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0 어버이주일
시간의 결, 사랑의 흔적
어버이가 되어간다는 것
출애굽기 20:12, 에베소서 6: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이 날이 되면 제 마음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릴 적, 잠자리에 든 제 손을 붙잡고 기도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조용히, 때로는 눈물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던 어머니, 풀 때가 까맣게 낀 거친 손. 어머니의 손이 얼마나 거칠었는가하면 등이 가려울 때 어머니의 손바닥이 한 번 슥 지나가면 거친 사포가 지나간 듯 시원할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기도하시는지, 왜 그렇게 간절하신지. 어린 마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기도는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하면 대충 살거나 비뚜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의도치 않게 옆 동네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다 큰 사고를 쳤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이 50만 원 정도할 때인데, 제가 사고 친 금액이 그만큼이었습니다. 위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했을 때 가늠하셨겠지만, 저희 집은 그 정도의 현금을 쟁여놓고 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는 없으니 아버지에게 단단히 혼나고 맞을 각오를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절부절못하는 저를 보시더니 짧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맨날 조용해서 계집애 같다고 걱정했더니만 사내는 사내군.”하시는 겁니다. 그동안 기타를 사달라고 하면 딴따라 되려하느냐, 미술학원 보내 달라 하면 환쟁이할거냐 하시고, 어찌어찌 돈을 모아 기타를 사오면 그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부서져서 아궁이 속에 있었습니다. 너무 엄격하셔서 가까이 하기 쉽지 않았고, 아버지에 대한 정도 별도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아버님이 저를 보고 웃었던 기억은 딱 한 번,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엄하던 아버님이 걱정 말라며 치료비 50만 원을 선뜻 내주셨습니다. 그 때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했고, 어머님과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두 분을 실망시키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물론, 내 생각대로 삶이 살아지진 않았지만.
어버이는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기도하지만 자녀의 삶을 품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기도하지만 긴긴밤을 함께 지나주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해주는 사람입니다.
자녀는 말로 배우기보다 삶으로 배우게 됩니다.
어버이가 믿는 하나님을 설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애굽기 20:12)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이렇게 풀어줍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2-3)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명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삶의 질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부모님들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자녀가 공경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믿음을 말로 가르치기 전에 그 믿음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자녀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따뜻하게 느끼고 있는가?
어머니의 기도처럼, 아버지의 한마디처럼, 설명하지 않아도 가슴에 남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사랑하는 부모님 여러분,
어버이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로 붙잡고, 품으로 기다리고, 함께 걸어주는 사람입니다.
이제 자녀들에게 묻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완벽하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흔들리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흘린 눈물과, 묵묵히 견뎌낸 시간들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랑의 흔적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길이 “잘되고 장수하는 길”이라고.
■ 노년의 시간
저는 이미 어머니와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렸습니다.
지금은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계시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이런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효도는 살아계실 때만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님이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기억이 흐려지기 시작하면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귀찮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노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단순한 시간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든 때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노년은 때로 슬프고, 우울하고, 외로운 시간입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예전에는 쉽게 하던 일들이 어려워지고, 그것만으로도 답답한데 그로 인해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실수로 인해 꾸지람을 듣게 되면 그 마음은 깊이 무너집니다. 그 모습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가 프랑스에 갔을 때 노인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분들은 그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존엄하게 살아가고 계시는구나.”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은 매일, 자신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노년은 돌봄의 대상이기 이전에 존중의 대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을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잘 모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그분들이 마지막까지 존엄을 잃지 않도록 지켜드리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단정히 하고, 자신의 삶을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켜드리는 것, 그것이 공경입니다. 부모의 연약함을 참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이해해주는 것, 그 삶의 무게를 존중해주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경입니다. 어쩌면 부모를 공경하는 가장 깊은 모습은 무엇을 해드리는 것 이전에, 그분들이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서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혈육의 어버이를 넘어

여러분,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넓혀보았으면 합니다.
어버이는 혈육으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말없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던 사람, 힘들 때 곁을 지켜주던 사람,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은 보이는 사랑보다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더 많이 지탱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이름 없이 살아가는 그림자 같은 어버이들입니다.
여러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혈육에 대한 계명을 넘어 나를 살게 하는 존재들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누군가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누군가의 헌신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사랑을 알아보는 삶, 그것이 계명을 살아내는 삶입니다.
■ 어버이 또는 자녀로서의 삶

어버이는 이름이 아니라 삶입니다.
어버이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품는 사람이며, 함께 걸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버이 아래에서 자란 자녀는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공경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삶, 땅에서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삶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에게 조용히 물어봅니다.
나는 지금 어버이가 되어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공경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기도하는 어버이로, 그리고 공경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거둠 기도
주님,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을 기도로 품게 하시고, 사랑으로 함께 걷게 하소서.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사랑까지 알아보는 깊은 눈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