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2주(20251207)
임마누엘 신앙
이사야 7:14 ,41:10, 43:1–2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불안’을 일상의 공기처럼 들이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마음이 평안한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내일은 어떻게 될까?”,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하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은 채 살아갑니다. 뉴스는 매일 위기를 말하고, 사회는 끝없는 경쟁을 요구하며, 관계는 흔들리고, 삶은 점점 더 고립의 방향으로 밀려갑니다.
누구도 흔들리지 않는 척하지만, 사실은 모두 표류하고 있습니다.
확실함을 잃은 자리에서 믿음까지 흔들린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바람막이마저 사라진 사람들은 최후의 보루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 힘 있어 보이는 것, 안전해 보이는 것들을 붙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위안은 잠시뿐 또다시 두려움은 다시 찾아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불안의 시대 속에서 어떤 신앙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가?
오늘 설교의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것이 불안의 시대를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 불안이란?
키르케고르는 “불안은 자유의 어지러움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유를 가진 개인은 끝없는 선택, 끝없는 가능성, 끝없는 책임 앞에 서게 됩니다. 자유는 해방이기도 하지만 끝없는 선택 앞에서 결국 인간은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은 수많은 선택 앞에서 어지러움을 느끼며 불안에 빠진다.” 이것이 키르케고르의 불안에 대한 정의입니다.
우리 시대의 불안도 이와 비슷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의 시대를 ‘액체 근대’라 부르며 뭔가를 잡으려하면 손가락 사이로 액체가 빠져나가듯, 무엇 하나 붙잡을 것이 사라진 시대라 했습니다. 아무 것도 붙잡을 수 없으니 인간은 불안에 빠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의 인간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강한 것을 숭배합니다.
목소리 큰 지도자, 강력해 보이는 경제 정책,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는 과도한 자기계발, 심지어 기독교 안에서도 ‘믿음의 확신’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적 안전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두려움을 잠시 덮어놓는 얇은 이불에 불과합니다. 밤이 깊어지면 깊은 두려움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갈 용기를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말씀에서 얻습니다.
두려움의 해결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동행의 변화입니다.
■ 불안에 대한 성경의 성찰
성경은 불안의 근원을 이렇게 밝힙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삶, 하나님이 나를 보지 않는 것 같은 느낌, 하나님의 손이 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착각 같은 것들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늘, 언제나 우리와 임마누엘로 동행하시는데 마치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인간은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은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두려움은 항상 “나는 혼자다”라는 거짓말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거짓말을 단 한 문장으로 파괴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사 41:10)
그러나 성경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들과 심지어는 AI조차도 “모든 인간은 연결(connection)되어 있다, 외딴 섬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불안은 ‘나는 혼자다’라는 거짓말에서 시작되고, 샬롬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진실에서 시작됩니다.
■ 성경이 제시하는 임마누엘 신앙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에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먼 하늘 위에서 우리의 불안을 내려다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인간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의 땅에서 걸으시고, 우리의 언어를 배우셨고, 우리의 눈물과 상처를 직접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두려움과 불안의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이 믿음은 우리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힘을 줍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하나님이 두려움을 없애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두려움 속에서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움의 해결책은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동행하는 분의 존재입니다. 고통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함께 하시며, 눈물을 닦아주시고 손을 잡아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2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고난의 자리에서 증명되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우리는 물을 건너기도 하고, 불을 지나기도 하고, 상실과 실패의 골짜기를 건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우리를 붙드는 것은 우리의 손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노력하면서도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의 손을 붙잡고, 혹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손을 붙잡고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성경의 길: 임마누엘을 기억하는 신앙
세상은 두려움을 부추기고, 인문학은 두려움의 원인을 말하고, 문학은 이런저런 두려움을 없이 살아가는 삶을 말하지만, 성경은 두려움 속에서 사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임마누엘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것, 물 가운데로 지날 때도 잡아주시는 손을 신뢰하는 것,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걷는 것,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그분의 사랑에 기대는 것입니다.
12월의 추천도서 ‘베들레헴 그날 밤’의 저자 맥스 루케이도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병원의 복도에서, 실패와 두려움의 자리에서, 광야 같은 마음의 겨울에서, 두려움과 무기력과, 고단함과 상실감 속에서 발견합니다. 그는 “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전합니다. 임마누엘 신앙은 두려움이 없는 삶이 아니라,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는 삶입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 말씀이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줄 것입니다.
■ 대림절 둘째 주 - 평화
대림절 둘째 주간의 초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성경의 평화는 샬롬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는 전쟁과 갈등이 보이지 않는 상태, 즉 팍스 로마나처럼 힘의 균형과 통제로 유지되는 고요함에 가깝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언제 흔들릴지 모르는 두려움과 긴장이 흐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샬롬은 전혀 다른 차원의 평화입니다. 샬롬은 단순히 문제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에서 시작됩니다. 상황이 평화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동행하시기에 마음이 평안한 것입니다. 샬롬은 고요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주어지는 내면의 안정입니다.
그래서 샬롬은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의 평화, 관계와 공동체가 회복되는 온전함의 평화이며, 정의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의 촛불은 바로 이 샬롬을 기다리고, 세상의 불안 속에서도 샬롬의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우리의 고백을 밝히는 빛입니다. 희망으로 시작된 평화의 빛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어 기쁨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길 축복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십니다.
■ 거둠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불안과 두려움이 일상이 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주 길을 잃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기대고, 아무것도 우리를 붙들어주지 않는 것들을 숭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진실을 다시 듣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 은혜를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 새기게 하옵소서.
물이 넘칠 때에도, 불이 우리를 둘러싸도, 상실의 자리, 고독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 말씀이 오늘 우리의 삶을 붙들어주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