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9주/ (20250810) 예배 회복 시리즈 2주차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1-5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주에는 예배 회복시리즈 1차 메시지에서 ‘나는 예배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예배자로서의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을 인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삶의 문제로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예배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 삶의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모세가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사람의 소명 이야기가 아니라, 예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세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이 한 문장 안에 예배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며, 그분 앞에 신을 벗는 자리입니다. 예배는 나를 낮추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다시 나를 정렬하는 시간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를 만난 때는 광야의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양을 돌보며 지나던 길목, 언제나처럼 일상이 흐르던 그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일상이 거룩한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무엇인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순간, 그 일상의 시간과 그 일상의 자리는 거룩해집니다. 오늘 이 시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인 이곳은 건물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공간이 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는 시간, 거룩한 시간을 가짐으로 특별한 예배당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남교회는 주일 11시에 예배를 시작합니다. 10시 59분 59초까지는 일상의 시간이지만, 11시가 되면서부터 우리는 거룩한 시간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에 지각하지 말고, 예배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예배 시간을 구별된 시간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때 일상의 시간이 거룩한 시간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불꽃이 타올라도 그것을 모세가 바라보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불꽃을 발견하시고,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출 3:5)”
신을 벗으라’는 명령은 단순히 예절을 지키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이력을 내려놓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신은 우리가 걸어온 삶의 흔적, 경험, 자격, 심지어 신앙의 이력까지도 포함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모든 이력을 내려놓고, 내 앞에 서라.”
칼 바르트는 말했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인간의 자격과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나를 온전히 드리는 응답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신을 벗지 않은 채, 여전히 ‘나는 목사다, 장로다, 권사다, 집사다’, ‘나는 몇 십 년 신앙인이다’, ‘세상에서 나의 위치는 뭐다’ 라는 이력의 신발을 신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나 패배의식에 짓눌려있는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되면 예배는 반복되지만, 영혼은 무릎 꿇지 않습니다.
예배는 내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신을 벗으십시오. 자랑도, 상처도, 직분도 다 내려놓고 벌거벗은 영혼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것이 예배의 시작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예배가 습관이 되고, 그냥 한 주간의 의무처럼 여겨질 때가 많은 것은 아닙니까? 물론, 이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예배가 습관이 되면, 예배를 방해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반복됩니다. 예배 시간에 늦고, 앉아 있어도 마음은 딴 데 있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관람하고, 분석하는 사람처럼 구경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준비되어야 합니다. 예배 전에 미리 오셔서 기도로, 침묵으로, 말씀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을 정돈하고, 신을 벗고 그 앞에 서야 합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고도 처음엔 가까이 가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까이 오지 말라.”
이 말씀은 거리를 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외함과 조심함으로 서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예배의 문제는 바로 이 경외함의 상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거룩함을 모른 채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의 예배를 허물어뜨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교만의 신, 습관의 신, 비판의 신, 무감각의 신, 그리고 형식주의의 신… 예배에 들어가기 전에 그 신들을 벗으십시오. 하나님 앞에, 신발을 벗고 맨발의 존재로 서십시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예배의 회복은 형식보다 깊이 있는 태도와 중심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예배자입니다.”
예배의 시간은 거룩한 시간입니다.
예배의 자리는 거룩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려면 신을 벗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회복시키시며, 새로운 소명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신을 벗고 하나님을 만난 후, 더 이상 양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는 지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만난 이후 그는 이스라엘의 해방자, 중보자, 예언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우둔하고 말도 잘 못하는 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니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일입니다. 예배의 자리가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도 신을 벗고 변화된 삶을 산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삶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예배하는 마음으로 나치에 저항하며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부름의 자리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의 예배는 결단의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십자가 앞에서 신을 벗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의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흑인교회의 예배 속에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꿈꾸며 기도하던 중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자유를 위해 걷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배의 자리에서 신발을 벗었고, 그 만남 이후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이들을 바꾸었고, 그들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는 신발을 벗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도 변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분들이 한남교회 70년을 이끌어오셨고, 앞으로 30년도 이어가시어 한남교회가 100주년을 맞이할 때에는 양적으로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큰 부흥을 이뤄 옥수동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귀한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거둠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교만과 형식, 무관심과 분주함, 예배를 가볍게 여겼던 태도를 내려놓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서게 하소서. 이 자리가, 이 시간이 거룩해지게 하소서. 그리고 이 자리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우리 한남교회가 예배의 깊이를 회복하게 하시고, 예배의 자리에 먼저 신을 벗고 엎드리는 교회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