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맥추감사주일(20260705)
감사는 해석이다
창세기 50:15-21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보리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던 절기였습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을 지나 약속의 땅에 정착한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씨를 뿌리고 처음 거둔 보리를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그것은 단지 곡식 한 단을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보리를 추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한 해의 절반을 살아온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읽는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6개월을 결산합니다.
“얼마를 벌었고, 성공했고, 이루었는가?”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가?" “나는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감사가 시작됩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해석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을 만납니다.
비가 오는 날도 있고,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을 때도 있고, 병원에서 좋지 않은 진단을 듣기도 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던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건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같은 실패를 두고도 누군가는 거기서 인생이 끝났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날부터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해석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생은 사건으로 쓰이지만, 삶은 해석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그 일을 어떻게 읽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가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읽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내 삶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상반기를 해석하는 날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갈 때 총리가 될 줄 몰랐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도 몰랐습니다. 억울하게 잊혀 졌을 때 이 시간이 훗날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시간이 될 줄도 몰랐습니다. 그때는 그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소설을 읽을 때 마지막 장을 읽어야 소설의 첫 장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프루스트는 말합니다.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신앙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풍경을 먼저 바꾸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눈을 먼저 바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악을 선이라고 우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받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플 때는 아프다 하고, 울 줄 알아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할 것은, 현실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다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결과라도 의미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돌아보면 지난 상반기는 모두에게 쉽지 않았습니다. 기대한 만큼 이루지 못한 일도 있었고, 건강이 약해진 분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분도 있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감사가 좋은 결과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감사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성과보다 존재를 변화시키십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은 그의 성공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지난 6개월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인내를 심으셨고, 겸손을 배우게 하셨고, 사랑을 배우게 하셨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중이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감사는 모든 사건의 의미를 다 아는 사람이 드리는 노래가 아니라, 아직 의미를 다 알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드리는 노래입니다.
저는 맥추감사절이 참 아름다운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추수를 다 마친 것도 아니고, 아직 한 해가 끝난 것도 아닙니다.
아직 기도가 응답된 것도 아니고, 병이 나은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감사합니다.
왜일까요?
아직 한 해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직 창세기 50장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37장(형들에게 노예로 팔림)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39장(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힘)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41장(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총리가 됨)을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자기 인생을 실패라고 결론짓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감사는 끝난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해석자입니다.
어떤 해석을 붙이느냐에 따라 절망도 되고, 희망도 됩니다.
영어에서는 감사(thank)라는 단어가 생각(think)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것이 참 마음에 듭니다. 감사는 오랫동안 깊게 생각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발견하는 삶의 해석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현재형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6개월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기뻤던 일도, 아팠던 일도, 아직 이해되지 않는 일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놓아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감사는 언젠가 이해하게 될 미래의 노래가 아니라, 오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현재의 노래입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요셉도 50장에 이르러서 비로소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50장에서 고백했을 뿐입니다. 이미 그는 감옥에서도 성실했고, 보디발 집에서도 충성했고, 총리가 되어서도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는 마지막에만 감사한 사람이 아니라 매 순간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오래 생각한 사람이 마침내 얻게 되는 신앙의 해석이면서도, 동시에 오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현재형 고백입니다.
■ 거둠 기도
우리의 시간을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지난 상반기의 시간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늘 결과를 계산하며 살아왔지만, 주님은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을 빚어 오셨음을 고백합니다. 기쁨의 날도 있었고, 눈물의 날도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도 있었고, 아직도 의미를 찾지 못한 시간도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다시 읽게 하시고, 오늘을 하나님 나라의 시간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요셉이 지난 시간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다시 읽었던 것처럼, 우리도 지난 상반기를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원망보다 감사가, 절망보다 소망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인내를 심으시고, 겸손을 배우게 하시고, 사랑을 익히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도록 우리를 빚어 가시는 토기장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아직 끝나지 않은 하반기의 길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의 계획보다 크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게 하시고, 결과를 두려워하기보다 오늘 맡겨진 삶에 성실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감사도 깊어지게 하시고, 지나온 시간을 다시 생각할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생각이 감사가 되고, 우리의 감사가 다시 믿음이 되어, 남은 시간도 주님과 함께 담대히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