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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8주] 그늘이 있는 사람

  • 관리자
  • 2026-07-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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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8주(20260719)
그늘이 있는 사람
열왕기상 19:11-12, 이사야 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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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입니다.
요즘은 길을 걸을 때도 햇빛이 비추는 곳보다 그늘을 먼저 찾게 됩니다.
남한산성 산성동 로터리 근처 남한산초등학교 입구와 연무관 앞에는 470년 수령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남한산성으로 칡을 캐러 갈 때마다 그 나무 아래를 지나가곤 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친구 하나가 그 느티나무를 너무 좋아해서 ‘느티나무’라는 닉네임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남한산성에 가면 470년 되었다는 그 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곁눈질로라도 바라봅니다. 나무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어느새 어린 아이였던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름이면 버스정류장과 그리 멀지 않았기에 그 나무 아래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시장에 다녀오며 잠시 짐을 내려놓은 아주머니,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어르신, 아이를 업은 젊은 엄마.... 누군가는 잠시 허리를 펴고, 누군가는 물 한 모금을 마셨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느티나무는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곳에서 쉬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을 쉬게 한다는 것을.
 

■ 하나님은 산들바람처럼 오신다


제가 6년간 시무했던 제주 종달교회에 마당에는 오래된 팽나무가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작은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잡초를 뽑고, 밭을 고르다 보면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팽나무 아래에 앉아 냉수 한 잔을 마시면 산들바람이 불어옵니다. 에어컨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바람입니다. 몸이 먼저 압니다.

“아, 시원하다.”

그때 저는 “성경이 말하는 ‘세미한 소리’란 이런 것이겠구나.
땀을 흘린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바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하나님은 그렇게 오시는 분이셨습니다.


■ 엘리야에게 먼저 필요했던 것은 기적이 아니라 쉼이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엄청난 승리를 경험합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외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음 장면은 승리가 아닙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쓰러집니다. 
“차라리 죽게 해 주십시오.” 큰 기적을 경험했지만,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 그것은 쉼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먹이시고, 재우시고, 걷게 하십니다. 그리고 호렙산에서 만나십니다. 거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산이 갈라질 만큼 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도 있었습니다. 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어 세미한 소리, 고요한 침묵, 산들바람 같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압도하는 강력한 하나님을 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하나님은 강함보다 약함으로, 소란보다 고요함으로, 폭풍보다 산들바람으로 오시는 분이셨습니다.
 

■ 그늘에서는 사람이 느긋해 집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영성을 한 단어로 설명했습니다.
Attention(주의), 오래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무는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도 오늘의 사회는 관조를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관조는 천천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반응합니다. 너무 빨리 판단합니다.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나무 아래에 서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앉게 됩니다.
바람 소리를 듣게 됩니다.
새소리를 듣게 됩니다.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관조와 주의는 그늘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무 그늘 아래 기대어 서보십시오. 기대어 서서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 큰 바위 그늘 같으리라


이사야는 나라가 무너지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앗수르가 밀려오고, 왕들은 하나님보다 정치와 외교를 의지했습니다. 백성들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메시아를 약속하십니다.

“그 사람은...곤비한 땅의 큰 바위 그늘 같으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메시아는 사람들을 눈부시게 만드는 분이 아니라 쉬게 하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셨습니다.
세리도, 죄인도, 병든 사람도, 상처 입은 사람도 예수님 곁에서는 긴장이 풀렸습니다.
정죄받지 않았습니다.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늘이셨습니다.
 

■ 나무에게 배우는 신앙


저는 나무를 참 좋아합니다.
나무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많은 것을 배웁니다.
나무는 겨울을 피해 가지 않습니다.
맨몸으로 견딥니다. 겨울을 견딘 나무만 봄을 맞습니다.
나무에는 옹이가 있습니다.
상처가 남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옹이가 나무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견뎌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습니다.
나무는 죽은 가지를 미련 없이 떨구어 냅니다.
그래야 새순이 돋습니다. 우리도 미움을, 후회를,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목재는 쉽게 자란 나무가 아닙니다.
추위와 바람을 오래 견딘 나무입니다. 
신앙도 같습니다. 빨리 자라는 믿음보다 천천히 깊어지는 믿음이 사람을 살립니다. 
그리고 나무는 보이지 않는 뿌리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기도. 침묵. 묵상. 관조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뿌립니다. 이 뿌리가 깊을수록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는 자기 그늘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습니다.
새들에게 내어주고, 길 가는 사람에게 내어주고, 지친 사람에게 내어줍니다.
그늘은 나무가 베푸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 교회는 하나님의 큰 그늘이다


세상은 빛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늘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늘은 햇빛이 없는 곳이 아니라 햇빛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은혜입니다. 김응교 시인은 ‘문학과 숨은 신 그늘’에서 ‘빛의 세계도 어둠의 세계도 아닌’이라고 말하면서, 숨은 신은 빈민과 미물들에게 소나기를 피할 곳, 더위를 막는 그늘이 되시는(사 25:4)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세상 속에 세워진 하나님의 큰 그늘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쉬어 가는 곳. 질문해도 괜찮은 곳.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 눈물을 흘려도 부끄럽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니 먼저 교회라는 그늘에 들어와 앉았다고 텃세 부리지 말고, 그늘로 들어와 쉬고자 하는 이들을 배려하고 그늘을 내어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세상으로 흩어지는 작은 그늘들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이웃 가운데서. 누군가가 "저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저는  언젠가 하나님께 이런 말을 들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큰 나무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그늘이 되어 주었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늘이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큰 그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으로 흩어지는 작은 그늘입니다. 그늘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 거둠 기도


그늘 되신 하나님, 뜨거운 세상 한가운데서 저희를 품어 주시고 쉬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폭풍보다 산들바람으로, 큰 소리보다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빛나기보다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많이 드러나기보다 조용히 그늘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 한남교회가 상처 입은 사람들이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의 큰 그늘이 되게 하시고,
우리 모두는 가정과 일터와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작은 그늘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너는 많은 사람에게 그늘이 되어 주었구나.” 그 한마디를 듣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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