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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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2주] 사귐의 공동체

  • 관리자
  • 2021-04-11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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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둘째주일(20210411)
사귐의 공동체
사도행전 4:32~35(시편133, 요한1서 1:1~2:2,요20:19~31)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부활절 둘째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 위해서 힘쓰셨을 줄로 압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살아가지 않으려고 노력하셨을 터이고, 생명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힘쓰셨을 줄로 압니다. 이러한 노력은 일주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주님 앞에 가기까지 힘써야 할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무덤에 왔던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500여 형제에게, 마지막으로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바울’에게도 나타나시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극적인 삶의 변화가 확실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제자들이나 사도 바울 등의 극적인 변화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들의 변화된 삶에 대해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초대교회의 모습 역시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것이 어찌 가능했겠습니까?



저는 가급적이면 성서일과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합니다. 성서일과는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주일, 공동으로 묵상하는 성경말씀입니다.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한 주일에 같은 주제의 말씀을 읽고, 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각기 다른 장소와 나라에서 예배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한 가족임을 확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준비하기는 쉽지 않지만 성서일과로 설교준비를 하고, 성서일과를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님들과 함께 자료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과정에서 같은 말씀이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말씀들이 선포되는 신비를 봅니다. 그리고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달으며 도전을 받고, 제 설교를 완성합니다.



성서일과는 대체로 구약본문, 시가서, 서신서, 복음서 4개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좀 복잡합니다만, 요점을 정리해서 성서일과 전체의 공동주제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일은 특이하게 구약본문 대신 사도행전이 들어있는데, 올해 부활주간 동안에는 구약본문대신 사도행전의 말씀을 계속 이어서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 성서일과 요약


 

먼저 사도행전 4장 32~35절의 말씀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초대교회공동체’의 생활 모습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서로 통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시가서 시편 133편의 말씀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도 선하고 아름다운고”하는 1절의 말씀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공동체 교인들의 삶과 연결점이 있습니다. 서신서 요한1서 1장 1절에서 2장 2절의 말씀은 좀 길지만, 요점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3절에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 간의 ‘사귐’이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 요한복음 20장 19~31절의 말씀은, 제자들의 머물던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부활하신 몸을 직접 보여주시고, 만지게 하시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전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일과의 전체 내용을 축약해보면, 사귐의 공동체에 관한 말씀이요, 사귐의 공동체에 주님께서 ‘평안’을 내려주신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한남교회도 사귐의 공동체요, 하나님께서 한남공동체에 속한 모든 성도들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한남교회에서 함께 사귐의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예배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여러분과 가정 위에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 사귐의 공동체에서 생기는 일(1)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요한1서의 성서일과를 통해서 사귐의 공동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몇 몇 구절을 함께 읽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1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한1서 1:1)”

이 말씀을 부활체험을 한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들었을 뿐 아니라, 직접 보고, 만져봄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이 전하는 소식은 무엇입니까? 5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1서 1:5).”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전하면서 빛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서신서 성서일과의 내용입니다. ‘빛’이 뭐냐, 빛은 밝음이요, 빛으로 나아오면 비로소 ‘어둠’을 깨닫게 되고, 이 깨달음을 통해서 어둠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화목제물이 되셨으므로, 빛이신 하나님 앞에 나와 ‘제가 죄인입니다.’ 고백하면, 이렇게 고백하는 이들과 함께 사귐의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해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귐의 공동체에서 생기는 일 첫 번째는 ’죄 사함‘입니다. 
여러분, 한남교회에 나와서 예배하고, 친교하고, 교우들 간의 사귐을 통해서 죄 사함이 이른다는 것, 이것이 은혜의 말씀이 아닙니까?
 

 사귐의 공동체에서 생기는 일(2)


요한복음 20장 19~31절에는 제자들이 무서워서 모든 문을 닫고 머물러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하시며,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22~23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2,23).”

여러분, 누군가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내가 죄인입니다!”하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1서의 말씀과 연결하면, “내가 죄인입니다!”하는 깨달음은 빛이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얻어집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빛으로 나오라는 요한1서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는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빛으로 나아오면 사귐이 있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귐의 공동체에서 생기는 일 두 번째도 역시 ‘죄 사함’입니다.
 

 사귐의 공동체에서 생기는 일(3)


 

이렇게 죄 사함을 받은 사귐의 공동체에서 생긴 일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소한 말씀입니다.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것은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반댓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입니다. 우리는 분단된 역사로 인해 ‘공산주의’에 대한 편견이 많지만, 단어만으로 정리하면 초대교회는 ‘공산주의 최초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주의’가 되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은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역사상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자신들의 추구하는 최고의 선을 이룬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한 마음 한 뜻’을 가장 중요하게 읽습니다.

사귐의 공동체에 꼭 필요한 일은 ‘한 마음 한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음 일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귐의 공동체에서 생기는 일 세 번째는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일입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가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구성원들이 완벽해서 ‘한 마음 한 뜻’입니까? 아니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부족함을 잘 알지만, 가족이니까 덮어주고, 보완해주고, 그러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족이라고 하면서 이걸 하지 못하면, 그 가정을 깨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남교회도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서로에게 부족한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이기게 우리는 서로 허물을 덮어주고, 보완해 주고,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귐의 공동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때, 우리는 부족한 죄인이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화목제물로 인해 죄 없다 여김을 받는 빛의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화목제물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 빛으로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한남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귐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남교회에 나와서 예배하고, 친교하고, 교우들과 사귀면서 죄 사함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귐의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고, 잘 가꿔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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