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2026년 3월 29일)
예수님의 마음을 품자
빌립보서 2:5~11
[시편 31:9-16, 이사야 50:4-9. 마태 27:11-54]
종려주일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이 종려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외쳤던 그 날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종려 가지를 흔들며 기뻐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세상 속에 서 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폭격으로 무너진 도시 위에 연기와 먼지가 하늘을 덮고 있습니다.
예배에 나온 우리의 마음에도 저마다의 전쟁이 있습니다.
몸의 병으로 싸우는 사람도 있고, 관계의 아픔 속에서 싸우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무너져도 버티는 사람도 있고, 앞날이 보이지 않아 두려움 속에 서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누구나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지금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가?”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아주 짧지만 깊은 한 마디를 건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오늘 우리는 종려주일의 예배 자리에서 이 말씀 앞에 서려고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질문 앞에 조용히 서 보려고 합니다.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기록한 이른바 ‘옥중서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유럽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시작은 아주 작았습니다. 처음 교인이 된 사람은 자주 옷감을 팔던 여인 루디아였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던 중에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일을 보고 놀라 회심한 간수도 빌립보 교회의 초기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회는 큰 교회도 아니었고, 화려한 교회도 아니었지만, 바울과 가장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었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바울이 선교할 때마다 헌금을 보내 도왔고,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멀리서 헌금을 보내 바울을 돌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헌금에도 기꺼이 참여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는 다른 서신들과 달리 책망보다 감사가 많고, 교리보다 사랑이 많이 담긴 서신입니다. 그러나 그런 빌립보 교회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대주의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이 들어오면서 교회 안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고, 서로 다투고 마음이 갈라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 소식을 듣고 편지를 써서 갈등과 다툼을 해결할 방법을 전합니다.
바울은 교회의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논리로 이기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물론 마음먹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먹는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는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는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너무 가볍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참 많습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같은 고난을 겪어도 어떤 마음으로 견디느냐에 따라 사람이 무너지기도 하고, 오히려 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분노를 품으면 세상이 원수처럼 보이고, 두려움을 품으면 모든 것이 위협처럼 보이고, 욕심을 품으면 만족이 사라지고, 미움을 품으면 마음이 점점 좁아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행동보다 먼저 마음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잠언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기분을 좋게 유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여기서 “품으라”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φρονεῖτε (프로네이테)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 사전을 보면 이 단어에는
‘느끼다, 생각하다, 마음을 두다, 전념하다, 몰두하다, 뜻을 같이하다, 마음을 기울이다, 태도를 가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한 말은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처럼 느끼고 생각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힘쓰고, 깨달았다면 그 뜻대로 살아가십시오.
다르게 말하면, 이런 질문을 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어떤 마음을 품으실까?”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전념을 다하는 것, 그것이 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니셨던 마음, 예수님이 선택하셨던 태도, 예수님이 품고 사셨던 심성은 우리도 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품고 사는 것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품어야할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우리에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전해줍니다. 그 마음은 첫째로, 낮아지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여기서 “비우셨다”는 말은 케노시스(κένωσις)인데, 이 말은 자동사로 스스로 비우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범죄자에게만 내리는 형벌이었고, 저주받은 죽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이 그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높아지려고 해서 높아진 길이 아니라, 비웠고, 낮아졌기 때문에 높아진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케노시스, 겸손한 삶을 사십시오. 자기를 낮추십시오.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삶을 사십시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높아지심을 말한 이유는 단순히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하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려 하고, 자기를 옳다고 내세우는 마음이 교회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자신을 낮추고,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께 순종했던 그 마음을 품으라.”
이제 우리는 고난주간으로 들어갑니다. 부활의 영광만 바라보지 말고,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며 이 한 주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높아지려 하지 말고, 낮아지기를 배우고, 이기려 하지 말고, 사랑하기를 배우고, 내 뜻을 이루려 하기 보다 주님의 뜻에 마음을 맞추며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높여주시고, 붙드시고,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거둠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종려주일의 예배로 우리를 불러 주시고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전쟁과 폭력 속에 흔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포화 속에서 울부짖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시며, 눈물로 밤을 보내는 이들에게 임마누엘의 은혜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에도 저마다의 전쟁이 있습니다.
몸의 연약함과 싸우는 이들이 있고,
관계의 아픔 속에서 흔들리는 이들이 있고,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움 속에 서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 마음을 살피게 하시고 우리가 무엇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자기를 비우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이기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내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의 뜻에 마음을 두고, 주님의 길에 마음을 기울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제 고난주간으로 들어갑니다.
부활의 영광만 바라보는 신앙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신앙을 살게 하시고,
묵묵히 낮아지신 주님을 바라보며
겸손과 순종의 마음을 배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