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다섯째주일(20260322)
생기를 일으키는 삶
에스겔 37:1~14
■ 에스겔서의 역사적 배경
사순절 다섯째 주일 구약 성서일과 에스겔서는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파괴되어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언제 다시 회복될지 모를 암울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B.C 1580년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이스라엘은 다시 천 년 전 즈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B.C 1446년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생활 40년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사시대를 거쳐 초대왕 사울을 시작으로 왕정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때가 B.C 1050년 경입니다. 이후, 다윗과 솔로몬과 그의 아들에게 왕위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남북으로 분열되고(B.C.931) 북왕국 이스라엘은 분된 후 200여년 뒤인 B.C.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됩니다. 그리고 남왕국 유다도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136년이 지난 후인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파괴당하고, 포로기의 삶을 살아갑니다.
년도가 복잡하죠?
여러분은 이스라엘 역사의 큰 흐름만 보시면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에는 복을 받고, 반역하면 심판을 받고, 회개하면 다시 용서해 주시고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나 또다시 반역하고, 심판받고, 회개하고 회복됩니다. 시간의 차이가 좀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참 미련한 것 같지만,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들 역시도 그렇지요.
■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
예언서는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나눕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전기 예언서에 속합니다.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후기예언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와 12소선지서입니다. 멸망하기 직전과 멸망한 후에 전한 메시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스겔서는 후기예언서 세 번째 책입니다. 예언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이었습니다. 어떤 현상들 때문에 멸망할 것이고, 다시 회복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니 소망의 줄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예언자들의 예언 주제는 ‘멸망과 회복’이었는데, 이제 B.C.586년 이후에는 모두 멸망했으니 ‘소망(회복)의 메시지’ 하나만 남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기 예언서의 주제는 ‘죽음과 재탄생(회복)’입니다.
■ 마른 뼈들의 환상
이런 맥락에서 ‘마른 뼈들의 환상’이 이스라엘에게 주는 메시지는 너무도 분명한 것입니다.
지금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해, 예루살렘 성전까지도 다 훼파되고 아무런 희망 없이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자로 읽고, 흩어져 있던 마른 뼈들이 모여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고, 살아 움직여 군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면 SF영화가 되는 것입니다. 사교집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SF영화보듯이 합니다. 사이비단체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수많은 상징의 언어도 ‘문자’로 바꿔버렸습니다. ‘666’이나 ‘144,000’이나 ‘붉은 용’ 등등의 싱징언어를 자기들 편한 대로 해석하고 SF소설을 써서 악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할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징언어’이므로 그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모세의 율법’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 예언자의 아픔
에스겔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후 5년째가 되던 어느 날, 그발 강가에서 환상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본 환상을 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이한 ‘퍼포먼스’를 통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벌거벗고 묶인 채로 누어있는 행동이라든지, 집의 벽에 구멍을 뚫고,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슬퍼하지 않고, 토판을 만들어 모래놀이를 하고, 음식을 쇠똥으로 요리하고 떨면서 먹고 마시고....’
일상의 평온함이 깨어진 상태에 직면한 이스라엘의 삶은 정상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기행적인 행동을 하는 에스겔처럼, 산만하고 기괴한 행동을 하는 에스겔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전하시며, “너희가 다시 회복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행동은 미친 사람의 행동처럼 보였을 것이고, 에스겔의 예언을 들은 이들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늘 그렇습니다. 예언자들의 말은 종종 시대를 거스르는 말이기도 해서 비웃음을 삽니다.
■ 성서 일과의 공통주제
사순절 다섯째주일 성서일과의 주제는 분명합니다.
시가서 시편 130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참회의 노래’에 속하는데, 성전에 올라갈 때에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올라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며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깊은 곳(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사망의 길)’에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1).”
그러자 인생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속량해 주시고 ‘깊은 곳’에서 구원해 주시니, 오직 여호와를 바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서신서 로마서 8장 6~11절의 말씀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대비시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영을 품고 살아가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서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내용’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후 “나사로야, 나오너라!”하는 말씀으로 무덤에서 죽은 자로 있는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성서일과는 모두 ‘죽음과 생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골짜기에 흩어진 마른 뼈와 같은 상황, 깊은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는 상황, 육신의 생각에 빠져있는 상황, 죽어 무덤에 누워있는 나사로와도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생기가 들어오니 마른 뼈가 살아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만 바라보니 인생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영에 거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니 무덤 속에 누워있던 나사로가 살아납니다.
■ 예언의 말씀이 주는 희망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가는 지구촌은 마치 ‘생기를 잃어버린 마른 뼈’와 같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 같습니다. 무덤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간 결과인 것 같아 참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의 성서일과를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십니다.
마른 뼈가 생기를 얻을 것이며, 깊은 곳에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바라는 이들이 새롭게 될 것이며, 나사로처럼 무덤에 거하는 자가 살아날 것이며, 육신의 생각에 빠져 살아가던 이들이 그리스도의 영을 품고 살아갈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희망의 메시지가 우리의 현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면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 예언이 성취되려면
첫째, 에스겔서 37장 9~10절입니다.
“인자야,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이에 내가 그의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둘째, 시편 130편 1, 7절입니다.
“내가 깊은 곳에서 부르짖었나이다...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셋째, 로마서 8장 9절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넷째, 요한복음 11장 39, 41절 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돌을 옮겨 놓으니”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대언, 부르짖음, 바라봄, 생각, 돌을 옮겨놓는 일, 이것은 모두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셔서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결단을 요구하시고, 인간의 응답이 없는 곳에 임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기야, 사방으로부터 불어오라!” 간절히 외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그동안 육신의 생각에 빠져서 무덤에 갇힌 삶, 깊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과 같이 살아가던 삶을 회개하십시오. 이때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다시 성전으로 올라오게 하실 것입니다. 함께 주님의 전에 나와 함께 예배할 날을 고대하며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며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속량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회복의 시간에 우리 개인의 삶도 회복되길 바랍니다. 우리 가정도 회복되고, 교회도, 이 나라도 회복되길 기도하십시오. 위기는 기회요,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게 경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마른 뼈가 생기를 얻듯이, 우리의 모든 삶에도 생기가 불어오길 기도하면서 한 주간도 평안이 지내시길 바랍니다.
[거둠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육신의 생각에 빠져 살아왔음을 회개합니다.
마른 뼈가 되어 깊은 골짜기에서, 무덤에 누워있는 듯한 상황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오나, 주님 이 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희망을 바라보자 합니다. “생기야, 사방으로부터 불어오라!” 이 말씀으로 오늘을 이겨내게 하옵소서. 전쟁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속히 응답되기를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