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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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4주]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 관리자
  • 2026-06-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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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1 성령 강림 후  네 번째 주일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에베소서 4:11-16

 


오늘은 성령 강림 후 네 번째 주일입니다.
에베소서 4장의 제목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이라는 제목입니다. |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셔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서로 봉사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교회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건물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공동체’입니다. 
 

■ 흩어지는 교회


우리는 흔히 “교회에 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예배당에 가는 것입니다.
예배당은 건물입니다.
비가 오면 피할 수 있고,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건물이기에 짓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고, 때로는 허물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면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을 떠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예배가 끝나는 순간 교회는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교사는 교실에서, 의사는 병원에서, 농부는 들판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가정주부는 가정에서, 은퇴한 어르신은 삶의 자리에서 각자 받은바 은사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드러냅니다. 교회는 예배당 안에서만 존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세상으로 보낼 때 비로소 교회다워집니다. 그래서 예배당은 우리의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파송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모인 교회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 성숙한 신앙


바울은 “어린아이에 머물지 말라”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계속 어린아이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누군가에게만 의존하고, 자신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성숙한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도 신앙의 어린아이로 머물 위험이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못하고, 하나님께 무엇을 받을지만 생각하며, 교회를 나의 필요를 채우는 곳으로만 여긴다면 우리는 아직 장성한 믿음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린아이에 머물지 말고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권면합니다.
성숙한 신앙은 예배당 안에만 머무는 신앙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받은 은사로 서로를 세우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장성한 사람의 모습이며,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는 길입니다.
 

■ 하나가 된다는 것


하나님은 우리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꽃이 모두 장미일 필요가 없듯이, 사람도 모두 같은 은사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16절에서 바울은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라고 말합니다. 몸은 눈만 있어도 안 되고, 손만 있어도 안 됩니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연결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몸이 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다름은 문제가 아닙니다. 연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는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나무는 흙과 연결되어 있고, 흙은 미생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벌은 꽃과 연결되어 있고, 강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이 단절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는 것입니다. 죄는 관계의 단절이고, 성령은 관계를 연결시키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이루시는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니라 연결성입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성직자인 John Donne은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섬을 보면 서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다 위로 드러난 모습만 볼 뿐입니다. 바다 아래를 보면 하나의 해저 지형 위에 솟아 있는 섬들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직업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은사도 다릅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연결 자체가 아닙니다.
어떤 연결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탐욕으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생명을 세우는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서로를 무너뜨리는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죄는 단순히 윤리적인 나쁜 행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의 가장 깊은 속성은 관계를 왜곡하고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신과 자신과의 관계성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죄는 언제나 생명의 연결을 끊어 놓습니다.
 


■ 부활 신앙


성령께서 이루시는 연결은 서로를 이용하는 연결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 주는 연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운다”(엡 4:16)고 말합니다. 교회는 서로를 세워 주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이것이 성령께서 이루시는 하나 됨입니다.

리처드 로어는 『불멸의 다이아몬드』에서 부활한 사람은 죽은 뒤에 살아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지도 않습니다.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을 세우며,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사건이기 전에 삶의 방식입니다. 부활한 사람은 연결을 끊는 사람이 아니라 연결을 회복하는 사람이며, 공동체를 허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입니다.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바울이 말하는 ‘어린아이의 신앙’은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받은 신앙의 체험은 분명 소중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체험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전부가 되고, 자신의 경험만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성장은 멈추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의 응답으로 병이 낫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기도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자기 몸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것을 은혜로 받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반댓말은 불신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성숙한 신앙은 자신의 체험을 절대화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타인의 삶에도 다양하게 역사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을 내세우기보다 서로의 받은바 은사를 존중하며 공동체를 세워 가는 것.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는’ 성숙한 믿음입니다. 이런 성숙한 믿음을 간직한 여러분과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 서로를 세워가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권면합니다. 신앙은 예배당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은 경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죄는 언제나 관계를 끊고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성령은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믿음은 자신의 체험을 절대화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삶에도 다양하게 역사하심을 인정하며 서로를 세워 가는 믿음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배당을 떠나 세상으로 파송됩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갈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비로소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그런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 거둠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불러주시고 서로 다른 은사를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배당에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숙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믿음의 여정이 되게 하시고, 어디에서나 평화와 사랑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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