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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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후 2주]빈틈 사이로 오시는 성령

  • 관리자
  • 2026-06-0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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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둘째 주일(20260607)
빈틈 사이로 오시는 성령
고린도후서 12:7-10


오늘 설교는 한 노래의 가사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캐나다의 시인이자 가수였던 Leonard Cohen은 그의 노래 ‘Anthem’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다. 빛은 바로 그 틈으로 들어온다.”

이 짧은 문장은 마치 한 편의 시 같고, 한 편의 설교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금이 간 것을 싫어하고, 깨진 것을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생긴 상처를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 간 자리를 감추며 살아갑니다. 괜찮은 척하고, 강한 척하고, 아무 일 없는 척합니다. 그런데 레너드 코언은 ‘빛은 갈라진 틈을 통해서 들어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성령의 빛을 생각합니다. 
성령의 빛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가 완벽해서 우리 안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갈라진 틈으로 임하는 것이지요.
 

■ 완벽주의라는 병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에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대충 하지 않으려는 마음,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세,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완벽주의’ 또는 ‘완벽강박’이라고 부릅니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 결과 자신에게도 가혹해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혹해집니다. 그 결과 늘 불안하고,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과 진보를 크게 신뢰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 역시 인간 안에 있는 가능성과 도덕적 발전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생각보다 훨씬 연약하고 모순된 존재임을 드러냈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흙으로 빚어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아름답지만 연약하고, 가능성이 있지만 한계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완벽해지는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성령이 일하십니다.
 

■ 바울의 빈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가시’ 이야기를 합니다.
그 가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정신적 고통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의 아픔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바울에게도 빈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의 절반 가까이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한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이방선교의 물꼬를 튼 바울이 없었더라면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외모나 언변은 별로였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은 출신이나 학식이나 삶의 태도, 로마제국의 시민권까지 자랑거리가 많은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
 

■ 약함을 자랑하는 바울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내 은혜가’ 즉,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바울에게입니다. 다음에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는 말씀은 새한글번역에 따르면 ‘내 능력’ 즉,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것 속에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다”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에게 임하는 이유는 바울의 ‘육신의 가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빈틈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왔고, 빈틈으로 들어온 은혜를 통해서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약함을 숨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입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약함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가시를 축복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시 속에 머물러 계신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의 위대한 신앙입니다.
 

■ 복음의 역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음이 좋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성령이 충만하면 아프지도 않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의 진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강한 데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약한 데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우리는 평생 자신의 빈틈을 메우며 살아갑니다. 더 많이 배우려고 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인정받으려 하고, 더 완벽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깨닫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인간은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오랫동안 믿었지만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부족합니다.

나무를 보면 상처 입은 자리에 생긴 옹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무에서 가장 단단한 곳이 옹이고, 나무의 향도 그곳이 가장 깊습니다. 상처가 약점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힘이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과한 사람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독일의 바이올린 제작의 명장인 Martin Schleske는 “좋은 울림은 완벽한 나무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수목한계선에서 오랜 세월 바람을 맞고, 상처를 견디고, 추위와 더위를 통과한 나무가 바이올린의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고 말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온갖 악조건 속에서 작고 못생기고 상처 입은 나무가 가장 좋은 울림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물 흘려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해합니다. 고통을 통과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품습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매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성령강림도 그렇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된 영웅들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도망갔던 사람들입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성령은 완벽한 사람에게 주시는 상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 빈틈으로 사이로 오시는 성령


기도조차 할 수 없고, 말도 나오지 않고, 눈물만 흐르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 대신 성령께서 탄식하시며 기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좋은 것이지만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문제 앞에서 힘겨워할 때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의 가시를 제거해 주신 것이 아니라, 바울과 함께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문제없는 삶보다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백을 둔 삶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저는 이것이 성령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빈틈을 비난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빈틈을 통해 들어오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상처를 비난하지 않으시고, 함께 아파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우십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레너드 코언의 노래를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금(crack)이 있다. 성령은 바로 그 틈으로 들어오신다.”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벽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상처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마음에 금이 가 있습니까?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까? 기도해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습니까? 그 빈틈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바울의 가시가 은혜의 통로가 되었듯이, 옹이가 나무를 단단하게 하듯이, 균열이 빛의 통로가 되듯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빈틈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은혜란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니라, 문제가 있음에도 여전히 살아갈 힘이 남아 있는 것이고, 상처가 없는 삶이 아니라 상처가 있어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고,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란 내 힘을 넘어 하나님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백이 있는 사람, 은혜가 들어올 틈이 있는 사람, 성령이 머물 자리가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빈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여백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그 은혜를 누리며 사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


■ 거둠 기도

은혜의 하나님,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되려 애쓰며 살아왔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빈틈과 연약함 속에도 주님의 은혜가 머물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부족함을 감추려 하기보다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에도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며 도우시는 성령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 삶의 여백 속에 주님의 평안과 위로가 머물게 하옵소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신 말씀을 붙들고 한 주간도 주님의 힘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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