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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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3주]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

  • 관리자
  • 2025-12-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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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3주(20251214)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  제목을 누르시면 녹음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35:1-10, 야고보서 5:7–10, 마태복음 11:2-11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다림의 계절’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깊은 곳에서 다시 길을 찾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종종 ‘광야’와도 같습니다.
관계는 삭막해지고,
마음은 쉽게 지치고,
사회는 끝없는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뉴스만 보아도 절망이 더 익숙한 단어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님,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합니까?”

오늘 성서일과는 바로 이 질문에 놀랍고도 선명한 대답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가시는 길,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이 이사야와 야고보서,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속에 드러납니다.
 

■ 이사야 35장 – 광야에 꽃이 피는 이유


이사야는 절망의 시대, 바벨론 포로기를 앞둔 슬픔의 한복판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사35:1)
이 말씀은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광야가 스스로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메마른 땅이 스스로 기쁨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광야가 변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그 길을 지나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나가시는 자리에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회복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언제나 이렇게 작은 생명의 회복으로 시작됩니다.

이사야는 이어 말합니다.
“너희는 맥 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사 35:4)
하나님의 길은 강한 자들의 행렬이 아니라,
약한 자,
상처 입은 자,
낙심한 자가 다시 일어나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절정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거기에는 큰 길이 생길 것이나,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거룩한 길은 깨끗한 사람,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 야고보서 5장 – 인내하며, 원망하지 않고 걷는 길


성서일과의 본문 야고보서 5장에서는 깨끗한 사람, 속량받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약 5:7).
즉,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인내(μακροθυμία)라는 단어는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는 ‘마음을 넓게 가지다, 길게 숨을 들이쉬다’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마음을 지키는 영적인 행위입니다.

야고보는 농부의 예를 들며 말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바로 싹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립니다.”(약 5:7)
겨울비가 땅속에서 뿌리를 키우듯,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내란 무기력한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덧붙여 말합니다.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약 5:9)
인내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말입니다.
원망은 공동체를 서서히 갉아먹는 영적 부식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은 메마른 환경 속에서도 말로 서로를 살리는 사람, 말로 길을 내는 사람입니다.

인내하며,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깨끗한 사람, 속량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분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마태복음 11장 – 흔들린 요한과 예수님의 대답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에 헤롯과 헤로디아를 비판하다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흔들렸습니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마 11:3)
위대한 믿음의 사람도 감옥에서 두려움과 혼란을 겪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광야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도 요한처럼 묻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십니까?”, “이 길이 맞는 길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마 11:5)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있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는 이미 거기에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도 진행 중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도 절망하던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자리, 가난한 이들이 복음으로 위로 받는 자리, 사랑의 나눔이 있는 자리, 약자의 편에 서는 자리,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징표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광야 같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생명이 이미 자라고 있다는 뜻이고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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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의 길은 누구나 걷는 것이 아닙니다.
깨끗하지 못한 자, 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사 35:8)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림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인내의 길,
원망하지 않는 길,
서로를 세워주는 길,
작은 희망을 알아보는 길,
함께 걷는 깨끗하고 거룩한 길입니다.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 광야는 더 이상 절망의 땅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고, 하나님이 길을 내시는 자리가 됩니다.
그런 복을 누리십시오.

 

■ 먼저 그 길을 걸어가시며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나님


이사야는 “거룩한 대로”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은 분명 대로이지만, 우리가 현실 속에서 걸어가는 길은 때때로 좁고 협착하고 고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길은 우리가 먼저 걷는 길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고, 고독의 밤을 지나셨고, 버림받음과 상처의 길을 먼저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좁은 길은 내가 먼저 걸은 길이다.
내가 네 앞에서 길을 내고,
네 옆에서 너를 붙들고, 네 뒤에서 너를 지켜본다.”

길이 넓어서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동행하시기에 우리는 걸어갈 수 있습니다.

대림절은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주님과 함께 좁은 길을 다시 걷겠다는 결단의 계절입니다.
주님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순간,
광야는 길이 되고,
그 길은 하나님 나라로 이어집니다.


주님의 동행이 여러분의 걸음을 지키고, 여러분의 걸음이 주님의 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거둠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도 다시 길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인내의 마음을 주시고, 원망 대신 서로를 세우는 말을 하게 하시며,
좁은 길이라도 주님과 함께 담대히 걷게 하옵소서.
먼저 그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믿고 따르게 하시고, 우리의 작은 걸음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욥기묵상 - 은폐된 동행 '침묵과 질문 사이에서 만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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