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5주 /어린이청소년주일(20210502)
자녀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요한복음 15:1~8

오늘은 우리 자녀들을 축복해주는 ‘어린이청소년 주일’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이 늘 함께 하심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은혜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오늘은 한창 자라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위한 교육 팁 다섯 가지와 성서일과를 통해서 귀한 열매를 맺는 자녀가 되기를 원한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 아카데미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씨가 수상소감에서 이런 말을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순간은 없을 것이다. 나는 최고, 그런 거 싫다.
경쟁 싫다. 1등 되는 것 하지 말고 ‘최중’(最中)이 되면 안 되나. 같이 살면 안 되나.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지 않나. 동양 사람들에게 아카데미 벽이 너무 높다.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고 ‘최중’만 하고 살자.”
‘최고만’ 혹은 ‘일등만’ 인정받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이 존중받고 빛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최중’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는 부모들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제도교육의 줄 세우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녀들 안에 있는 ‘끼’, 성서적으로 이야기하면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계획’,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자기 안에 있는 큰 나’ 동양사상으로 풀어 이야기하자면 ‘자기 안에 들어있는 얼나’를 찾게 해줘야 합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요즘처럼 자녀교육에 열정적인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을 뜻하는 ‘e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왔습니다. ‘e-(=out) + duct(끌어내다) +ion(작용) = 밖으로 끌어내는 작용’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안에 있는 것을 바깥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교육인 것입니다. 교육학에서는 ‘pedagogy’라고 하여 ‘어린이를 이끌다’라는 의미를 교육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뭔가 꺼내고, 이끌어주는 교육이 아니라 집어넣는 주입식교육입니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고 누르는 교육입니다. 이런 교육 때문에 부모들과 아이들 모두 희생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부모가 한 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것만이 진실인 것 같고, 우리 아이 학원에 안 보내면 뒤처질 것 같고, ‘국영수’ 못하면 좋은 대학에 못갈 것 같고, 좋은 대학은 나와도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어려서부터 학원도 안 보내면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게 누구의 계략일까요?
조금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맘몬의 계략입니다.
맘몬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심어준 큰 나, 얼나,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그것을 발견하면 자신의 설 자리가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지속해서 거짓신화를 만들어 확산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좀 더 지혜로워져야하고 용기를 내야만 아이들도 살고 부모도 삽니다.

부모는 아이들 저마다의 잠재력을 믿고, 아이들을 부모의 꿈을 이루는 대리자로 소유하지 말고 존재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말씀하셨고,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그렇게 귀한 존재들입니다. 이런 귀한 자녀들을 우리는 어떻게 교육해야할까요?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다섯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믿어주십시오.
우리의 자녀는 나의 소유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존재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나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고, 우리 아이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귀한 섭리가 들어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남의 자녀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각자 달란트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비교가 아니라 자녀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믿어주고, 기도해 주면 아이들의 기가 살아납니다. 기가 살아나면,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게 됩니다. 나쁜 일이 아니라면, 칭찬하고 인정해주십시오. 그래야 아이들이 책임적인 존재로 자라게 되고 부모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 기다려 주십시오.
마음에 차지 않아도 스스로 하게 해야 합니다. 넘어졌을 때 얼른 뛰어가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도록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어느 것이 어렵습니까? 기다려주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이 기다림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숙제해주고, 일기 써 주고....그러다가 나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도 자립하지 못해서 평생 책임져야하는, 그래서 서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칭찬을 아끼지 마십시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구차하거나 비굴하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가면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자녀도 힘들고 부모도 힘듭니다. 자녀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기대치를 낮추면, 칭찬이 많아지게 되고, 칭찬이 잦으면 자녀의 긍정성을 키워주는 데 좋습니다. 자녀가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의 삶은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긍정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면 아이들도 긍정적인 품성을 지니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모범을 보이십시오.
책 읽는 부모, 기도하는 부모,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 자녀는 부모를 유심히 관찰하고 모방합니다. 그리고 모방은 습관이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스승은 부모인 것입니다.

이제 성서일과를 통해서 우리의 참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관계를 포도나무와 농부로 비유하시고,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실한 포도송이를 얻으려면 ‘전지’를 잘 해줘야 합니다. 전지를 해주면 한 가지에서 두 줄기 새순이 올라오고 꽃이 핍니다. 그래서 봄이 오기 전에 전문적으로 포도농사를 짓는 분들의 농장을 보면 잔가지가 거의 없는 포도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4월 중순이 지나면 새순이 올라오고, 새순마다 포도송이가 될 꽃이 엄청나게 달립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또 솎아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잘한 상품성이 없는 포도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줄기인 포도나무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전지되어 포도나무에서 제거되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무서운 말씀도 있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은, 전지되어버리면, 잘려버리면,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아이들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로부터 잘라내어 학원에 접붙인 것은 아닙니까? 포도나무가지에서 잘린 가지들이 어딘가에 접붙여지면 어떤 열매를 맺겠지요. 그런데 그런 경우 큰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이룬 일, 그것이 아무리 큰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의미 있는 일이 되려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일, 이게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부모가 신앙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신앙교육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서 가르치는 것이 고작 ‘세상적인 성공’이니 사교육이나 제도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 평생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것, 간직해야할 것, 우리의 자녀와 우리가 늘 간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4,5,8축약)”
저는 내 삶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으며,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내게 주어진 삶을 대충 살수가 없습니다. 하찮은 것을 위해 소중한 것을 허비할 수도 없습니다. 내 삶을 예리하게 하여 더욱 정진하게 하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잘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소망입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제가 말씀드린 교육학적인 관점에 드린 이야기들을 실천하십시오. 아이들을 믿어주고, 비교하지 말고, 기다려주고,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말고, 모범을 보이십시오. 이렇게 하신다면, 자녀로 인해서 힘겨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니 아이들에게 신앙을 심어주십시오. 어떤 신앙이냐 하면, “네 안에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 거하고 있고, 너는 포도나무의 가지야. 예수님을 꽉 붙잡고 있어야 해.”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언제 어디서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고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줄 아는 최중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 말씀이요, 우리가 또한 새기고 살아가야할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가시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열매를 많이 맺으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기도]
포도나무이신 주님, 주님을 붙잡고 가지로 살아가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터인데, 자꾸 주님을 떠나 세상의 방편을 통해 열매를 맺고자 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주님과 함께 힘차게 살아가는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