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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11주] 질그릇 안에 담긴 보물

  • 관리자
  • 2026-08-0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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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11주(20260809)
질그릇 안에 담긴 보물(제목을 누르시면 ppt동영상메세지로 연결됩니다.)
고린도후서 4:5-12

 

지난 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중에 7일(금) 입추, ‘가을’이 왔습니다.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로 ‘가을에 접어드는 날’이니,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14일 말복이 지나고 나면 머지않아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23일)가 올 것이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로 계절의 변화가 희미해지긴 했지만, 아직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한 계절이 가고 다른 계절이 오는 것은 신비롭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여름이 사라지고 가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여름 가운데 이미 가을이 들어와 있습니다. 폭염이 계속되어도 해는 밤은 조금씩 길어지고, 새벽 공기의 결도 아주 조금씩 달라집니다. 입추 다음 날이었던 어제는 새벽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밤이 점점 길어지면서 가을 냄새를 맡고 구절초가 꽃 몽우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다음 계절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바라보면 신비롭기가 그지없습니다.

생명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씨앗은 땅속에 묻혀 제 모습을 잃어야 싹을 틔웁니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며 겨울로 들어가지만, 그 빈 가지 안에 이미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소멸과 생성, 죽음과 생명을 언제나 함께 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후서 4장은 이와 같은 생명의 신비를 말합니다. 
 

■ 바울이 발견한 보물



바울은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선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로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험은 어느 순간 그릇이 보물인 것처럼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존귀한 존재로 창조된 것은 맞지만, 설교자도, 교회도, 그 어떤 신앙의 제도도 보물 그 자체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다만 그리스도를 담고 전하는 질그릇일 뿐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이 보물’은 6절에 나와 있습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보물은 금이나 은이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명예도 아닙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알게 된 것,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한 것이 보물입니다. 

세상은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 많이 소유하고, 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전혀 다릅니다. 그 영광은 자신을 비우고 낮아지는 영광이며, 아픈 이들의 곁으로 다가가는 영광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어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힘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에는 실패와 수치였지만, 바울은 바로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안에 온 보물을 보지도 못하고, 보물이 들려주는 말씀을 듣지도 못ㅎ라고, 그가 보여준 표적의 의미를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보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반역자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실패한 사람,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힘으로 사람을 굴복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어 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그것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다고 고백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때 그 사람들뿐 아니라 오늘 날에도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를 보물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다른 곳에서 보물을 찾고 있는 현실입니다.
 

■ 우리 안으로 들어온 보물



6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으셨고,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선재성이라고 합니다. 

이승우의 소설 『사랑의 생애』에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사랑을 선택하고 시작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전과 똑같이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신앙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우리 안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마음을 비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없습니다. 
 

■ 질그릇에 담긴 보물



바울은 이 귀한 보물이 ‘질그릇’ 안에 담겨 있다(7)고 말합니다.
당시의 질그릇은 흔한 생활용품이었습니다. 값이 싸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지만, 쉽게 금이 가고 작은 충격에도 깨졌습니다. 귀한 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릇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과 삶을 그 질그릇에 비유합니다.

우리도 질그릇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예상하지 못한 일 앞에서 쉽게 흔들립니다. 몸은 병들고, 세월이 흐르면 늙어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 주고 싶어도 지켜 주지 못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합니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워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갑니다. 보물을 품고 있는 존재지만, 여전히 우리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입니다.
 

■ 보물의 능력



질그릇이 보물을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물이 질그릇을 귀하게 합니다. 우리가 강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완전해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전하는 것도 아닙니다. 깨어지기 쉬운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보물을 담아 두셨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질그릇을 금그릇으로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믿으면 더 이상 약해지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신이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담아 두신 보물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8절과 9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겪은 삶의 현실을 네 가지로 말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고난을 피하게 해 주는 믿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믿음입니다. 바울을 붙들어 준 것은 자신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자기 안에 담긴 보물이었습니다. 질그릇은 흔들리고 금이 가지만, 하나님께서 담아 주신 보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질그릇과 같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근거입니다.
 

■ 죽음에서 생명으로



10절에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면서 죽음의 그림자를 자기 몸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안전한 자리를 떠났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몸을 내어주었습니다. 붙잡히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의 죽음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죽음의 그림자를 넘어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유월절 파스카의 신비입니다.
 

■ 사랑의 신비

 


세상은 살려면 움켜쥐라고 말합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려고 애쓰다 소중한 것을 잃기도 합니다. 복음은 자신을 내어줄 때 생명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사랑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정의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몫을 나누는 순간 생명이 흘러갑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통을 감수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큰 생명을 위해 작은 자아를 넘어가는 파스카입니다.

12절은 오늘 본문의 절정입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우리 안에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작용합니다.”
사랑은 자신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내어주면 다른 누군가가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생명이 열렸습니다. 바울도 그 길을 따라 고백합니다.
“죽음은 우리 안에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작용합니다.”

 

■ 보물을  주신 이유



보물은 나만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이 흘러가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재능, 시간과 물질, 믿음과 소망이 이웃에게로 흘러갈 때 비로소 그 보물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신앙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편안한가?”가 아니라 “내 안에 담긴 보물이 누구에게 생명이 되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성공했는가?”가 아니라 “나의 삶을 통해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언젠가 몸은 늙고,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도 내려놓아야 하며, 마침내 이 질그릇도 깨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담긴 보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죽음보다 강한 하나님의 사랑은 깨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질그릇인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또한 질그릇을 보물인 것처럼 자랑하지도 마십시오. 다만 우리 안에 담긴 보물을 믿고, 그 생명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십시오. 죽음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더라도, 우리를 통해 누군가에게 생명이 일어나게 하십시오. 이것이 질그릇 안에 보물을 담아 주신 까닭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파스카의 삶입니다.


■ 거둠 기도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우리에게 오셔서,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오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으로 인해 빛나게 하시고, 그 보물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귀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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