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부활주일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
요한복음 20:1~18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죽이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것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던 모든 것들이 부활의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특히, 군부쿠데타로 인해 고난당하는 미얀마 국민들을 부활의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고난 받는 피조물들과 민주주의와 종교적인 편견과 정의를 가장한 폭력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회적인 약자들, 코로나19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와 함께하는 두 번째 부활절입니다.
2020년 부활주일을 보낼 때만해도 코로나19가 일 년 이상 우리 곁에서 서성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상상하기도 싫은 현실이 일 년 이상 이어지면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습니다. 특히, 기독교는 코로나19이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깨달음이 깊다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깨달음이 없다면 기독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종교는 사회악입니다. 기독교일지라도 깨달음이 없다면, 이 사회를 위해서라도 퇴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깊은 깨달음의 영성으로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힘쓰는 이들이 있고, 신앙인답게 살아가고자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남교회와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살아가길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켜 ‘부활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 요한복음 20장 1~18절의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성서일과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큰 무리들로부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환영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함하는 무리들의 계략으로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에 의해 팔리시고, 빌라도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군중심리에 휘둘린 이들이 바라바를 선택함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장례절차에 따라 돌무덤에 안장됩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 주간의 첫날 이른 새벽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갑니다. 그런데 가보니 무덤 어귀의 돌이 미리 옮겨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다.”고 전합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와 빈 무덤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두 제자는 다시 머물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때 “여자여, 왜 우느냐?”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마리아는 동산지기인줄로 알고 “누가 주님을 가져갔습니다.”대답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여자여, 왜 우느냐?”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두 번이나 같은 소리가 들려오자 의아해하고 있는 순간 “마리아야!”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제서야 마리아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예수님인 것을 압니다. 그제야 마리아는 “랍오니!”하고 외칩니다. ‘랍오니’는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리하여, 마리아는 부활의 첫 목격자이자,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려면,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서일과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할 말씀들이 있습니다.
먼저 9~10절의 말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새번역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요20:9,10).”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했던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이 성취되었지만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자기들이 있던 곳이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자신들도 험한 꼴 당할까봐 도망쳐 숨어있던 곳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도 부활도 깨닫지 못하는 곳, 그 곳이 ‘자기들이 있던 곳’입니다. 그러니 ‘자기들이 있던 곳’은 주님의 말씀을 잊고, 자기들의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곳입니다.
무덤을 보고도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잊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예수님에게 직접 말씀을 듣고 배웠던 제자들조차도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문자로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마치 다 깨달은 듯 하는 교만한 마음 또한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나름 자신들이 생각하던 메시야 상이 있었고,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주관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복종시킬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 생각에만 몰두해서 주님의 말씀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깨달음이 올 것이요, 그 깨달음이 우리를 죽음과도 같은 삶에 구원의 빛을 비추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애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려면,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여성입니다.
왜, 여성이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십자가 곁에 있었던 이들이 25절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요 19:25).”
십자가를 지켰던 이들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왜 여성일까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생명감수성이 뛰어납니다. 생명감수성이 뛰어남으로 다른 생명의 아픔에 대해 민감하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 남성에 비해 넓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간 시간은 ‘주간의 첫날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온통 예수님 생각뿐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 여명이 떠오르기 전(요 20:1)에 주님의 무덤으로 향한 것입니다. 그리고 빈 무덤 소식을 전한 후, 달려왔던 제자들이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습니다(요 20:11).

성경을 통해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일곱 귀신 들린 여인’이었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찬송가 211장은 ‘막달라 마리아’를 향유를 부었던 마리아로 착각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과부로 추정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던 당대의 부자 아리마대 요셉과 장례에 쓸 몰향과 침향을 백 근이나 가져오고 돌무덤을 미리 사 둘 정도의 재력을 지닌 니고데모와 함께 예수님의 사역의 후원자이자 제자였던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자신의 신분 때문에 암암리에 예수님을 물질적으로 지원했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함께했던 여인이었습니다.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사람, 제자들에게 전함으로 첫 증인이 되었던 사람, 그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이었습니다. 오늘날, 맘몬의 사회는 생명감수성을 메마르게 합니다. 그리하여 입에 올리기도 버거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생명감수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면 어떤 삶을 살아갑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어떤 은혜를 누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불신은 믿음으로 변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은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대로 범사에 기쁜 마음으로 자신에 맡겨진 일을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뒤틀리고, 선한 사람들이 고난당하는 현실이 지속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고 묵묵히 믿음을 지켜갑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들도 우리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시면서 기도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금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021년 부활절에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삶에서 떠나고, 생명감수성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그런 분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