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주일 메시지(20260614)
백합화를 생각해 보아라
누가복음 12:22-34
꽃이 가장 적게 피는 계절이 언제인지 아시는지요?
겨울을 제외하고 꽃이 가장 적은 계절은 6월부터 8월에 해당하는 여름입니다. 이때는 봄에 피어났던 꽃들이 열매를 맺는 시기고, 가을꽃들은 피어날 준비를 하는 중이므로 들에 꽃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름에 피어나는 꽃 중에 대표적인 꽃은 ‘나리꽃’입니다. 나리꽃은 ‘백합과’의 꽃을 총망라합니다. 오늘은 환경주일을 맞이하여, 풀꽃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예수님은 참 이상한 분입니다.
세상이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사람들은 대개 해결책을 찾습니다. 경제를 이야기하고, 정치 이야기를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들꽃을 가리키며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하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백합화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식주를 위해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그 염려와 근심에 눈이 가려져 정작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눈을 뜨라는 말씀이고, 이미 너희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 번 쯤 들에 핀 백합을 보았을 것입니다. 공중의 새와 까마귀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공중의 새들이나 들의 꽃까지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을. 사람은 그들보다 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으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염려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안목의 부재입니다.
환경주일을 맞아 저는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날 환경문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흔히 플라스틱, 탄소배출, 기후위기 등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욕망에 빠져 더 이상 자연을 자연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들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삶은 결국 창조세계를 병들게 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삶은 꽃을 보지 않고, 공중 나는 새를 보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기는 합니다만 주의를 기울여 보지는 않습니다. 휴대전화 속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보지만 정작 한 송이 꽃 앞에 멈추어 서질 못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나무 한 그루가 계절을 따라 변하는 모습은 보지 못합니다. 너무 많이 보고 듣기 때문에 정작 보고 들어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는 더 많이 소유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충분함을 아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환경위기는 충분함을 잃어버린 인간 욕망의 결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만큼 자연도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시몬 베유는 기도와 사랑을 ‘주의(attention)’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란, 무언가를 많이 말하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주의 하며 그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주의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타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면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되면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자를 주의 깊게 보는 이들은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관조는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뉴스를 보고, 영상을 보고, 댓글을 보고, 광고를 봅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우리 안에 오래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갑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오늘날 인간이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된 결과 쓰레기 같은 정보 속에서 살아가지만 오히려 영혼은 더 가난해졌다고 말합니다. ‘영혼의 비만증’입니다. 많이 알지만 깊이 아는 것은 없고, 많이 보지만 제대로 본 것은 없습니다. 많이 듣지만 들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환경의 위기는 영성의 위기에서 기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조세계를 사랑하지 않게 된 이유는 창조세계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주의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꽃의 이름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풍경도 오래 바라봅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환경파괴는 결국 자연에 대한 무관심의 결과입니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이나 편리에 눈이 멀어 다른 피조물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외쳐도 그게 무슨 대수냐며 헛소리로 치부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늘은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나무도, 새들도, 들꽃도 선포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듣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무뎌져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시몬 베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압도하는 힘으로 다가오시지 않고, 들꽃 속에, 새들의 노래 속에 , 바람 속에 숨어 계신다고 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함께 걸으셨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안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와 계십니다. 창조세계 속에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바쁘고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놓치고 삽니다.
환경주일은 단순히 환경보호를 다짐하는 날이 아닙니다.
환경주일은 창조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그런 시각으로 창조세계를 바라보자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잃어버린 주의의 능력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꽃 한 송이 앞에 멈추는 날이고,
새들의 노래를 듣는 날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백합화를 생각해 보아라."
꽃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더 깊은 의미는 "주의 깊게 보고, 듣고, 사랑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종종 새벽예배를 마친 후 매봉산을 오릅니다.
지난 주 화요일 아침 매봉산을 오르는데 숲 사이로 막 아침 햇살이 스며듭니다. 그 깊은 숲에도 아침 햇살이 가장 먼저 찾아드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작은 오동나무 한 그루가 아침 햇살을 맞으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그곳을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아침 햇살이 그곳을 비추어 자라나게 하는 것일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니 아침 햇살이 그를 찾아온 것이라고.
나무가 햇살을 받겠다고 자라난 것이 아니라, 햇살이 비추니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겠지요.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은혜를 받겠다고 하지만, 사실 은혜는 임하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게 아침 햇살처럼 스며드는 것이고, 그 은혜의 빛 안에서 나는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겠다고, 성령 받겠다고 기이한 신앙생활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대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면 은혜의 빛은 자연스럽게 임할 것이라는 묵상입니다.
지난주에 레너드 코언의 ‘앤섬’이라는 노랫말을 소개해 드렸었습니다.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다. 빛은 바로 그 틈으로 들어온다.”
지금 보시는 꽃은 교회 벽, 금이 가 있는 틈 사이로 피어난 덩굴해란초입니다.
저는 이렇게 척박한 곳에서 피어난 꽃들을 보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악조건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꽃을 보며 나도 들꽃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저는 이런 꽃들을 보며 “저 들꽃처럼 살아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꽃에 얽힌 사연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한나회에서 인천 자유공원 쪽으로 나들이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덩굴해란초를 발견해서 저와 하나님 품에 안기신 김영희 권사님이 조금 채취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관리를 잘못해서 다 죽였고, 김영희 권사님은 잘 키우셔서 씨앗을 많이 거두셨습니다. 그 씨앗들을 얻어 교회 화분에 심었고 이제는 퍼져서 이제는 관리를 안 해도 교회주변 여기저기서 저절로 잘 자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 꽃을 볼 때마다 김영희 권사님을 떠올립니다.
이 꽃은 나비란입니다.
사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이 꽃은 돌아가신 저희 어머님이 옥상 텃밭에서 키우시던 꽃입니다. 제가 한남교회로 청빙을 받아오면서 이 꽃을 가져왔고, 지금은 많이 퍼트려서 화분 이곳저곳에서 꽃을 피웁니다. 긴 줄기에서 하얀 꽃이 피어 흔들릴 때면 나비가 날아가는 것 같고, 꽃이 너무 화사하지 않아서 좋아하지만, 저는 이 꽃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합니다.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어머니가 기대하시던 아들, 부끄럽지 않은 아들로 살아가는지 돌아봅니다. 사연이 있으면 같은 꽃도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숲속의 작은 오동나무처럼, 벽 틈에 피어난 작은 꽃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이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얻는 것입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꽃을 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세상을 주의하여 보라는 초대장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는가는 그 사람의 보물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돈이 보물인 사람은 돈만 보게 됩니다.
욕망이 보물인 사람은 욕망만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보물인 사람은 백합화 속에서도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간만이라도 잠시 바쁜 일상의 걸음을 멈추고 들꽃 하나를 오래 바라보시고, 하늘도 올려다보시고, 새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리고 "이미 그들 속에 와 계신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기도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 중에 우리는 우리가 구해야햘 진짜 보물이 무엇인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주시며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l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세상은 기후위기를 말하고, 사람들은 불안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만,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들에 핀 백합, 들풀 한 송이를 생각하는 중에 그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주님,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살아가느라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도 귀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소서.
욕망의 눈이 아니라 감사의 눈으로, 소비자의 눈이 아니라 청지기의 눈으로 창조세계를 바라보게 하소서.
들꽃 한 송이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시고, 하늘과 나무와 바람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참된 보물로 삼고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