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주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요한복음 4:19-24
오늘 본문은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대로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 갈라선 이후 그리심산에서 따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늘 마음 한구석에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드리는 예배가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일까?”
그녀의 질문은 단순히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내 예배를 받으시는가?”
그 갈망이 담긴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놀라웠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냐 그리심산이냐의 문제를 넘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예수님은 예배의 본질이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인간의 마음과 존재에 있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예배의 형식과 질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예배의 외형보다 더 깊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단순히 특정 장소에 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신학자 Karl Barth는 예배를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또 Harvey Cox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감각 중 하나를 “축제의 감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나머지 거룩과 초월의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잃어버린 거룩의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단순한 종교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요, 거룩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살아보는 일입니다.
예배는 “문지방을 넘는 일”입니다.
문지방은 단순한 경계선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문지방은 서로 다른 세계를 나누는 상징이었습니다.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문지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이라는 문지방을 넘어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 세상은 거룩의 세계, 성의 세계이며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속(俗)에서 성(聖)으로 들어가는 사건”입니다.
신학자들은 그래서 예배를 “거룩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남교회는 예배 전에 촛불을 켭니다.
그것은 단순히 분위기를 위한 장식이 아닙니다. 촛불은 상징입니다. “이제 예배가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는 세속의 세상에서 거룩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촛불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세속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지방을 넘었지만, 여전히 세상에 붙들려 있다면 촛불을 켜는 순간 거룩한 예배 앞에 서기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그때 예배는 장소의 이동을 넘어 존재의 이동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됩니다.
세속의 사람으로 들어왔다가 하나님 앞에 선 거룩한 존재로 변화되는 시작, 그것이 바로 촛불을 밝히는 순간입니다.
이번 주부터는 등단할 때 켜지 않고 성가대의 입례송이 시작될 때 점화를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 밝히는 것을 보시면서 “이제 세속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고백하십시오.
성가대 가운, 기도자 가운, 인도자 가운은 단순한 형식이 아닙니다.
원래 예복은 자신을 드러내는 옷이 아니라 자기를 감추는 옷이었습니다.
“오직 주님만 영광받으소서.”
그 고백의 상징입니다.
물론 형식 자체를 절대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운을 입는다고 모두 거룩한 것도 아니고, 어떤 경우에는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배는 사람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리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남교회는 지금도 가운을 입습니다.
■ 모임 예전 — 우리는 누구 앞에 서 있는가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예배의 부름”으로 시작됩니다.
찬양도 단순히 분위기를 만드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첫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 앞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이 사라지면 예배는 자기만족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은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해도 우상을 숭배하는 예배가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기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기도를 드립니다.
회개는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회개만 말하지 않습니다. 용서를 선포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죄책감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다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예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대표기도는 개인기도가 아닙니다.
교회와 세상, 병든 사람들, 눈물 흘리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중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표기도가 습관처럼 반복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길다고 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 있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배 중에 드려지는 예식이므로 미리 기도문을 작성해서 2-3분 정도 간략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증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가장 위험한 유혹 중 하나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재미”가 되는 것입니다. 웃기고, 귀에 잘 들어오고,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설교. 그러나 예배의 설교는 강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픈 말씀이어야 합니다.
예언자들의 말씀은 늘 불편했습니다.
만약 예레미야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했다면 그는 핍박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교자는 자기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먼저 무릎 꿇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관람이 아닙니다.
함께 일어서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응답하고, 고백하고, 헌금하는 모든 행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관객이 아니라 참여자입니다. 특별히 예배에는 반드시 “드림”이 있습니다. 구약의 예배에는 언제나 제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 상징이 바로 헌금입니다. 한남교회는 예배 전에 예물을 드립니다. “하나님,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 고백입니다. 헌금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두 렙돈을 가장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 안에 삶과 믿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여러 모임 중에서도 헌금이 없는 모임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배라기보다 집회나 무슨무슨 모임라는 이름을 붙여야합니다. 수요성경공부, 오후찬양집회, 새벽기도회....
찬양도 드림이고, 기도도 드림이고, 헌금도 드림이고, 결단도 드림입니다.
결국 예배란 “하나님, 나 자신을 드립니다.” 라는 가장 깊은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도를 예배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축도는 예배의 절정입니다.
축도는 “예배가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제 세상 속으로 살아가라”는 파송입니다.
촛불이 꺼지는 순간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번 주부터는 축도가 끝나면 잠시 파송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예배실을 나서기 바랍니다.
제가 촛불을 끄고 나가서 인사할 수 있도록.|
예배를 제대로 드리고 나면 예배 이전의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소설가 이승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를 마친 후에는 글을 쓰기 이전의 자신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말은 독서에도 적용됩니다. 깊이 읽은 사람은 읽기 이전의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진짜 책은 인간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하게 예배한 사람은 예배 이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보았고,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보았으며, 용서를 경험했고, 말씀 앞에서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는 단순한 종교행사가 아니라 존재를 변화시키는 시간입니다. 예배시간에 우리는 거룩한 세계를 경험한 후에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 세상 속에서 이전과 똑같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새로워진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돌아간다고 예배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삶 속에서 예배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임마누엘로 지켜주실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주님,
우리 한남교회가 매주일 드리는 예배가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거듭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그 힘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며 안식하라 하신 이날,
주님의 피로 세워주신 교회에서 안식하며 쉼을 얻게 하옵소서.
이 교회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