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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4주] 눈뜬 사람, 눈먼 사람

  • 관리자
  • 2026-03-1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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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4주(2026년 3월 15일)
눈뜬 사람, 눈먼 사람
요한복음 9:35–41
(시편 23, 삼상 16:1-13, 엡 5:8-14)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중동의 하늘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폭격으로 석유 시설이 불타면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그 연기가 비와 섞여 검은 비가 되어 내린다고 합니다. 석유시설이 파괴될 때 내리는 검은 비는 단순한 대기 오염이 아닙니다. 그 비는 땅을 오염시키고 물을 더럽히며 생태계를 병들게 합니다. 토양과 강과 바다,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들까지 상처를 입습니다.

전쟁은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땅과 물과 공기까지 병들게 합니다. 인간의 눈먼 욕망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전체를 상처 입히고 있습니다. 도시들은 폐허가 되고 사람들은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오릅니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은 늘 자신들이 옳다고 말합니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말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쟁의 현장에서 무너지는 것은 대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약자들의 삶입니다. 아이들의 울음과 어머니의 눈물, 집을 잃은 사람들의 절망입니다.

우리는 이 전쟁을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시작된 전쟁은 세계의 경제와 정치와 환경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전쟁을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폭력이 아니라 평화가 승리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힘이 아니라 정의가 승리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눈이 열리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늘 눈먼 사람들이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 전쟁광 보호구역


시인 반칠환은 「전쟁광 보호구역」이라는 시에서 전쟁을 이렇게 풍자합니다.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
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들이 사는 마을
......
우타타타 해바라기씨 폭탄을 투하하고
민들레, 박주가리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면 온 마을이
어쩔 수 없이 노랗게 꽃 피는 전쟁터”

시 속의 전쟁은 어딘가 우스꽝스럽습니다.
진흙으로 만든 대포와 도토리 대포알, 해바라기씨 폭탄과 민들레 낙하산 부대….
차라리 그런 전쟁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의 전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폭탄이 떨어지고 진짜 사람이 죽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차라리 전쟁광들이 모여 사는 작은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저도 시인의 꿈에 한 표를 던집니다.
 

■ 요한복음 9장


오늘 요한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본다고 하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시력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영적인 눈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뜹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는 이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빛을 보게 되었고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세상의 다양한 색깔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 기적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눈을 뜬 사람은 한 사람이었지만 눈이 멀어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은 맹인이었지만 예수님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바리새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열심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보고 있다고 확신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뜬 사람을 불러 심문합니다. 부모까지 불러 심문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람을 회당에서 쫓아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확신을 흔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눈멀음은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본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먼 사람의 비극은 자기가 눈먼 줄 모르는 것입니다.
 

■ 사무엘상 16장


사람들은 자기가 제대로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사무엘상 16장에서 사무엘은 새로운 왕을 찾기 위해 이새의 집으로 갑니다. 사무엘은 키가 크고 잘생긴 형들을 보며 이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막내 아들 다윗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은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요한복음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은 잘 알고 있었지만, 중심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제대로 보고 있다고 확신하기 시작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게 됩니다. 자기 생각을 의심하지 않게 되고 자기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닫아 버립니다. 그 순간 사람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말을 하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기의 옳음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선의 시작입니다. 위선은 처음부터 거짓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보다 바리새인들에게 더 엄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자기가 눈먼 줄 알지만 바리새인은 자기가 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먼 사람의 비극은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눈먼 줄 모르는 것입니다.
 

■ 에베소서 5장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그리고 이렇게 권면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십시오.”
빛의 삶은 지식을 많이 아는 삶이 아닙니다. 빛의 삶은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눈뜬 사람은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눈뜬 사람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
눈뜬 사람은 힘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눈뜬 사람은 사람을 봅니다. 눈먼 사람은 승리를 말하지만 눈뜬 사람은 생명을 말합니다. 눈먼 사람은 힘을 의지하지만 눈뜬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 시편 23편


그래서 눈뜬 사람의 삶은 시편 23편의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눈뜬 사람은 자기 힘으로 길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목자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푸른 초장으로 쉴 만한 물가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눈뜬 사람의 삶은 두려움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나는 눈뜬 사람인가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이 있습니다. 폭력과 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빛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사순절은 우리에게 묻는 시간입니다. 나는 지금 눈뜬 사람인가, 눈먼 사람인가.
눈뜬 사람은 자기가 다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눈뜬 사람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목자의 인도하심을 따라 빛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 삶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삶입니다. 어두운 시대, 눈뜬 사람은 괴롭습니다. 하지만, 눈이 멀어 “좋다 좋다!”하는 것보다 복 있는 삶입니다. 사순절의 길 위에서 눈이 열린 사람으로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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