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14주(20260830)
신을 벗고, 묻고, 길을 나서다
출애굽기 3:1-15

모세는 대략 40세가 되었을 때, 동족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피했고, 거기서 40년을 살면서 결혼하고 목자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약 80세 무렵에 바로 앞에 섰습니다.
성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보낸 시간을 40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40년은 달력으로 헤아린 정확한 햇수라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 한 시절이 다 지나갔다고 할 만큼 긴 시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모세에게 광야는 잠깐 머문 곳이 아닙니다.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곳입니다. 처음에는 도피처였지만 어느덧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을 치며 살아가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왕궁에서 살았던 사람에게 광야는 처음에는 낯설었겠지만, 긴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되었겠지요. 그날도 모세는 그저 평소처럼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호렙산에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한 하루 속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생각해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거룩한 곳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그곳이 거룩한 곳이고, 그 거룩한 곳은 특별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카프카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글에서 ‘세계와 나 사이의 경계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런데 이 경험은 특별한 곳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일상이었던 호렙산은 우리에게는 부엌일수도 있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일 수도 있고, 병원 대기실일 수도 있고, 책상 일수도 있습니다. 카프카에게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고, 우리에게는 평범한 일상인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거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일상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분주하게 사느라 다른 것에 시선을 두느라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모세는 떨기나무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를 부르신 하나님은 애굽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거룩함은 꽃 한 송이를 자세히 바라보는 데서 시작될 수 있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은 마침내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시는 사람들을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떨기나무가 불타면서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좀 더 자세히 보고자(3)’, 개역성경에서는 ‘돌이켜 가서’ 그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장면입니다. 4절에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시입니다. 시인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노래합니다. 어쩌면 돌이켜 본다는 것은 이름을 불러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것을 다시 바라보고, 그 존재가 내게 말을 걸어오도록 마음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매일 보는 사람도 자세히 보면 달라 보입니다. 매일 걷는 길도 마음의 눈을 뜨고 걸으면 이전과 다른 길이 됩니다.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늘 김춘수의 시와는 또 다른 신비가 있습니다.
모세가 떨기나무를 돌이켜 보는 순간,
모세가 떨기나무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떨기나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오래전부터 눈여겨 바라보고 계셨던 하나님의 시선과 마주친 것입니다. 돌이켜 본다는 것은 그런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그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발에는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의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어디를 걸었는지,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가 신발에 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발은 한 사람이 살아온 이력과도 같습니다. 물론 본문이 신발을 곧 이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이 신발을 우리가 걸어온 삶의 흔적이라는 의미에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도 저마다 한 켤레의 신발을 신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학력이라는 신발을 신고, 어떤 사람은 직함이라는 신발을 신고, 어떤 사람은 재산과 성공이라는 신발을 신고 살아갑니다. 목사, 장로, 권사라는 이름도 때로는 신발이 됩니다. “나는 평생 교회를 이렇게 섬겨왔다”는 신앙의 경력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신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력에는 자랑스러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도 이력입니다. 상처도 이력이고, 실수도 이력이며,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도 이력입니다.
모세에게도 복잡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인으로 태어났지만 애굽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왕자의 교육을 받았지만 자기 민족을 잊지 못했습니다. 정의감에 불타 애굽 사람을 죽였고, 그 일 때문에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이력을 지닌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신을 벗으라.”
신을 벗는다는 것은 내가 이루어 놓은 것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고, 내가 실패한 것으로도 나를 규정하지 않는 것. 하나님 앞에 맨발로 서서 “나는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룩한 땅에 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력이 아니라 맨발입니다. 그러므로 신을 벗는다는 것은 마침내 내가 내 삶의 주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았다. 내가 들었다. 내가 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건져내겠다. 내가 그들을 인도하겠다.”
하나님이 하신다면서 왜 모세를 보냅니까?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출애굽의 주체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목적어로 만들고 자신을 주어로 삼습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를 섬기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봉사하고, 내가 선교하고,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지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모세를 통하여 하시듯,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시지만 인간을 객체로 만들지는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선뜻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질문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너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그래서 모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일까요?
저는 오히려 여기에 모세 신앙의 정직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질문이 사라지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 깊이 질문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 삶에는 아무리 기도하고 열심히 정성을 다해도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신앙은 질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품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세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미래의 모든 일을 설명해 주시기보다 당신 자신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그러므로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곳에 하나님이 계실지 모릅니다.
신을 벗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이력도, 실패도, 내가 해야 한다는 집착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질문하며 가십시오. 모든 답을 얻은 뒤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분을 믿으며 질문을 품고 길을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돌이켜 볼 수 있는 것도, 신을 벗을 수 있는 것도, 답을 다 알지 못하면서 길을 나설 수 있는 것도 한 가지 약속 때문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무심히 지나치던 일상을 돌이켜 보게 하시고
그곳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만나게 하소서.
우리의 자랑과 실패와 지나온 이력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맨발로 서게 하소서.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주님께 묻고,
주님이 하시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며 길을 나서게 하소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말씀을 의지하여
오늘도 담대히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