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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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강림 후 21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 관리자
  • 2025-11-02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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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21주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시 119:137-144; 합 1:1-4, 2:1-4; 살후 1:1-4; 11-12; 눅 19:1-10





11월은 한남교회 창립기념의 달로 외부강사가 매주일 오셔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 기간에는 교회력에 따라 말씀을 준비하며, 설교자로서의 루틴을 잃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편하게, 본문을 읽고 분석하기보다는 성서일과를 읽으며, 즉각적으로 받은 감동들과 생각의 단편을 나누고자합니다.


■ 성서일과의 공통주제

시편의 말씀은 대적들로 인해 멸시당하는 시인의 상황이 있고, 하박국 예언자는 부르짖어도 침묵하시고, 구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악인이 의인을 에워싼 형국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의 말씀은 데살로니가교회가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지켜가는 것을 감사하고, 누가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들이 수군거릴 때,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다."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서일과의 공통 주제는 액면 그대로, 의인들이 고난과 박해를 당하고 수군거림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박국 예언자의 고백대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시는 것입니다.
 

■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경은 각 시대마다, 읽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재해석됩니다. 이것은 진리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진리의 속성이 아니더라도 진리의 말씀을 읽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입장에서 읽고 해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기 입맛에 따라 성경을 읽지 말고, 성경이 자신을 읽게 하라'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불의한 자들이 자신을 의인이라 생각하고 이 말씀에 "아멘!"한다면 어떨까요? 불의한 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하는데, 마치 자신이 의로운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성경을 읽고 위로받았다며, 자신의 불의를 더욱 공고오하한다면 성경을 제대로 읽은 것일까요?
이보다는 덜하겠지만, 자기 마음에 드는 말씀에는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자기 마음에 찔리거나 거북한 말씀에는 관심이 없는 태도는 또 어떻습니까? 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신앙인들은 후자에 가깝지 않습니까?

성경이 자신을 읽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삶을 새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믿고, 그렇게 살기 위해 힘씁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는데, 그 열정이 자신을 삼켜버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시 119:139). 주의 법도를 잊지 않고 따라 살았지만, 환난과 우환이 미칩니다(시 119:141,143).
현실은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외양간 송아지도 없는 현실 같이 막막한데,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들려오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공허라게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견디는 박해와 환난으로 인해 자랑거리가 되지만, 정작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의 상황은 어떻게 봐야하고, 에수님이 하시는 일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수군거리는 이들은 또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런 현상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을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지,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세상의 것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믿음을 잃어버린 것'에는 초연하면서 '돈이나 명예나 권력 같은 것'에는 세상 다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한다면 건강한 믿음일까요?
 

■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시편 시인의 심정이 가늠되십니까?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였지만, 원수들이 멸시를 하고, 환난과 우환이 미칩니다.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당하는 일들을 통해 회개라도 할 터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힘든 것입니다. 좀 쉽게 말하면, 정말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을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기는커녕 수군거립니다. 대충 신앙 생활하는 이들과 그들의 자녀가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자신과 자녀들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임했다"고 하셨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열정이 자신을 삼키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게 세상입니다. 시편의 시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계명을 즐거움으로 삼고(시 119:143) 살아가십시오.
 

■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

하박국의 주제를 담은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라는 잘 알려진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현재, 하나님의 묵시가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정한 때가 아니라 믿고, "더딜지라도 반드시 응하리라(합 2:3)"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비록 무화과 나무와 열매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은 이런 신앙이 아닐까요?

'묵시의 때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진행이이다.
0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의 조짐도 없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묵시가 이뤄질 것을 믿고 살아갈 것이다.'


아직은 정한 때가 아닙니다.
그래서 불의한 이들이 승승장구하고, 어둠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살고자하는 이들이 고난을 당하고 비웃음을 당합니다. 아직도 정한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묵시의 위로는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혹은 내 살아 생전에 이뤄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우리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 나의 고난은 누군가에 위로가 된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이들을 도와야하는 당위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은 아무리 의식하지 않아도 자기보다 더 깊은 슬픔에 빠진 이들, 더 깊은 아픔 속에 있는 이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합니다. 그것이 고난당하는 이들을 도와야하는 당위성이라고 저는 고백합니다. 그저 위로만 받고 만다면, 이기적인 삶에 불과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인내함으로 믿음이 자라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풍성해지는 것(살후 1:3,4)"이 바울과 실루아노아 디모데에게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들이 박해와 환난을 이겨내는 모습이 그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었듯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고난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이들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과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또한 누군가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에 말씀 드린 '그림자 노동'의 신비입니다.
고난 중에 계십니까?
그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바라보는 이들의 자랑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 내 그럴 줄 알았지만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반대자들의 눈총을 피할 길이 없으셨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어떤 반응들이 전개될지 아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시는 방법이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삭게오의 초청에 응해 그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나눌 때, 어떤 수군거리는 비방이 있을 것인지 모르지 않으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심정이 '내 그럴 줄 알지만'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일을 하려다보면 그 결과로 어떤 어려움을 겪어야할지 뻔히 보일 때가 있습니다. 순수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을 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지만, 신앙이 느슨해지면 타협을 신앙의 연륜이나 지혜처럼 포장합니다. 사실, 불의해서가 아니라, 이런 신앙이 편만해 지면서 ’하나님의 복음은 훼손된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원로목사님이 어렵게 운을 떼어 말씀하십니다. "목사가 쫓겨날 각오를 하고 말씀을 전해야 한다." 저는, 그 분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모든 목사들이 그랬어야 합니다. 그런데 몇몇만 그렇게 했고, 그러다 몇몇만 쫓겨났고, 그들은 자기의 열정에 삼켜버림을 당하여 첫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만, 그것이 믿음의 길이라면 걸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그 사람이 되십시오. 저도 그 사람이 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 의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의인은 무엇으로 살면 안 되는가를 물으면 됩니다.
돈, 명예, 권력, 성공, 대형교회? 아닙니다. 믿음으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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