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1주(20251130)
주님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자!
제목을 누르시면 음성설교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2:1-5, 로마서 13:11-14, 마태복음 24:36-44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절(Advent)은 단순히 ‘성탄을 기다리는 절기’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종말(eschaton)’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을 기억하는 절기이면서 동시에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인 절기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의 대림절은 성탄준비가 아니라, 종말의 심판을 대비하는 철저한 회개의 시간이었습니다.
■ 왜곡된 종말론
우리는 종말을 두려움으로 왜곡하는 시한부 종말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 날과 그 때를 아무도 모른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날짜를 계산하고 두려움을 조장하며 사람들을 혼란케 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조작이고, 소망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성경적 종말론은 ‘언제 오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묻습니다. 깨어 준비하여 오늘을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종말은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마 24:36)
그런데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이 말씀을 무시하고 날짜를 계산합니다. 이는 성경에 대한 불순종이자,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태도입니다.
■ 종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
많은 이들이 종말을 ‘종결’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종말을 역사의 완성, 하나님의 세계가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종말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의 정점이고,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도래를 드러내는 희망의 때입니다. 종말은 죽음이 끝나는 지점이며 부활이 시작되는 문턱입니다. 그래서 종말은 파국이 아니라 변형(transformation)입니다.
초대 교회는 개인의 죽음은 ‘작은 종말’, 우주의 종말은 ‘큰 종말’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죽음은 개인적 차원에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며, 부활은 종말의 시간에 모든 존재가 함께 맞이하는 새 창조의 공유된 경험이라고 믿었습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 ‘개인에게 있어서 죽음의 순간은 곧 부활의 순간이다’라고 정리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므로 부활과 연결되고,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에는 모두 함께 맞이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의 종말론은 파국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종말을 향한 첫 걸음이며, 부활은 종말에 완성될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죽음·종말·부활은 서로를 향해 열린 하나의 길입니다.
이것을 믿기에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의 그 순간, 나는 부활할 것을 믿는다는 것은 영생의 삶과도 연결됩니다.
대림절은 우리가 이미 주님이 오셨으나, 아직 완성은 오지 않은 시간에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이미 구원은 시작되었으나 아직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고, 이미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으나 아직 온전히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이의 존재입니다. 대림절은 그 사이에 사는 긴장감을 회복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절기가 아니라 종말의 빛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믿음을 훈련하는 절기입니다.
■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마 24:42)
종말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오지만, 그날의 얼굴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자기를 잃고 어둠에 머무는 자에게는 두려움의 날이지만, 깨어서 준비한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열리는 새벽입니다. 깨어 있는 자에게 종말은 짐작하지 못한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구원의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제자들에게 재림의 때를 준비할 필요성을 강론하신 말씀입니다. 노아의 때로부터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선택받고 쓰임 받은 대상은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하시며, 주님이 임하실 그 시기를 알지 못하니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십니다.
대림절의 핵심은 기다리는 감성이 아니라, 깨어 있음의 영성입니다.
어둠을 외면하지 않고, 우리 안의 굳은 마음을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께 돌이키는 결단의 계절입니다. 종말의 때는 두려움의 시간이 아니라 깨어 준비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고, 약한 자의 눈물을 씻기시는 그날을 기대하며 “주님, 오시옵소서. 우리의 메마른 마음에, 우리의 흔들리는 가정에, 우리의 공동체와 이 땅 위에 다시 오시는 주님의 빛을 비추소서.”고백하며 주님의 빛 앞에서 깨어 기다리며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흔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끼지만, 성서가 말하는 기다림은 전혀 다릅니다. 성경 속에서 기다림은 하나님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일치시키는 행위입니다. 노아는 홍수가 멈추기를 기다렸고,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기다렸고, 시편 시인은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믿음의 가장 순수한 언어입니다.
기다리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정화하고, 욕망을 절제하며, 삶의 혼란을 정돈하고, 하나님이 오실 자리를 비워두어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영적 housekeeping(청소)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들어오실 자리를 준비하는 조용한 마음의 청소를 하며 깨어있는 분들 되길 소망합니다.
방을 청소할 때, 한 번에 뒤집는 방법도 있지만, 조금씩 주변의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표시나지 않지만, 그만큼은 깨끗해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데 잘 안된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 말씀대로 살려는 만큼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 영역을 점차로 넓히십시오. 그래서 늘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깨어 기다리는 자에게 종말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죽음이나 종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대림절은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이 아니라 ‘주님의 빛 가운데 깨어 걸어가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손 놓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빛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의 바울은 말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
주님의 날은 어둠의 소식이 아니라 빛이 완성되는 날,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는 날입니다.
그날을 준비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주님의 빛 아래 세우는 것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자리에서 용서하고,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서 위로하며, 약자의 눈물을 닦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향해 하루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이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깨어 있는 삶입니다. 종말은 갑작스럽게 오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일의 작은 순종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뜻대로 살려는 그 한 걸음이 종말을 준비하는 신앙이고, 그 한 걸음이 우리를 구원의 빛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종말은 어둠이 우리를 삼키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완전히 덮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동안 주님은 오시며, 우리가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 나라는 가까워지고 있으며, 우리가 오늘 빛 가운데 살아갈 때 그 빛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이 대림절,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공동체 위에 주님의 새벽빛이 다시 떠오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오시옵소서.
우리의 어둠 속에 빛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 위에 희망이 되어 주시며,
오늘을 성실히 살아 갈 힘을 주소서.”
다시 오실 주님의 날을 기다리며, 그 빛 가운데 담대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거둠 기도

주님, 대림절 첫 주에 우리를 깨우시고 빛 가운데 걸어가라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종말을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의 날로 바라보게 하시고, 날짜를 계산하기보다 오늘을 바르게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시고, 주님 오실 자리를 준비하게 하시며, 깨어 기다리는 믿음을 주소서.
가정과 공동체 위에 주님의 빛을 비추시고 이 대림절이 새 희망의 시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