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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 주님께서 세워주시는 삶

  • 관리자
  • 2025-12-31 2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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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20251231)
주님께서 세워주시는 삶
시편 127:1-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 해를 잘 살아내셨습니다.
이 말 한마디를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5년은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은 늘 여유롭지 않았고, 믿음으로 살고자 애썼지만, 신앙이 삶을 확 붙들어 주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 날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기도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예배를 드려도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신앙보다 세상의 방식에 더 마음을 두고 “일단 살아남아야지” 하며 현실에 더 집중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시편 127:1-2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마음 한편은 늘 허전하고, 앞날을 생각하면 괜히 불안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밤에 함께 듣는 말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이의 수고가 헛되며…”(시편 127:1)

이 말씀은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열심히 사는 삶을 부정하는 말씀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혼자서 떠안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내 줍니다.
시편 기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집을 세우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성을 지키는 파수꾼도 필요합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수고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세우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붙들고 버티고만 있었던 삶은 아니었는지, 하나님 없이도 괜찮을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고 고된 수고로 먹을 것을 먹는 것이 헛되다.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에게 잠을 주신다.” (시편 127:2)
 

■ 불면의 세상


독일의 철학자 한병철은 오늘의 시대를 ‘피로사회’이자 ‘불면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외부의 강요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이다가 지쳐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쉬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맡길 곳을 잃었기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시대, 우리는 바로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하는 ‘잠’은 단순히 눈을 붙이는 휴식만이 아닙니다.
이 잠은 맡김에서 오는 평안, 내가 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는 신뢰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착각합니다.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불안이 사라질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조금만 더 애쓰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불안은 게으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놓친 자리에서 자라난다고 말입니다.
 

■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


본회퍼는 은혜를 두 가지로 나누어 말했습니다.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입니다.
값싼 은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값비싼 은혜는 우리를 부르시되, 우리의 삶 전체를 요구하는 은혜입니다.


시편 127편은 이 두 극단 사이를 정확히 가리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다 네 책임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은 우리를 현실에서 도피하게 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신앙은 다만 현실을 혼자 감당하지 않게 해 줍니다.
우리는 심습니다. 우리는 물을 줍니다. 우리는 땀 흘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열심히 살 것인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라 열심히 살되, 하나님 없이 서두르지 않는 삶입니다.
 

■ 자리를 지키는 한 해


이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합니다.
2026년 역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갑자기 좋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언제나 단단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세우시는 삶은 우리가 혼자 버티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처드 로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대단한 사람을 찾기보다 자리에 머무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눈에 띄는 재능이 아니라,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발걸음이고,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공동체를 떠나지 않는 신실함입니다. 교회는 누군가의 능력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열심만으로 유지되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되, 성도들의 자리를 통해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새해에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려면 대단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눈에 띄는 봉사보다 보이지 않는 충성이 필요합니다.

“내가 다 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여기 있겠다”는 고백이 교회를 세웁니다.
 

■ 주님께서 세워주시는 삶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 해를 잘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새해도 우리는 완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밤, 우리는 이 고백 하나만은 붙들고 가면 좋겠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삶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며 배워가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또 한 해를 정복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시 세워주실 것입니다.

“주님, 제가 제 삶을 세우려 애써왔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세워주시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세워주시는 삶, 그 삶 안에서 우리는 다시 숨을 쉬고, 다시 잠들고, 다시 소망할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2026년 우리의 삶과 우리 교회 위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거둠 기도


주님,
2025년의 끝자락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불안했고, 흔들렸던 시간들까지 주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힘으로 세우려 애썼던 삶을 내려놓고, 이제 주님께서 세워주시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다가오는 2026년에는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믿고, 주님 안에서 숨 쉬고 잠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간과 삶을 주님 손에 맡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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