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8일(주현 후 다섯째 주일)
참된 금식, 참된 예배
시편 112:1-9, 고린도전서 2:1-12, 마태복음 5:13-20
이사야 58:1~9
오늘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에게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봄입니다.
‘설립에 봄 춘, 얼었던 땅에서 매일매일 생명들이 솟아나와 당당하게 서는 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봄입니다. 영어로 ‘spring’은 ‘튀어 오르다’입니다. 같은 어원에서 나온 ‘sprint’라는 단어는 육상이나 수영 경기 종목 중 단거리 경주인데, 선수들이 준비하고 있다가 출발신호에 일제히 뛰어나갑니다.
봄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깊은 겨울인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꽃의 행렬, 연록의 행렬이 펼쳐지고 봄을 느낄 겨를도 없이 여름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분들과 가정마다 ‘입춘대길’의 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지난주 우리는 예배를 통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삶 자체가 이미 복이라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복은 무엇을 더 받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느냐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이 시편 1편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비웃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물질적인 것을 채워짐으로 얻어지는 복이 아니라, 삶의 자세와 태도 자체가 복이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마침내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복을 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지점, ‘무엇을 받아서’ 혹은 ‘무엇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자세’ 자체가 복임을 아는 것이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은 미래적인 삶과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라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듯이 미래에 해당하는 ‘하늘의 뜻’은 현재, 지금 여기에 해당하는 ‘땅’에서도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선각자들이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공통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산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지금 여기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음’, ‘나중’, ‘더 나은 조건’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일예배가 있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임도 말씀드렸습니다. 주일 예배와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가 되어야 제대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주일예배는 열심인데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없거나, 삶으로 예배한다면서 주일예배를 소홀히 여긴다면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제대로 드리는 사람은 주일예배의 중요성을 알고, 주일예배를 제대로 드리는 사람은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러니 사실 두 가지 예배가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예배는 하나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매일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주일 혹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신앙인으로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서 58장의 역사적인 배경은 바벨론 포로지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새로 짓고 나라를 새롭게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전해진 말씀입니다.
그들의 희망대로 이스라엘은 포로지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삶은 기쁘지도 않았고, 형통하지도 않았고, 괴로움과 고단함과 불안의 연속입니다. 자신들을 지배하던 제국주의 열강이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바뀌었을 뿐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항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금식을 해도 왜 돌아보시지도 않고,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알아주지 않으십니까?(사 58,13)”
조국 유다가 멸망당하고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갈 때에 바벨론 강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얼마나 많은 회개의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리고 폐허가 된 조국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를 다시 드리면서 그들은 이전처럼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본문 2절의 말씀대로 ‘날마다 하나님을 찾아와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길 알기를 즐거워하고, 의로운 판단을 하나님께서 해주시길 구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3절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이런 것에 ‘금식’까지도 병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상들처럼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외형적으로는 온전한 신앙을 회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노력이 가상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너희가 나를 부를 때, 너희가 부르짖을 때 내가 여기 있다고 할 터이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을 해라.”
이번 주일 성서일과 이사야서 58장 1~9절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라는 제목이 붙은 말씀입니다. 지난주 말씀과 연결시켜 본다면,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포로지에서 돌아온 이들은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알맹이가 빠진 신앙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말씀을 배우고, 예배하고, 금식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신앙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닮은 삶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열심인데, 삶에서는 여전히 누군가를 짓누르고, 외면하고,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인 착각입니다.
요즘 말로 바꿔 말하면, 주일 성수 잘하고, 헌금 잘하고, 성경공부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믿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 좀 도와주세요!” 하는데, “아니다, 그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이 아니다. 겉모습만 그럴 듯한 껍데기 신앙이다. 제대로 해라. 그러면 네가 부를 때 응답하고, 네가 부르짖을 때 내가 여기에 있다고 할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불의한 사슬을 끊어내고, 일터에서 착취를 없애고, 압제 받는 자를 구해주고, 굶주린 자들과 음식을 나누고,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고, 헐벗어 추위에 떠는 이들을 돕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혈육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다.”
참된 금식은 무엇을 하지 않거나 곡기를 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이 땅에서 가장 먼저 보시는 사람 곁으로 가는 것입니다. 참된 금식은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참된 금식은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증거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멀리서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부르짖기 전에 이미 “여기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주일예배와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올해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시어 온전한 예배자로 서시길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우리가 부르짖기 전에 이미 “여기 있다”라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거둠 기도]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예배가 겉만 그럴듯한 예배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껍데기 신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게 하시고, 또한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의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