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14주/창조절 2주(20250914)
잃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제목을 누르시면 설교애 대한 해석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1–10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성령강림 후 13주, 창조절 2주로 성서일과 복음서를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잃어버린 것’의 비유입니다.
양 한 마리를 잃은 목자, 드라크마 하나를 잃은 여인, 그리고 이어지는 탕자의 비유까지, 주제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고, 반드시 되찾으시며, 그 기쁨을 나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교회 밖의 불신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신앙이 흔들려 방향을 잃은 이들,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러 점점 무기력해지는 이들, 코로나 이후 교회를 떠난 분들, 그리고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이들—이들 모두가 ‘잃은 자’일 수 있습니다.
■ 왜 잃은 자가 생기는가?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잃어버림은 단순히 개인적인 나태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구조 자체가 사람들을 길을 잃고 방황하게 만듭니다.
프랑스 사상가 기 드보르는 『스펙타클 사회』에서 오늘의 인간을 ‘존재가 아니라 이미지, 내면이 아니라 외형, 진실이 아니라 포장에 종속된 존재’라 말했습니다. 교회조차 이 흐름에 휩쓸려 더 크고, 더 화려하며, 더 눈에 띄는 것을 추구하기 쉽습니다.
또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을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존재”라고 진단합니다. 더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는 쉼을 잃어버렸습니다.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고, 영혼은 탈진해 갑니다. 그 결과 신앙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신앙은 소모품이 되고, 교회는 여러 모임 중 하나로 전락합니다. 그러니 잃어버린 자는 결코 소수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방식으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 한남교회의 현실 – 70주년을 맞이하며
올해 한남교회는 창립 70주년을 맞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교인들의 고령화는 점점 심해지고, 코로나 이후 30여 명의 성도가 줄었습니다. 교육부서는 침체를 겪고 있고, 청년들은 치열한 사회생활 속에서 교회와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힘들어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 교회 전체가 겪는 공통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남교회는 현상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붙드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대형교회들마저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증언하며, 교회다운 교회로 서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자부심을 갖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헌신하는 분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교회는 든든히 서게 되고, 교회가 든든히 설 때 여러분의 삶과 가정도 든든히 서갈 것입니다.
■ 하나의 소중함
누가복음 15장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불평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그때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잃어버린 양의 비유.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잃은 양 하나를 찾으러 나섭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계산적으로 불합리합니다. 그러나 전도자가 말했듯이, 이것은 ‘해 아래’의 계산일 뿐입니다. 해 아래에서는 손익을 따지고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하나님 아래에서는 하나의 생명이 곧 전체와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둘째,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여인이 집안을 샅샅이 뒤집으며 동전 하나를 찾는 것도 경제적으로는 비합리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인간의 계산법과 다릅니다. 독일 신약학자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를 소홀히 여기는 순간 아흔아홉도, 아홉 개도 의미를 잃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가 곧 ‘전체’입니다.
따라서 이 두 비유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잃은 자 하나를 끝까지 찾으시는 분이며, 되찾았을 때 하늘에서는 큰 기쁨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하나’에 있습니다. 그것은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와 아홉 드라크마가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하나가 있어야 전체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를 부르심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몇 가지 적용을 줍니다.
스스로 잃은 자임을 인정하기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방식으로 길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방향을 잃고, 세상의 압박 속에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잃은 자를 찾는 교회 되기
한남교회가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할 사명은 단순히 교세를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잃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교회를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지친 청년들을 붙잡고, 형식적 신앙에 머무는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함께 예배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기도는 잃은 양을 찾으시는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되찾음의 기쁨에 동참하기
하나님이 잃은 자를 되찾을 때 느끼는 기쁨은 하늘의 기쁨입니다. 교회는 그 기쁨에 동참하는 공동체입니다. 새 신자 한 분이 올 때마다 기쁨으로 맞이하고, 교회에 잘 정착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기존의 교인들만으로 교회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70년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이제 4세대가 바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이번 70주년을 맞아, 걸어갈 30년을 위해 기도할 때, 새로운 세대와 새 신자들이 교회의 중심으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일입니다.
■ 반드시 찾으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잃은 자였고, 여전히 길을 잃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으시고, 되찾으시며, 그 기쁨을 나누고자 하십니다.
창립 70주년을 맞는 한남교회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잃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통해 잃은 자를 되찾으시고, 그 기쁨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 거둠 기도
찾으시는 하나님,
우리가 모두 잃은 자였으나 주님의 은혜로 되찾은 자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 주옵소서.
한남교회가 잃은 자를 기억하고, 지친 이들을 붙들며,
되찾음의 기쁨에 동참하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