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후 첫 번째 주일(송년주일 20251228)
가고 오는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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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8:1-14, 이사야 63:7-9, 히브리서 2:10-18, 마태복음 2:13-2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
변함없이 매 주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 오래 묵상해야 할 은총입니다.
우리는 올해 70주년이라는 시간을 건넜습니다.
기념은 화려했지만,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고령화, 저출산, 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교회가 서 있는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새 출발을 힘차게 외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은 한 해였습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말없이 자리를 지킨 분들, 눈에 띄지 않는 봉사로 교회를 떠받친 손길들, 예배를 포기하지 않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한 해 동안 삶으로 증명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모두 ‘이동’과 ‘통과’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시편 148편은 온 우주를 향해 외칩니다.
하늘과 땅, 별과 바람, 아이와 노인까지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특별한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찬양이 되라고 부릅니다.
이사야 63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들이 고통당할 때에 주님도 고통을 당하셨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시간을 통과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의 자리에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그 곳에 계셨습니다.
그 자리가 기쁜 자리가 아니라 고통의 자리일 때도 하나님은 함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는 분’이 아니라 ‘직접 겪으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 죽음, 연약함의 시간을 예수께서 우리보다 먼저 지나가셨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길을 걸어가시는 주님, 그 뒤를 따라 가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마태복음의 성탄 이야기는 낯섭니다.
아기 예수는 성탄축하 속에 머물지 않습니다.
피난길에 오르고, 국경을 넘고, 돌아와서도 고향에 정착하지 못합니다.
마태복음의 성탄이야기는 정착의 이야기가 아니라 도망과 귀환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입니다.
성서일과는 우리를 이렇게 출발도 아니고 도착도 아닌 ‘가고 오는 시간’ 속에 세웁니다.
시편은 이 모든 이야기를 꿰뚫는 한 단어를 남깁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찬양은 인간의 종교적 선택이 아니라
피조물의 존재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시편 148편의 할렐루야는 ‘구원받아서’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드리는 찬양입니다.
형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고 오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늘 평가하고 계산하려 합니다.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그러나 시편 148편은 묻지 않습니다.
“어떤 성과를 냈는가?”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찬양하라.”
그래서 이 시편의 할렐루야는 결산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입니다.
존재의 언어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일상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작은 예배, 작은 친절, 작은 책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동지가 지나면 빛의 시간이 길어집니다.
그 변화는 아주 미묘해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내 어둠을 이깁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할렐루야는 가고 오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의미 있는 삶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동안 드러납니다
의미 있는 삶은 특별한 선택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성서가 말하는 믿음의 사람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억지로 떠나야 했고, 두려움을 안고 돌아와야 했으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광야의 시간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간을 받아들였고 떠나지 읺았습니다.
그래서 송년은 정산의 시간이기보다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는 자리입니다.
또한, 송년은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는가보다 어떤 시간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지나왔는가를 묻는 때입니다.
의미 있는 삶은 언제나 큰일을 해낸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시간을 분노나 체념으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없이 사는 법”을 고민했습니다.
탈출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침묵으로 타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 의미 있는 삶이란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 자리는 늘 애매합니다. 정리와 기대, 후회와 소망이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성서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늘 그 사이에 계신다고. 떠나는 자리에도, 돌아오는 길에도 이미 우리보다 먼저 와 계신 분이라고.
주현절은 “하나님이 드러나신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드러나심은 눈부신 기적이 아니라, 피난길의 아기, 불안한 부모, 정착하지 못한 삶 속에서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할렐루야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올해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무언가를 크게 이루어서가 아니라,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비우지 않았고, 관계를 끊지 않았고, 하나님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가 이미 할렐루야의 삶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가고 오는 시간 속에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함께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 할렐루야의 중심에는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를, 성과가 아니라 동행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고, 앞서 가시며, 뒤에서 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한 해를 살게 하시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부시지 않은 날들도 있었고,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 모든 가고 오는 시간 속에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묻기보다,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배를 놓지 않게 하셨고, 관계를 끊지 않게 하셨으며, 끝내 하나님을 내려놓지 않게 하셨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빠르기보다 바른 길을 걷게 하시고, 성과보다 동행을 선택하게 하시며, 눈에 띄는 일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가고 오는 모든 시간 속에서 할렐루야의 삶을 잃지 않게 하시고, 우리보다 먼저 길을 가시고 끝까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