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종교개혁의 달 특집 1] 오직 은혜 - 루터

  • 관리자
  • 2025-10-05 11:00:00
  • hit1791
  • 219.251.41.124

성령강림 후 17주/창조절 5주(20251005) 
오직 은혜 - 루터
로마서 1:16-17, 에베소서 2:8-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10월, 교회력으로 종교개혁의 달을 맞이하여 함께 예배드립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그 날을 기념하며, 전 세계 교회는 10월을 신앙의 개혁을 다시 새기는 달로 지켜왔습니다.
한남교회 역시 지난 몇 해 동안 이 흐름 속에서 신앙의 깊은 뿌리를 되돌아보았습니다. 2021년에는 디트리히 본 회퍼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월터 브루그만을 통해 예언자의 상상력을, 리처드 로어를 통해 고난의 신비를 나누었습니다. 또 렘브란트의 그림과 헨리 나우웬의 묵상을 통해 탕자의 비유를 다시 묵상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종교개혁의 달, 우리는 세 명의 신앙 선배를 다시 만나려 합니다. 먼저 종교개혁의 문을 연 마르틴 루터를 통해 “오직 은혜”를, 이어서 존 칼빈을 통해 “오직 말씀”을, 마지막으로 20세기 고난 속에서 교회를 지킨 본 회퍼를 통해 “삶으로 드리는 신앙”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 개혁이란?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개혁’이라는 단어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개혁이라 하면 강하고 급진적이며 기존 것을 부수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한자어 ‘혁(革)’은 원래 가죽 혁, 곧 무두질과 관련된 말입니다. 짐승의 가죽은 그대로는 딱딱하고 거칠지만, 무두질을 거쳐야 비로소 부드럽게 되어 삶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개혁이란 단순히 강하게 치고 부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다시 다듬고, 거친 부분을 벗겨내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새롭게 하는 과정입니다. 지난달 함께 나누었던 ‘부드러움의 힘’처럼,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개혁된 신앙 역시 우리를 더 부드럽고 온유하게 하여, 하나님께 쓰임받게 합니다.
 

■ 루터의 탑 체험


이제 종교개혁의 문을 연 마르틴 루터를 만나 보겠습니다.
루터는 진실한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끝없는 금식과 기도, 고행과 고백성사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습니다. 하나님은 늘 심판하시는 두려운 분으로만 다가왔습니다. 그런 루터에게 인생을 바꾼 깨달음이 찾아온 곳이 수도원의 탑 서고에서의 체험, 이른바 ‘탑 체험’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다가 로마서 1장 16–17절 말씀에 붙들렸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이 의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것과 같습니다.”

루터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의’를 죄인을 심판하는 무서운 기준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했고, 신앙 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의가 인간이 만들어내야 하는 기준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이 순간을 두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마치 천국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의가 가장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깨달음이 바로 ‘오직 은혜’(Sola Gratia), 그리고 ‘이신득의’(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의 신학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 믿음과 은혜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롬 1:16)

세상은 십자가를 수치로 여겼지만,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선포했습니다. 복음에는 죄인을 정죄하는 무서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은혜의 의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루터가 탑 체험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이 복음의 비밀, 곧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복음을 잘못 받아들여 책임 없는 신앙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안주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은혜를 값없이 주셨다는 사실만 붙들고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임을 망각하는 경우입니다. 그 결과 믿음은 있지만 구원을 줄 수 없는 믿음, 은혜를 말하지만 왜곡된 은혜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분이 은혜로,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엡 2:8–9)

여기서 “행위가 아니다”는 말은 결코 삶의 책임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랑 대신 사랑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은혜는 게으름의 면허장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능력입니다.
 

■ 참된 은혜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은 책임을 회피하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참된 은혜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개혁된 길로 이끌어 갑니다.

첫째, 은혜는 자유를 줍니다. 그러나 방종의 자유가 아니라 순종의 자유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는 용서를 줍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의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은혜는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속에서 사랑과 선행으로 드러나야 할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온 은혜임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 은혜의 통로가 되는 교회


루터가 탑 서고에서 만난 은혜는 그 혼자만의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닫혀 있던 복음의 문이 열리고, 모든 믿는 이들을 향한 은혜의 빛이 비추기 시작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값싼 은혜가 아니라 참된 은혜를 붙드십시오.
믿음은 자기확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은혜는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은혜는 자유를 주지만 순종으로 이끄는 자유, 용서를 주지만 다른 이를 품게 하는 용서, 선물이지만 동시에 사명으로 이어지는 은혜입니다.

이제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한남교회가 바로 그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70년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는 받은 은혜를 나누는 교회로 살아가며, 미래를 향해서는 세상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드러내는 사명 공동체로 서야 합니다. 70년의 역사가 우리를 자랑하게 하지 않고, 오직 은혜를 더 깊이 붙들게 하기를 바랍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고 흘려보내는 교회, 그것이 하나님께서 한남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이유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입니다.
 

■ 거둠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은혜로 부르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노력과 자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주신 구원의 복음을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값싼 은혜로 흐르지 않게 하시고, 참된 은혜 안에서 자유와 순종을, 용서와 사랑을, 선물과 사명을 함께 살아내게 하옵소서.
특별히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한남교회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앞으로도 세상 속에서 사랑과 정의, 평화의 복음을 증언하는 공동체로 세워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