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다섯 번째 주일(20260628)
거룩한 두려움
누가복음 13:6-9
두 종류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주는 공포입니다.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다보면, 실패할까 두렵고, 뭔가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성경은 이 두려움에 대해 끊임없이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성경은 또 하나의 두려움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
이것은 공포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삶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생명이 헛되이 끝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이 두려움을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두려움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젊을 때는 실패가 두렵습니다.
직장을 잃을까 두렵고, 돈을 잃을까 두렵고, 사람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 보면, 그런 두려움보다 '나는 잘 살았는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무엇을 가지고 설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점점 커집니다. 살아온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마음이 여전히 나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만 머물러 있다면, 몸은 나이를 먹었을지라도 영혼은 아직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젊은 날에는 '무엇을 가질 것인가'를 묻지만, 성숙한 신앙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만일 우리의 관심이 여전히 소유와 만족에만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에게 내려온 생각들이 나의 부족함과 가련함에 물들어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걱정해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큰 고통입니다."
이 문장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오래 머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달란트가 내 교만 때문에, 내 욕심 때문에, 내 미성숙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두렵습니다. 베유는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읽을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이 비유를 읽으며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오래 머물다 보니, 어느새 그 나무가 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삼 년이 아니라 육십 년 이상을 믿었습니다. 삼십 년 넘게 설교도 했고, 기도도 했고, 목회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님 앞에 서니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정말 열매를 맺고 있는가.
그런데 더 두려운 질문이 생겼습니다.
내가 열매라고 믿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도 정말 열매일까.
사람들은 교회가 커진 것을 열매라고 말합니다. 직분을 받은 것을 열매라고 말합니다. 기도를 오래 한 것을 열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성한 잎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세상은 성과를 열매라고 말합니다. 돈을 많이 벌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교회도 커지면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열매를 찾으십니다.
사랑이 자랐는가. 용서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오래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가. 전보다 조금 더 온유해졌는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였습니다.
혹시 우리는 잎사귀를 붙들고 열매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열매가 없는 것보다 열매가 없어도 부끄럽지 않은 데 있는지 모릅니다. 오래 믿었지만 여전히 비교하고, 시기하고, 상처받고, 쉽게 삐지고, 자신의 신앙 체험만을 절대화합니다. 직분은 자랐는데 사람은 자라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는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신앙은 오래 믿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인은 "찍어 버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포도원지기는 "한 해만 더 그대로 두십시오.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도 "한 해만 더." 라고 말씀하셨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제가 실수했을 때도, 넘어졌을 때도, 교만했을 때도, 하나님은 찍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 더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복음을 봅니다.
주인은 정의를 실행에 옮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포도원 지기는 한 해만 더 지켜봐 달라고 합니다. 그 포도원지기의 모습에서 저는 예수님을 봅니다. 오늘도 우리의 열매 맺지 못하는 삶 곁에 서서 땅을 파시고 거름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책망하기보다, 우리가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북을 주고 거름을 주시며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기다림은 회개를 위한 시간이지, 미루기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저는 또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어야할 무화과나무지만, 성도들 앞에서는 거름을 주는 포도원지기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목회자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게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땅을 파고 거름을 줄 뿐입니다.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해 주시는 것이고, 거름을 주는 일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포도원 지기는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탓하지 않고, 베어버리라는 주인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관심이 있습니다.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이 한 문장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습니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열매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늘 하나님 앞에 비추어 보는 사람. 다른 사람의 열매를 재촉하기보다 한 사람의 삶을 기다려 주는 사람. 성령께서 찾으시는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 포도원지기일 것입니다. 포도원 지기는 열매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열매가 맺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열매를 맺어야할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누군가를 기다려 주는 포도원지기이기도 합니다. 포도원지기가 기다려 주었듯이, 우리도 누군가를 한 번 더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포도원지기가 땅을 파고 거름을 준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메마른 마음을 일궈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거룩한 두려움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그 겸손이 마침내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에 거름을 주십니다. 직접 주시기도 하지만, 포도원지기 같은 누군가를 통해서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도 그들처럼 포도원 지기로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포도원지기로 살아갑시다.
열매를 재촉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름을 주는 사람, 그 사람이 귀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 설교는 처음부터 여러분을 향한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묵상이 깊어질수록 그 나무는 점점 제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는 열매를 맺어야할 무화과나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포도원지기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때 시몬 베유의 문장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내게 내려온 생각들이 내 부족함 때문에 죽어버릴까 두렵다."
저는 그 두려움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오늘도 땅을 파시고 거름을 주신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삶의 땅을 파고 거름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도 누군가의 삶을 일구는 포도원지기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열매에 연연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거름을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 거둠 기도

주님, 내게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하시고, 누군가의 열매 맺음을 위해 북을 주고 거름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