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19주/창조절 7주(20251019) 김민수 목사 메시지
행동하는 믿음 – 본 회퍼
야고보서 2:14-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종교개혁의 달 세 번째 주일입니다.
루터가 “오직 은혜”를 외치며 신앙의 뿌리를 새롭게 했고, 칼뱅은 “오직 말씀”으로 교회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입니다. 그는 독일 루터교의 젊은 목사이자 신학자였습니다. 나치 정권이 교회를 장악하던 시대에 그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했고, 결국 그 신앙 때문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단호히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20대 신학도 시절 저의 삶을 붙잡았던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믿음은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가 아니라, ‘삶 속에서 행하는 실천’이라는 뜻입니다. 지난주에 드린 말씀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눴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삶 속에 드러나 행동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 말씀은, 말로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행동으로는 외면하는 신앙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실질적인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이러쿵저러쿵 말만 하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본 회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결단이며, 그 결단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은 개인적인 위로나 구원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곳에서 사랑하고, 정의를 행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설 때,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빛이 드러나고, 세상은 살맛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독일로 돌아가 나치 독일의 기독교에 대한 통제에 반대하며 성립된 고백교회에서 활동을 합니다. 본회퍼는 이 고백교회의 주요 창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나치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불의한 권력에 대항하다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는 1945년 4월 9일에 폴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기 위해 끌려나갔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동료 죄수들과 작별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이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광장에서 본 회퍼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저항의 신학’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저항’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위한 선동에 가깝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동하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분열과 증오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본 회퍼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해도 그들은 결코 본 회퍼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진리에서 멀어진 자들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증오를 정당화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길이 아닙니다. 그리고 2019 코로나 때 대면예배를 강행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불법적인 일로 구속이 되었는데도 종교탄압이라 주장하고, 극우보수적인 발언들을 강단에서 남발해도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그런 교회일수록 교인 수는 늘어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맹신하기 때문이고, 세뇌되었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소경의 손을 잡고 진흙탕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듣는 자의 책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단지 루터나 칼뱅 같이 ‘전하는 자’의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며, 스스로를 개혁한 신앙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무조건적인 맹신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는 용기 속에서 자랍니다. 하나님께 묻고,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고, 다시 새롭게 서는 것—그것이 개혁교회의 정신입니다.
9월 마지막 주에 전한 ‘의심과의 대화’에서 말씀드린 바대로 맹신하는 순간,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이들의 먹이가 됩니다. 그래서 비판적인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생각하고 질문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신앙생활만큼은 편안하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생각하기 싫은 겁니다. 사이비가 득세하는 이유입니다.
믿음은 끊임없이 묻고, 듣고, 새롭게 서는 용기 속에서 자랍니다. 의심 없는 믿음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질문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신앙이란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한가운데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이다.”
이 말은 본 회퍼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그는 악에 침묵하지 않았고, 무기력한 시대 속에서 믿음의 행동으로 응답했습니다.
한남교회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습니다. 감사한 역사이지만, 동시에 돌아봐야 할 시간입니다.
혹시 우리는 바꾸어야 할 것을 ‘전통’이라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 말씀 앞에 서는 교회 — 말씀의 공동체(Kerygma Community)
“오직 말씀”은 단지 성경 공부의 구호가 아니라, 말씀을 살아내는 공동체를 뜻합니다.
성경 읽기, 묵상, 나눔이 일상화된 교회 “말씀 공동체”로의 회복입니다.
2. 따뜻한 교회 — 친교공동체(Koinonia Community)
전통이 차가워질 때, 복음은 사람의 온기로 다시 살아납니다.
친교가 단지 식사나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알아주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노인, 청년, 어린이, 새신자 모두가 “내가 여기서 환영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분위기가 ‘평가’보다 ‘경청’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3. 직분에 충실한 교회 — 소명 공동체(Calling Community)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입니다.
장로, 권사, 집사 모두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리”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직분을 맡았다”가 아니라 “소명을 받았다”는 마음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4. 공감하는 교회(Compassion Community)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교회가 응답해야 합니다.
예배와 설교 속에 시대의 상처를 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한남교회의 70년이 자기 보존의 역사가 아니라, 타인의 눈물을 품은 역사가 되게 해야 합니다.
5. 대화하는 교회(Dialogue Community)
회의나 모임에서 다른 의견을 말해도 안전한 문화,즉 ‘비판이 배척되지 않는 영적 공간’이 필요합니다. 목회자와 성도, 세대 간의 대화가 열려야 진정한 개혁이 시작됩니다. 듣는 귀를 잃은 교회는 이미 닫힌 교회입니다.
본 회퍼가 강조한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신앙처럼,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서서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다시 빛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을 붙들고, 은혜로 살며, 그 받은바 은혜를 삶으로 살 때, 한남교회의 70년은 과거의 자랑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루터의 은혜, 칼뱅의 말씀, 본 회퍼의 행동하는 믿음, 이 세 가지는 따로 떨어진 길이 아니라 한 길입니다. 은혜로 시작해, 말씀 위에 서서, 행동으로 완성되는 신앙의 여정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세상 속으로 부르십니다.
입술로만 믿는 교회가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행동하는 믿음의 공동체로 새롭게 서게 하소서.
■ 거둠 기도
주님,
행동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을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세상 속에서 복음을 살아내게 하소서.
본 회퍼처럼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진리의 불편함을 선택하는 용기를 주옵소서.
70년의 전통 위에 안주하지 말고, 다시 개혁하며 새로워지는 한남교회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우리의 진실을 보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