자 노동에 대한 채무를 갚아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을 좋아합니다. 매월 작은 후원금을 보내면서 활동소식을 듣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그린피스 후원자나 활동가들은 지구환경을 지키는 활동에 관심이 있지, 서로의 종교가 무엇인지, 인종이 어떤지, 남녀인지 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지구환경을 지키는 일을 함께합니다. 여기엔 다양한 종교인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맑고 향기롭고 기분이 좋습니다.
향기는 “내가 향기다!”하지 않습니다.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느껴집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삶으로 그리스도인임을 살아갑니다. 그 시작은 친절과 선행입니다. 조금 더 친절하게, 조금 더 베풀며 살아가기 위해서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공경 받는 부모가 될 수 있고, 자녀들을 복 받는 삶으로 인도하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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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공경 받는 부모로 살아가려면 ‘생명의 향기’를 품어야 합니다. 1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을 ‘죽음의 냄새’가 되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수용여부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래야하는 이유를 찾았을 것이고, 자신들의 생각을 합리화했을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끊임없는 부정, 그것이 ‘죽음의 냄새’를 풍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의 냄새’가 아니라 ‘생명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려면, 말씀대로 살아야만 가능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 이유는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식에 머물러 있어 지혜가 되지 못했고, 지식의 차원에 신앙이 머무니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싸움질만 하면서 종교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곳에 무슨 그리스도의 향기와 생명의 향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생명의 향기’는 절제된 신앙생활, 단아한 삶에서 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조금 더 단순하게, 조금 더 소박하게, 조금 더 단아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을 해석하지 말고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이제는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때가 아니라, 아는 것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야, 그저 바느질을 하고 있을 뿐인데, 밭고랑을 갈고 있을 뿐인데, 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밥을 하고 있을 뿐이요, 설거지를 하고 있을 뿐인데도 ‘생명의 향기’가 풍기는 것입니다. 그냥, 일상의 삶이 ‘생명의 향기’가 되는 경지에 이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생명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는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는 자녀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때를 살아가시던지 저마다의 지식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 생명의 향기를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모든 분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주님,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하시기 감사합니다.
우리가 지식의 향기와 그리스도의 향기가 생명의 향기를 품고 살아감으로 인해, 서로 기쁨을 나누게 하시고, 공경하게 하셔서 서로가 서로에게 복을 끼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 참된 지식의 향기과 그리스도의 향기와 생명의 향기가 갈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귀한 향기를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