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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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4주] 예배하는 자들이 받는 복

  • 관리자
  • 2026-02-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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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일(주현 후 넷째 주일)
예배하는 자들이 받는 복 
제목을 누르시면 예배실황 ppt 메시지를 들을 실수 있습니다.
시편 15, 미가 6:1-8, 고전 1:18-31, 마태 5: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요즘 예배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늘어났다는 사실보다, 예배가 삶의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코로나 이후 예배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제는 주일예배가 ‘되면 드리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거나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향하면 되는 것’ 정도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예배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 주일 성수는 고리타분한 교리일까?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주일성수를 말해야 합니까?”
“교회에 안가도 마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마음만 있고,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주일예배는 단순히 ‘안식일을 지키라는 규정을 반복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얽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주일예배를 이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예배는 영혼의 거울을 닦는 시간입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공동체 없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예배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단지 교회에 나오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 거울을 닦듯이- 정견


거울은 한 번 닦아두면 끝이 아닙니다. 자주 닦아야,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하지 않으면 우리 영혼의 거울에는 먼지가 쌓입니다. 
영혼의 거울이 흐려지면 무엇이 보이지 않습니까? 
내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삶의 방향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몬 베유는 인간의 불행이 ‘보지 못함’이 아니라 ‘잘못 봄’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예배는 우리 삶을 바꾸기 전에, 먼저 우리의 시선을 바로잡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정견(正見)’, 곧 “바로 봄”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보아야 깨닫고, 깨달아야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잃어버리면, 신앙이 흐려지고 삶의 기준도 함께 흐려지는 것입니다.


▪ 복이란?


우리는 새해마다 이렇게 인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서구에서는 “God bless you.— 하나님의 은총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이라고 합니다.
한자 ‘복(福)’을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제단 앞에서, 가득 찬 술 항아리를 신에게 붓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동양적인 관점에서 복이란, 무언가를 받는 모습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곧,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행위 자체가 복이라는 뜻입니다. 

발터 브루그만은 성경의 복을 ‘소유의 증가’가 아니라 ‘관계의 깊어짐’으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무는 그 자체로 복이 됩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팔복의 전제조건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의 핵심, 팔복입니다.
우리는 팔복을 흔히 이렇게 읽습니다. “이렇게 살면, 이런 복을 받는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조금 다릅니다. 팔복은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복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을 연구한
울리히 루츠는 팔복을 ‘이상적인 인간상을 요구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을 향한 선언’이라고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애통하는 사람/온유한 사람/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긍휼히 여기는 사람/마음이 청결한 사람/화평하게 하는 사람/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 이 삶 자체가 이미 예배의 삶이요, 복 있는 삶입니다.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예배의 삶 위에 천국과 위로와 배부름과 하나님의 나라를 겹겹이 더해 주십니다. 그러니 팔복은 사실 여덟 가지 복이 아니라, 열다섯 가지 복입니다. 천국이 처음과 끝에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 正見


이런 유아기적인 신앙에 머물러있지 않으려면 ‘正見’이 필요한 겁니다. 
정견을 위해서 우리의 영혼을 비추어줄 거울이 필요한 것이고, 거울을 닦는 일이 바로 주일성수이니 우리가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거울에 나를 비춰보아야 비로소 내가 보입니다. 거울이 깨끗해야 죄인인 나도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나도 보입니다. 그래야 아무 공로 없어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도 보입니다. 이것을 알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자체가 ‘복’임을 알게 됩니다. 

헨리 나우웬은 예배를 “하나님 앞에서 가면을 벗는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죄인인 나도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 안에 있는 나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갑골문자 ‘복’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바대로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복이고, 그 복을 누리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 예배를 회복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배를 회복하라.” “예배공동체를 회복하라.”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서로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예배는 무너집니다. 주일예배는 우리의 영혼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자리이고, 삶의 예배는 그 은혜를 세상 속에서 살아내는 자리입니다. 이 두 예배가 다시 만날 때, 교회는 회복되고 신앙은 깊어지고 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알렉산더 슈메만 (Alexander Schmemann)은 예배를 “세상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입니다.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은혜이며, 예배는 짐이 아니라 복입니다.
예배 안에서 우리는 다시 보고, 다시 정렬되고, 다시 세상으로 파송됩니다.
오늘 이 예배가 우리의 삶을 다시 세우고, 우리 공동체를 다시 살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는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 거둠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예배 가운데 우리를 다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흐려졌던 우리의 시선을 닦아 주시고, 예배가 의무가 아니라 은혜요, 짐이 아니라 복임을 다시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예배가 여기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삶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주일에 드린 예배가 한 주의 선택이 되게 하시고, 말과 관계와 삶의 자리마다 주님의 나라가 드러나게 하소서. 이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되, 예배 없는 삶으로가 아니라 예배로 살아가는 삶으로 보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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