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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1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 관리자
  • 2026-09-0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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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첫째주일(20260906)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시편 104:10-24

 


창조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창조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된 인간 본연의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절기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는 말씀은 우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문장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단군신화가 있습니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곰의 유전자를 가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화는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기보다 한 민족이 자신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몇 년 전에,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느냐가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핵심은 ‘이 세계는 하나님의 것이며, 인간은 그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시며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이 세계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 우리의 현실


올여름 우리는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를 겪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을 걱정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꺼번에 쏟아지는 폭우로 사람이 죽고 삶의 터전을 잃기도 했습니다.
최근 네팔과 티베트 접경의 히말라야에서는 빙하가 무너져 내리면서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도 끊이지 않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가자에서는 지금도 민간인들이 죽어갑니다. 수단의 내전에서는 민족과 인종을 이유로 사람들이 살해되고,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폭력과 추방의 위협 속에 살아갑니다. 수단과 콩고 등에서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소녀들이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

기후위기, 전쟁과 기아, 인종과 민족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폭력….
이런 소식을 매일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력감을 느낍니다. 문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국가가 얽혀 있고, 정치와 자본이 얽혀 있고, 오랜 역사와 종교와 민족의 갈등이 얽혀 있습니다.
 

■ 의심하고 싶은 질문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내가 일회용품 하나 덜 쓴다고 기후위기가 멈출까?
내가 밥 한 그릇 남기지 않는다고 굶주리는 아이가 살아날까?
내가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전쟁이 끝날까?
내가 차별하지 않는다고 세상의 혐오와 폭력이 사라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고, 세상의 문제는 너무 커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합니다.
“나 하나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런데 오늘 저는 바로 이 말을 의심해 보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 창조를 노래한 시편 104편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04편은 아름다운 창조의 노래입니다.
시인은 세상을 바라봅니다.
골짜기에서 샘물이 흐릅니다. 들짐승들이 그 물을 마십니다. 들나귀도 목을 축입니다. 물가의 나무에는 새들이 깃들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냅니다. 하나님께서 산에 물을 주시니 땅이 열매를 냅니다. 가축을 위해 풀이 자라고 사람을 위해 채소와 곡식이 자랍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에는 새들이 집을 짓습니다. 높은 산에는 산양이 살아가고 바위틈에는 작은 짐승들이 몸을 숨깁니다. 달과 해는 계절과 시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시인은 감탄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참 재미있는 것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시편 104편의 세계에서 인간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물이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들짐승도 마십니다. 나무도 물을 먹습니다. 새들도 그 곁에서 살아갑니다. 높은 산은 인간이 개발해야 할 땅이 아니라 산양이 살아가는 집입니다. 바위틈 역시 쓸모없는 공간이 아니라 작은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자기 자리가 있고 인간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 창조이야기의 주제


창세기 1장도 모든 피조물을 향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선언합니다.
인간에게 쓸모가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 좋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도 자연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허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계를 돌보고 지키라는 청지기적 책임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았습니다.
나무를 보면 목재를 생각했고, 산을 보면 개발을 생각했고, 강을 보면 발전소를 생각했고, 땅을 보면 가격을 생각했습니다.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사용했습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버리는 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소비생활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인처럼 소비하며 산다면 지구가 3.7개 필요합니다.
세계인이 우리처럼 산다면 4월 9일이면 지구가 1년 동안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사용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지구는 하나뿐입니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물은 10억 톤이 넘고, 가정에서 버리는 먹을 수 있는 음식만 매일 10억 끼가 넘습니다. 그런데 세계 한쪽에서는 약 6억 7천만 명이 굶주림을 겪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립니다.

물론 내가 밥 한 그릇을 남기지 않는다고 그 밥이 곧바로 굶주리는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적어도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질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신애는 깊은 고통 가운데 교회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너무나 평안한 얼굴로 말합니다.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신애는 무너집니다.
내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용서했다고?
그 뒤 신애는 기독교 집회가 열리는 곳에서 노래 하나를 크게 틀어놓습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참 아픈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신앙고백과 삶이 서로 어긋난다면, 우리의 신앙은 무엇인가?
 

■ 신앙고백과 삶의 방식


우리는 매주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런데 창조주를 믿는다는 고백과 우리의 삶은 얼마나 연결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함부로 사용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세계의 굶주림을 걱정하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을까요?
평화의 주님을 믿으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쉽게 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더구나 성경을 믿는다는 이유로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의 고백이 삶의 방식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 어쩌면 누군가는 우리에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거짓말이야.”
 

■ 더 위험한 거짓말


그러나 더 위험한 거짓말이 있습니다.
“내가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맞습니다.
내가 작은 일을 하나 한다고 세상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도 수십억 사람의 작은 욕망과 소비와 편리함과 무관심이 쌓여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반대의 길도 작은 것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알과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작은 것은 무력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 창조절기에 실천하면 좋을 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덜 사고, 먹을 만큼만 준비하고, 아직 쓸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오래 사용하고, 조금 불편해도 생명을 덜 해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다르다고 쉽게 미워하지 않고, 혐오의 말에 동조하지 않으며, 갈등을 키우기보다 평화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전쟁이 당장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것으로 지구의 온도가 내일부터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달라집니다.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달라지면 세상도 달라집니다.


물론 개인의 실천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변해야 하고, 정부 정책과 에너지 구조도 달라져야 합니다. 불의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조가 크다고 해서 나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청지기의 삶입니다. 청지기는 세상의 주인이 아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 제대로 바라보기


시편 기자는 세상을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어쩌면 창조절에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창조세계를 제대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나무를 자원이 아니라 나무로, 강을 이용할 물이 아니라 강으로, 한 그릇의 음식을 하나님의 선물로, 사람을 적이나 경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 시작하면 함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창조신앙은 세상을 소유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함께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 우리가 거부해야할 거짓말


창조절 첫째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거짓말 하나를 거부합시다.
“네가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
거짓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함께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그런 삶으로 “나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우리의 신앙고백은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아멘.


■ 거둠 기도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하신 창조주 하나님,
여전히 이 세상에는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도 남아있지만,
아름다운 세상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주님 우리를 무력하게 하는 거짓말 앞에 우리의 신앙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신앙고백과 삶이 다르지 않은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그 작은 삶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만들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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